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보건 분야 자문위원을 지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딘 오니시 교수는 “유전자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등 좋은 생활습관을 갖게 되자 500여개의 유전자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며, 이렇게 변화된 좋은 유전자는 질병유발 유전자를 억제했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한 마디로 생활습관을 바꾸면 유전자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4년 캐나다 보건복지부 장관 마크 라론드(Marc Lalonde)는 인류의 건강증진에 일대 전환기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라론드 보고서’라 불리는 이 연구를 통해 ‘건강증진’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인류 건강증진과 공중보건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요구하는 ‘오타와 헌장’을 채택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라론드 보고서는 개인의 건강을 결정짓는 요인을 유전, 환경, 보건의료체계, 생활습관 등 4가지로 분류했는데, 대략적인 비중을 살펴보면 보건의료체계가 8%, 유전이 20%, 환경이 20%, 생활습관이 51%를 차지했다. 즉,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흡연이나 음주, 신체활동, 식생활 등 생활습관이었으며 의료서비스, 건강보험제도 등 보건의료체계의 영향은 가장 적었다. 반면에 당시 캐나다 보건자원의 90%는 의료체계 개선에 투입되고 있었다. 의료비 지출을 크게 늘린다고 해서 반드시 이에 비례해 개인의 수명이 연장되거나 건강이 증진되기는 어렵다는 방증이다. 라론드 보고서가 50여년 전 캐나다에 한정된 연구이기는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도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라론드 보고서는 국가의 보건정책이 질병치료에서 질병예방으로, 질병예방에서 건강증진 차원으로 변화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동시에 식생활 개선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실천할 수 있는 지원정책이 마련된다면 국민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식생활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 왔다. 세계적 식품기업 네슬레 연구센터는 임산부의 식습관과 생활방식 등이 아이의 유전자와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결과, 유아기의 장내 미생물 역학이 성장 후 체지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독일환경건강연구센터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쥐들이 고지방식을 섭취한 경우, 당뇨병의 초기 징후가 있는 비만한 쥐를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벌에 대한 연구는 더욱 흥미롭다. 과학자들은 여왕벌과 일벌이 똑같은 유전자를 지녔지만 먹이, 즉 로열젤리 때문에 다르게 성장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처음 알에서 나오면 모든 애벌레가 골고루 로열젤리를 먹을 수 있지만, 며칠 지나면 여왕으로 선택된 애벌레에게만 집중적으로 로열젤리가 제공되고 일벌이 될 애벌레들은 꽃가루, 수액 등을 먹게 된다. 이 차이로 인해 여왕벌은 알을 낳을 수 있고 몸집은 일벌의 2배 이상, 수명은 10배 이상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엄청난 차이다.
식생활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식생활이라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건강한 식생활이야말로 나와 가족, 이웃과 국가, 나아가 인류를 건강하게 바꿀 수 있는 강력하고 긍정적이며 지속적인 동력이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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