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리 기자회견 폐지·권한축소 국무원법 개정
‘5%안팎’성장 자신했지만 부양책없어 맹탕평가
비상관리법·사이버보안법, 외국기업 이탈 우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1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NPC) 폐막식에 참석해 기립해 있다. 오른쪽은 당서열 2위인 리창 국무원 총리다. 국회 격인 전인대는 이날 총리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국무원조직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번 양회에서는 30년간 이어져 온 국무원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이 폐지됐으며, 국무원조직법 개정안마저 통과돼 ‘시진핑 1인 체제’가 더욱 공고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EPA] |
중국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11일 전인대 폐막으로 마무리됐다. 국회 격인 전인대는 이날 폐막식에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GDP)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설정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 업무보고와 국방예산 7.2% 증액안이 담긴 재정부 예산보고서,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보고서 등도 예정대로 통과시켰다. 총리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국무원조직법 개정안도 표결로 통과시켰다. 경기부양을 위한 특단의 조치는 빠진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1인 지배력 강화는 법률로 명시하면서 ‘맹탕’ 양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총리 지우며 ‘당정분리’ 끝내=올해 양회는 시진핑 국가주석(당 총서기)의 권력 집중을 각인시켜준 또 한번의 이벤트가 됐다. 전인대가 폐막식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법적으로 명문화한 국무원조직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키면서다.
기존 국무원조직법은 덩샤오핑 시기인 1982년 개헌과 함께 개정·도입되면서 ‘총리 책임제’를 명시하는 등 당정 분리 원칙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42년 만에 이뤄진 이번 개정에선 ‘당’을 조문 곳곳에 삽입했다. 이에 이번 개정은 개혁·개방 이후 이어진 ‘당정 분리’ 관행의 종언을 공식화한 것이자 ‘2인자’였던 총리의 위상을 명시적으로 떨어뜨린 조치로 풀이된다.
총리 지우기는 양회 시작 때 이미 예고됐다. 1993년 이후 정례화한 전인대 폐막 후 총리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중국 중앙정부 수장인 국무원 총리는 통상 전인대 개막일에 정부업무보고를, 폐막일에는 대미를 장식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해왔다. 총리가 직접 기자들을 마주하고 질문을 받는 매우 드문 기회여서 ‘양회의 하이라이트’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리창 총리는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권위 있고 집중된 통일 영도를 견지하면서, 당 중앙의 결정과 안배를 잘 관철하는 집행자·행동파·충실한 행동가가 되겠다”는 이례적인 말까지 하며 자신을 낮췄다.
당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폐막식 연설에서 “시진핑 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영도에 따라 전인대가 국가 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일인 체제를 부각시켰다.
▶성장률 목표 달성 방안도, 부동산대책도 안나와=이번 양회 기간 최대 관심은 리 총리가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올해 5% 경제 성장률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였다. 리 총리는 신규 취업 1200만명 이상, 실업률 5.5% 안팎,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3% 안팎 등의 목표도 제시했다.
5% 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면 획기적 부양책이 필요하지만 중국 정부가 제시한 것은 적극적 재정·통화정책과 첨단기술 투자 확대에 그쳤다. 투자와 소비 진작을 위해 올해 1조위안을 시작으로 앞으로 몇 년간 특별국채를 발행하고,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2019년 이후 최대 폭인 10% 증액한다는 것이 눈에 띄지만 당장 경기부양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비스 분야도 매우 어려운데, 리 총리 연설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4차례로 매우 드물었다”고 꼬집었다
경제장관 합동 기자회견에서 심각한 침체에 빠진 부동산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역시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부실 기업을 과감히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혀 시장에 공포심마저 유발시켰다. 니훙(倪虹) 주택도시농촌건설부장이 9일 “파산해야 할 부동산 기업은 파산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회사 역시 구조조정해야 한다”면서 부동산 시장에 칼을 들이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전인대는 올해 과학기술 예산을 3708억위안(약 68조6610억원)으로 작년보다 10% 올려 책정했다. 이는 미국이 첨단반도체,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제품은 물론 기술에 대한 접근을 원천 차단하려는 데 맞서 중국의 자체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시 주석도 이번 양회 기간 ‘신품질 생산력’을 강조했다. 기술 혁신을 통한 산업 발전을 뜻하는 이 개념은 노동집약 산업에서 기술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득 수준도 향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아쉽게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맹탕’ 양회에 시장은 비관 평가=이번 양회에서 중국 정부의 부양의지가 읽히지 않으면서 시장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샤르민 모사바르-라흐마니 골드만삭스 자산관리사업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 정부가 제시한 성장률 목표에 불신을 드러내며 “중국에 투자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신용 중심, 국가 주도 투자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내놓은 것은 과거 경기 진작책 반복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번 양회에서 비상관리법 제정과 사이버 보안 법률 개정 등 국가안보에 초점을 맞춘 입법 계획을 발표하면서 외국기업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반간첩법과 기밀법으로 이미 중국 법인을 축소하거나 폐쇄한 외국기업이 더 빠져나갈 것이로 전망된다. 김영철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