- ‘경기나침반’ 구리 현물가 연중 최저
中침체 장기화, 美·유럽 산업부진탓
재고 급증·强달러 경기선행지표 ‘뚝’
대표적인 경기 선행 지표로 꼽히며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로 불리는 구리 가격이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훨씬 더 장기화 국면에 돌입한 가운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중동 전쟁’으로 확대될 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 등을 예견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리 현물價 t당 7812.50弗 ‘연중 최저’=17일 한국비철금속협회(KONMA)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현물 가격은 t당 7812.50달러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작년 11월 3일(7510.00달러)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이기도 하다.
10월 들어 8000달러 선이 무너진 구리 현물 가격은 좀처럼 7000달러 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구리는 가전, 자동차를 비롯해 전선, 주요 건설 자재 등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사용돼 글로벌 경기에 선행하는 특징을 보인다. 구리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향후 글로벌 경기가 ‘침체’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1997년 아시아 통화 위기, 2008년 리먼 쇼크,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세계적 경제 침체가 닥칠 무렵 구리 가격은 다른 경제지표에 앞서 급락했다.
▶中 부동산發 침체 위기는 현재 진행형=구리 가격 하락의 최대 요인으로는 좀처럼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중국 경제가 꼽힌다. 중국은 세계 구리 수요의 60%를 차지하는 최대 소비국이다.
연초 구리 가격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기대감에 9436.00달러(1월 18일)까지 치솟으며 연고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수요가 늘 것이란 기대감에 올해 구리 가격이 1만50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지지부진한 리오프닝 효과는 큰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구리 가격은 5월 말 7910.00달러까지 꺾이기도 했다.
구리 가격이 본격적인 급락세를 탄 것은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터지면서다. 중국 경제의 주요 축으로 꼽히는 부동산이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구리 가격 하락세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는 평가다. 구리 가격의 올 연고가 대비 연저가 하락률은 17.21%에 이른다.
중국발(發) 위기가 아직 끝이 아니란 것도 문제다. 지난 10일 비구이위안은 사실상 디폴트를 선언했고, 중국 부동산 불패 신화를 처음 무너뜨린 헝다(恒大·에버그란데)는 청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9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전년 대비 0%), 생산자물가지수(PPI, -2.5%)가 중국 내 디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도 경기를 냉각시키는 악재다.
▶재고 급증·强달러로 구리價 ‘뚝’...투심도 ‘경기 침체’ 베팅 중=최근 구리 재고가 급증한 것도 구리 가격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해 미국·유럽 산업 활동까지 부진한 탓이다. 로이터 통신은 “LME 구리 재고가 9월 한 달 6만5025M/T(미터톤) 증가했는데, 이는 2022년 4월 이후 월간 최대 증가량”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금리 장기화 기조를 내세우며 강(强)달러를 유발한 것도 구리 가격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단 분석도 있다. 원자재가는 주로 달러화로 가격이 책정되는 만큼, 달러 가치가 높을 때는 하방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구리 가격이 급락하며 현물과 선물의 가격이 큰 폭으로 벌어지는 ‘슈퍼 콘탱고’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콘탱코 현상은 만기까지 재고를 보관하는 데 필요한 창고료나 보험료, 이자 등의 비용이 선물에 반영돼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높은 현상을 말한다. 블룸버그통신은 “9월 말 LME에서 구리 3개월 선물 가격과 현물 가격 간 격차가 1994년 이후 최대 폭으로 벌어졌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 성장에 구리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란 전망 속에서도 투자자들은 구리 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터는 “펀드매니저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금속 가격이 급락했던 2020년 3월 이후 최대 규모로 구리 관련 펀드를 매각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실망스런 회복세와 이·팔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로 인해 글로벌 투자 전문가들이 중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둔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신호”라고 짚었다.
▶“G2 수출 모멘텀 약화” vs “中 반등·지정학 긴장 단기 해소 기대”=증권가에선 잇따른 ‘불황형 흑자’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갈수록 하향 조정 중인 한국 경제 역시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2차전지 등 주요 대형주의 실적 전망조차 낮아진 가운데 국내 증시 펀더멘털 약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은 외국인 투자자 수급에도 악영향을 미쳐 증시에 하방 리스크를 가중시킬 수 있단 분석이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시장 반등으로 높아진 기대감과 실제 이익 간에는 괴리가 있다. 장밋빛 낙관보다는 다소 차분하게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면서 “주요 2개국(G2, 미국· 중국)에 대한 수출 모멘텀이 내년엔 올해보다 낮아질 전망인 만큼, 시장에서 내놓은 반도체 중심의 이익 반등 기대가 현실에선 가시성이 낮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소 다른 의견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중국 인민은행의 경기부양책에 갈수록 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과 외교적 노력의 결과로 이·팔 전쟁이 확전 되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우세한 것 등을 고려해 볼 때 현재 글로벌 경제를 짓누르는 악재가 해소될 가능성 역시 열려있다”고도 말했다. 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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