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130년 전, K-문화를 예언한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전한 희망
라이프| 2023-12-21 16:46

육영공원 영어교사시절의 헐버트.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130년 전, K-문화를 예언한 선교사가 있었다. 조선시대와 구한말, 일제시대에 한국을 사랑한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다. KBS 1TV '다큐ON'이 23일 오후 10시 25분 성탄특집 ‘헐버트가 전하는 기쁜 소식’편을 방송한다.

세계적 관광지 뉴욕 타임스퀘어를 포함해 이젠 세계 곳곳에서 K-POP 노래가 흘러나오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무려 130여 년 전, 혼돈의 구한말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예언한 사람이 있다.

고종의 외교 자문이자 독립운동가, 한글을 연구한 언어학자, 역사학자, 아리랑 채집가, 언론인, 출판인, 최초의 공립학교 육영공원의 교사이자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 조선말 혼란스럽던 국가 위기의 시기 한민족의 우수함을 먼저 깨닫고,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예언했던 헐버트가 전해준 희망의 메시지. 그 놀라운 여정을 추적해 본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선교사 헐버트

‘한국인이라면 그를 하루도 잊으면 안 된다’-안중근-

미국 명문가에서 태어나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전도유망한 23세의 호머 헐버트는 1886년 조선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조선에서 최초의 공립학교 육영공원의 영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자원한 것이다. 조선에 온 지 단 4일 만에 한글을 읽기 시작한 그는 조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며 당시 우리 땅의 지식인들도 알아보지 못했던 한글의 가치를 먼저 깨닫는다. 그리고 최초의 한글 세계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집필.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이 접할 수 없었던 각국의 위치, 역사, 문화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 세계 시민의 길을 열어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본격적인 침탈이 시작되자 선교사 헐버트의 발걸음도 조선의 독립과 평화를 위한 활동에 집중된다. 일제가 조선인들의 땅을 빼앗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조성하려 하자 노량진에 교회를 세워 땅을 지키고 조선인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단지 교리를 전파하며 교인을 늘리는 선교가 아닌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동참하며 기독교 정신을 전파하였다.

-일제 강점을 묵인한 미국의 정책을 질타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와 한국에 정의와 평화의 다리를 놓은 63년간의 노력

헐버트는 뉴욕타임스, 하퍼스 매거진 등 세계적인 언론과 잡지에 수백 편에 달하는 기고문을 올려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들의 잠재력,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헐버트의 모교인 미국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미국인 칼 슐츠 씨. 헐버트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된 그는 마치 헐버트처럼 한국의 중학교 영어 교사를 지원해 한국과 한국어를 공부했고 미국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지금도 헐버트 관련 기록을 발굴하며 헐버트 삶의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

북미 찬송가.

미국 미시간센트럴 대학 호프 메이 교수 또한 헐버트를 통해 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미국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헐버트의 삶에 깊이 감동, 그가 만들었던 〈코리아 리뷰〉 잡지를 재창간하여 평화와 정의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인이 절멸되기 전에는 결코 한반도에서 안정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극도로 인내하다가도 계기만 마련되면 분연히 일어나 1592년 임진왜란 때처럼 그들에게 고통을 준 자들을 응징할 것이다”-뉴욕타임스 1907년 7월 20일

‘Sure Korea will Fight,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1949년 한국 방문 직전 인터뷰 중 /호머 헐버트-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광복절을 맞아 국빈으로 초대받아 내한한 헐버트는 노환으로 타계,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혔다.

양화진 헐버트 묘비.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세계인에게 전파한 헐버트, 한국 문화가 전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 예언하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민요 아리랑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찬송가로 채택, 불리고 있다. 헐버트 선교사가 구전으로 떠돌던 아리랑을 서양식 악보 5선보로 정리해 미국에 소개한 이후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던 아리랑 수백 곡을 채집, ‘조선의 성악’이라는 논문으로 정리했다.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이자 조선인들이 노래하면 워스워드와 같은 시인이 된다’-1896년 발표 ‘조선의 성악’ 논문

아리랑 전문가 김연갑 씨는 헐버트의 악보가 한국의 아리랑에 세계적 보편성을 부여한 놀라운 작업이었다고 평가한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에 개설된 K-POP 댄스 수업, 이 수업은 헐버트기념사업회 애리조나 지부에서 대학과 협의해 만들었다. 헐버트 기념사업회 애리조나 지부 회원들은 헐버트를 기억하고, 헐버트의 이름이 더욱 알려지길 바라며 미국에서 한국 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헐버트가 살아온 바른 삶, 학문적 열정, 한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국경을 넘어, 세계인에게 뜨거운 울림을 남기고 있다.

wp@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