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국제 공동연구 확대됐는데” 외국인 참여는 불편…과학자들 ‘난감’
뉴스종합| 2024-04-12 16:18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국제 공동연구를 신청하기 위해 통합연구지원시스템에 접속하니 해외 연구자들의 여권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등록하라고 하네요. 이들이 직접 입력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어 결국 국제공동협력연구사업 신청을 포기하고 국내 과제로 변경했습니다.”

정부가 과학기술 국제 공동연구를 확대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일선 연구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 연구개발(R&D)를 수행하는 각 부처에서는 1/4분기 사업기획 및 제안서 작성업무를 마치고 국제공동협력연구개발사업 공모 신청을 받고 있다. 올해 국가 연구개발사업 예산 중 국제협력 관련예산은 약 1조 8천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증액됐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정부 R&D 혁신방안 및 글로벌 R&D 추진전략'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과기정통부 제공]

하지만 예산의 급속한 증가에 비해 각 부처나 전문관리기관의 준비상태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방 K 대학 A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제협력연구 국책사업에 과제를 신청하면서 너무나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 유수 대학 교수들과 팀을 구성하여 과제를 신청하려고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에 접속하니 각 해외 연구자들의 개인 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자나 또는 해외 국적을 가지고 있어도 한국인인 연구자는 국가연구자번호, 과거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관리기관에서 운영하던 시스템에 등록된 기록이 있어서 IRIS에 등록하는 것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공동 연구팀에 참여하는 외국 국적 연구자들은 IRIS에 접속해 인적정보, 과제정보를 입력하기가 매우 불편하고 어렵다.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

해외 연구자들은 과학기술계의 여권번호라 불리우는 ‘ORCID(Open Researcher and Contributor ID)’를 사용하여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으면서 세계 모든 연구기관에서 과제를 신청하고 접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IRIS 시스템은 우리나라 고유의 국가연구자번호와 같은 시스템을 그대로 IRIS에 이식해 사용하고 있어 외국 연구자를 등록할 방법이 없다. 공동연구사업의 한국 파트너인 우리나라 연구자가 대신 등록해 줄려고 해도 해외 연구자의 여권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받아서 대신 입력해야 한다. 개인정보에 대해 엄청나게 민감한 외국인들이 개인정보를 쉽게 넘겨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A 교수는 해외공동협력연구사업으로 신청하는 것을 포기하고, 국내용 과제에 신청하면서 외부 단순 참여인력으로 외국인 연구자들의 참여의향서를 첨부해 신청했다고 한다.

이 같은 문제는 이미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는 작년 12월에 ‘과학기술 국제협력 법제 진단과 제언’이라는 보고서에서 과학기술기본법과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조속히 개정해 국제협력 예산 증가 등에 따른 후속 조치를 원활히 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로 외국인이 우리나라 연구관리시스템에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 법인기관만 등록이 가능하며, 외국인 개별 참여는 관계 부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연구 수월성 확보를 위해 우수한 연구자 개개인을 섭외하여 팀을 구성해 신청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한 출연연 박사는 “IRIS는 이미 국내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사용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정부차원에서 지속적인 개선과 고도화를 요구해 왔다”면서 “글로벌 협력연구사업이 단순한 기관 대 기관의 협력으로만 전락하고, 연구개발의 전략성과 수월성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해외 기관 및 연구자 경우에는 휴대폰 인증이 불가능해 재직증명서, 재학증명서, 비자, 여권 중 하나를 통해 명확한 신분을 확인 후 국가연구자 번호를 발급하고 있다”면서 “ORCID 또한 신분 확인을 위한 수단으로 사전에 검토됐으나 정부 R&D 참여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뢰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됐다”고 말했다.

이어 “연내 해외 기관 및 연구자의 신분 확인을 위한 다양한 인증수단을 개발해 해외 기관 및 연구자의 IRIS에 연구자 등록시 적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nbgkoo@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