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충에 속하는 ‘미국흰불나방 유충’ 개체 수 ↑
“온도 상승에 3세대 성충까지 나올 확률 올라”
“빈대 등 곤충, 온도 높아질수록 서식 일수 늘어”
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지난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 지난 주말 친구들과 가을 소풍을 즐기러 서울 양화한강공원을 찾은 류모(29) 씨는 돗자리를 펼치고 앉은 지 3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류씨의 무릎 위에 송충이처럼 생긴 벌레가 기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류씨는 연신 ‘징그럽다’를 외치며 벌레를 털어냈고 짐을 챙겨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류씨는 “가을 날씨 만끽하려고 나왔는데 송충이 같은 게 너무 많아서 도저히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올 가을 때아닌 ‘벌레의 습격’이 일고 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빈대가 출몰하는 데 이어 한강공원을 비롯한 서울 도심 공원에서도 송충이 닮은 벌레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절기 벌레의 습격이 발생한 원인으로 ‘이상기후’를 꼽았다.
류씨가 본 송충이를 닮은 벌레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으로 해충에 속한다. 활엽수 잎을 갉아먹으면서 도심의 가로수나 조경수, 농경지 과수목 등에 피해를 준다. 피부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유충과 신체 접촉 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이 늘면서 그 피해는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 8월 말 산림청은 “경기·충북·경북·전북 등 전국적으로 미국흰불나방의 밀도 증가가 확인되고 있다”며 발생 예보 단계를 ‘관심(1단계)’에서 ‘경계(3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미국흰불나방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1958년 이후 처음 조정된 것이다. 산림병해충 방제 규정에 따르면 발생 예보 ‘경계’ 단계는 외래·돌발병해충이 2개 이상의 시·군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거나 50㏊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
김민중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박사는 “산림청 조사 결과 미국흰불나방 유충으로 인한 피해율이 지난해 12%에서 올해 27∼28%로 2배 이상 올랐다”며 “올해 (미국흰불나방 유충이) 많이 나올 경우 내년 역시 많이 발생할 위험이 있어 발생 예보 단계를 ‘경계’로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의 개체 수가 증가한 것에 대한 배경으로 이상기후를 언급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암컷의 경우 한 마리당 평균 알 600여 개를 낳고 죽는다. 알에서 부화한 2세대가 성충이 되고, 또 2세대 성충이 낳은 알에서 3세대가 부화해 성충으로 자란다.
김 박사는 “온도를 기반으로 유충이 몇 세대까지 나올 수 있는지 추정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올해 가을철 기온 상승으로 예년에 비해 유충의 서식 조건이 더 좋아졌다”며 “보통 1년에 2세대까지 나오는데 올해는 3세대까지 나온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올해 유충의 개체 수가 늘어난 만큼 알 개수도 늘어나 내년엔 평년 대비 유충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전국 곳곳에서 나오는 빈대 역시 이상기후의 영향을 받는다고 봤다. 세계 공통종인 빈대는 주로 야간에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며 피를 빨아먹는다. 전염병을 옮기지는 않지만 빈대에 물리면 심한 가려움증이 발생한다.
박현철 부산대 환경생태학 교수는 “빈대와 같은 변온동물의 경우엔 주변 환경의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하다”며 “기온이 높아질수록 변온동물은 대사량이 늘어나 출현하는 시기는 빨라지고 월동하는 시기는 늦어지게 된다. 이상기후로 곤충이 서식하는 일수가 길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인천시 서구의 한 사우나 업체에서 찜질방 매트 아래쪽에 살아있는 빈대 성충과 유충이 1마리씩 발견돼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로부터 4일 뒤인 지난 17일엔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한 학생이 빈대에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돼 대학 측이 긴급 소독에 나섰다.
지난 23일엔 경기 부천시 365콜센터에 ‘고시원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내용의 민원 전화가 걸려 왔지만 실제로 빈대가 발견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빈대는 1960년대 새마을 운동과 1970년대 DDT 살충제 도입 등으로 국내에서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