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전공의 파업으로 휴가 강제”…전공의 집단이탈에 피해보는 병원 직원들
뉴스종합| 2024-02-26 09:19
전공의의 공백으로 보건의료위기 단계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된 가운데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용공간 앞을 병원 이용객들이 지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병원에서 ‘환자 감소’를 언급하며 병원 직원들에게 강제 휴가를 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공의 이탈로 인해 환자들이 퇴원하거나 수술이 취소됐기 때문에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병원 직원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6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른바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로 불리는 주요 대형병원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일부 중환자실을 통합하고 경증 환자들을 대거 퇴원시키는 등 축소 운영에 돌입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빅5 병원은 중환자실 의료진 일부가 내과계로 이동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병원 직원들이 ‘강제 연차 소진’을 종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성모병원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한 간호사 A씨는 “지금 전공의 사직 여파로 병동 쪽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연차를 강제당하고 있다”라며 “지난주 쉬는 날이 아니었는데도 강제로 이틀을 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간호사 B씨는 “입원 병동에 있는 환자가 절반 이상 나갔기 때문에 강제로 연차를 소진해서 쉬라는 분위기”라며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쉬게 만드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브란스병원 소속이라는 한 간호사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의사 파업 등 특수상황으로 입원환자가 줄어드는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다음 주 근무 스케줄이 갑자기 오프로 바뀌고 다음 달 스케줄에도 듬성듬성 연차가 섞여 나온다”라며 “이렇듯 원치도 않는데 연차를 야금야금 소진하다가 연말에 정말 연차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토로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병원 직원들이 원치 않아도 현재 오프를 주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로 병원에서도 인력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이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직원이 많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최상위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한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

의사들 집단행동에 따른 강제 휴가는 지난 2020년 지역의사제·공공의대 설립에 반발한 의사 집단 휴진 때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이미 상당히 연차가 소진된 간호사들에게 휴가를 강제하기도 해 노동자 동의 없는 강제 휴가는 근로기준법 60조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일이 없다고 연차를 특정 날짜에 쓰라고 강요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간호사들에게 갑작스레 다른 병동으로 파견을 보내면서 업무의 급을 낮추게 만드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연세의료원 새노동조합은 강제휴가를 우려하는 성명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내에 붙이기도 했다. 새노동조합은 성명서에 “이런 대혼란 속에서 일부 관리자는 환자가 줄었다며 벌써부터 강제휴가를 이야기한다고 한다”라며 “부디 병원 측은 진료 공백과 민원으로 힘들 직원들에게 위로는 못할망정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지 말기 바란다”고 쓰기도 했다.

한편, 전공의 외에 의대 졸업생·전임의 등도 집단행동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포착돼 ‘의료 공백’은 확산일로다. 최근 전국 대학병원에는 인턴 합격 상태에서 단체로 임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예비 인턴들이 선배 전공의들의 움직임에 동참하자는 취지로 계약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국가시험을 막 통과한 ‘새내기 의사’들은 통상 당해에 인턴으로 뽑혀 필수의료 과목과 선택 과목을 1~2개월 단위로 순환 근무하며 경험을 쌓는다.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의사 집단행동으로 전국적인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는 25일 오후 민간인에게 진료를 개방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내 국군외상센터의 모습. [연합]

문제는 수련 마무리 단계란 이유로 병원에 남았던 3~4년 차 레지던트들과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전임의 계약 역시 이달 말∼다음 달 초 끝나는데 이들도 계약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빅5 병원에 소속된 전임의 B씨는 “정부의 ‘강 대 강’ 기조가 젊은 의사들에게 큰 자극을 주고 있다”라며 “전공의만 떠나는게 아니라 곧 전임의들도 계약을 거부하는 식으로 개인행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날 “2000명은 계속 필요한 인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 필요했던 의사 충원 규모는 3000명 내외”라고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외에도 법무부는 보건복지부에 검사를 파견하고, 검경이 신속한 사법 처리를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등 강제수사를 준비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에서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라며 “의료계 전체는 어떤 대응도 불사하겠다. 전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후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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