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청룡의 해, 이곳에 가면 용 기운 팍팍
라이프| 2024-01-02 11:25
강원 삼척 수로부인 헌화공원. 개과천선한 용이 수로부인을 떠나보내고 아쉬하는 모습의 조형물

새해 벽두부터 관동팔경 제1루 강원 삼척 죽서루가 국보로 승격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동해바다를 지키는 해신 용(龍)이 춤을 추는 듯 하다.

오랜 옛날 인간계의 절세미녀를 유혹하고 보쌈했다가 군중의 함성에 놀라 속죄하고 미녀를 석방했던 바로 그 용, 바로 동해 해신이다. 지금은 여성 근처엔 얼씬도 않고 어민과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서만 의무를 다한다. 삼척은 옛날 옛적 수려한 미모를 가진 수로부인이 동해안 유람을 하며 남긴 족적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사실 확인이 어렵다 해도, 시와 노래는 2000년이 넘는 지금까지 구전되고 있다.

헌화가·구지가의 고향 삼척, 동해 해신(龍)이 지킨다

‘경동지괴(傾動地塊·땅이 한 쪽 부분만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한 쪽은 경사가 급한 절벽을 이루고 다른 한 쪽은 경사가 완만해진 곳) 지형이라 해식애(崖)가 많은 삼척 해안가 절벽에 아름다운 꽃이 핀 것을 수로부인이 갖고 싶어하자 갑자기 소를 끄는 노인이 나타난다. 노인은 이어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가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면 꺾어 바치오리다‘라는 헌화가를 낭송하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 바치는 게 아닌가. 그는 둔갑술에 능한 동해 바다 해신 용이었다.

한 식경이 지나 도발은 이어진다. 지금 해가사터로 불리는 ‘삼척 북쪽 증산, 동해 남쪽 추암’ 바다에 이르러 거북으로 변신한 해신은 수로부인을 전격 납치한다. 분노한 어민은 백사장에 모여 바다의 용을 향해 노래(구지가·해가)를 부르며 집단시위를 한다.

“거북아 거북아, 내놓지 않으면, 너를 잡아 삶아먹겠다”는 내용이다. 민중의 저항에 굴복한 해룡은 수로부인을 석방했고, 이 이야기는 ‘중구삭금’(衆口 金·다중의 입은 금까지 녹인다) 말의 전형적인 예로 널리 회자된다.

임원항 인근 남화산 정상에 있는 삼척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오르기 쉽게 높이 51m 엘리베이터를 놓았다. 구지가의 고향, 해가사터에는 사서 대로 고증한 임해정 정자, 돌리면서 소원을 비는 ‘드래곤볼’이 있다. 삼척에는 초곡용굴촛대바위길, 방탄소년단(BTS) 앨범 촬영지 바로 옆 덕봉산해안생태탐방로, 미항이라 제주해녀가 머무르며 물질을 가르쳐준 갈남항이 있다.

전남 고흥 영남용바위. 용바위엔 용의 발톱자국이, 꼭대기에는 금빛 용이 있다.

두 마리의 용, 사투 끝에 승천한 이곳...고흥 용암마을

전남 고흥 용암마을에 있는 ‘영남용바위’에도 용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먼 옛날, 이곳에서 두 마리 용이 서로 먼저 승천해 여의주를 얻으려고 싸움을 벌였다. 마을 주민 류시인은 꿈에서 그들의 싸움을 끝낼 비책을 듣고 한 마리를 활로 쐈다. 류시인의 도움으로 싸움에서 이긴 용이 용암마을 앞 바위를 발로 디디고 상륙해 승천했다.

고흥10경 중 제6경으로 꼽히는 ‘남열 해양 경관과 해수욕장’에 그 전설의 흔적인 영남용바위가 있다. 널따란 반석을 따라 조심스레 들어가다 보면, 전투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간 용 발톱 자국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놀랄 만큼 전설과 일치해 실제 상황이었나 싶을 정도다.

어디 그 뿐이랴. 용암마을 한 쪽에는 용의 머리처럼 보이는 용두암이 있다. 용의 기운을 받으려는 이들이 용암마을을 찾는 이유다. 영남용바위-우주발사전망대 사이에 조성된 해안 탐방로 ‘미르마루길’도 풍경이 수려하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여덟봉우리가 나란히 꽃힌 팔영산, 다도해해상국립공원까지 둘러봐야 고흥 여행이 완성된다. 호남의 영남용바위와 강원도 헌화가,구지가 용의 전설지역 등 5곳이 한국관광공사의 ‘1월 추천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됐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 용의 기운을 듬뿍 받는 쇄신-다짐 여행지이다.

경북 예천 회룡포. 물이 마을을 350도 휘감고 나가는 형상이 마치 용틀임하는 듯해 회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이 휘감은’ 마을 회룡포에서 뿅뿅다리·주막 체험

경북 예천의 회룡포(명승)는 내성천이 산에 가로막혀 마을을 350도 휘감고 나가는 형상이 마치 용틀임하는 듯해 회룡(回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가 많이 오면 섬으로 변해 ‘육지 속의 섬’이라고 한다.

회룡포가 한눈에 담기는 전망대는 비룡산에 있는 회룡대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 용왕각과 용바위도 있다. 회룡대에서 마을을 감싸듯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회룡포 마을에 들어가려면 제1 뿅뿅다리를 건너야 한다. 공사장에서 쓰는 철판으로 다리를 만들어,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고즈넉한 마을은 산책하기 좋고, 회룡포와 내성천을 미로로 표현한 회룡포 미르미로공원이 눈길을 끈다. 마을에서 드라마 ‘가을동화’와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등을 촬영했으며, 트로트 ‘회룡포’ 가사를 새긴 노래비도 있다.

용문사에는 청룡 두 마리가 태조 왕건에게 절로 향하는 길을 안내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용궁역테마공원은 별주부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오토마타(Automata·기계장치를 통해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가 인기다. 예천 삼강주막(경북민속문화재)은 옛 이야기를 품은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이다.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길게 뻗어 있는 암석이 사찰에서 용머리에 해당하는 용두암.

부산 해동용궁사 일출은 ‘환상적’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한국관광 대표 명소를 세계에 홍보하는 영상 속에서 멋진 춤을 선보였던 부산 기장군 해동용궁사는 일출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관음 성지로,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진다고 한다. 새해 첫날은 물론 사시사철 일출을 보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돋이 명소는 단연 지장보살이 자리한 제룡단 방생 터다.

용의 머리 형상을 한 용두암을 시작점으로 사찰 곳곳에 있는 전각과 조각상 등을 이으면 꿈틀거리는 용의 전체 모습이 그려져 더욱 영험한 기운이 흐르는 듯하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해수관음대불이 사찰의 백미다.

해동용궁사 옆 국립수산과학원 수산과학관 쪽으로 향하면 사람이 소원을 빌며 쌓은 돌탑이 옹기종기 모인 파식대지가 있는데, 사찰 전경이 한눈에 담기는 포토 스폿이다. 국립부산과학관은 본관과 어린이과학관, 천체투영관 등으로 구성해 과학과 친해지기 좋다. 송정해수욕장은 서핑에 적당한 파도와 긴 해변이 매력적이다. 해변 끝자락에 소나무 향 그윽한 죽도도 둘러볼 만하다.

충남 홍성 용봉산은 산 모양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과 상서로운 봉황의 머리를 닮아 붙여졌다. 사진은 용봉산 물개바위

홍성에선 ‘용의 몸·봉황의 머리’ 닮은 용봉산

용의 기운을 받을 곳을 찾아 우리나라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마지막으로 만나는 곳은 충남 홍성 용봉산(381m)이다.

산 모양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용과 상서로운 봉황의 머리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용봉사와 악귀봉, 노적봉, 정상 등을 두루 감상하고 내려오기까지 2시간~2시간 30분이 걸린다.

여러 문화재 가운데 용봉사 영산회괘불탱(보물)이 유명하다. 지장전 뒤로 난 길을 걸어 올라가면 약 4m 높이로 조각한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보물)이 보인다. 악귀봉(368m) 가는 길에는 삽살개바위, 두꺼비바위, 물개바위 등이 있다. 노적봉(351m)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구간에서는 바위 틈을 뚫고 가로 방향으로 누운 듯 자라는 소나무와 행운바위, 솟대바위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용봉산 정상을 알리는 표석 주변에 서면 저 멀리 병풍 바위와 악귀봉, 노적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홍주성역사공원에 홍성군의 역사를 둘러보기 좋은 장소가 모여 있다. 홍주읍성(사적)은 홍성군의 대표 유적지다. 홍주아문은 조선 시대에 관청 출입문으로, 지금도 홍성군청 입구로 쓴다. 그 뒤편에 있는 한옥전각 안회당은 옛날 목민들의 행정 사무실로 쓰였다.

용의 해에 용을 보는 것은 기원하고 다짐하는 대로 모든 게 이뤄지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기대케 한다. 이런 심리학 이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해도, 추위를 이겨내는 1월 여행은 면역력을 키우는 건강 관리법 중 하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용의 기개를 가까이서 느껴보자.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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