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력 앞세워 K-패션에 손짓
알리는 에이블리에 1000억대 투자
중국의 패션 이커머스 쉬인(SHEIN)이 최근 국내 주요 SPA(제조·유통 일원화) 패션 업체 한 곳에 입점 제안 목적의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알리익스프레스가 CJ제일제당 등 한국 식품기업을 입점시키며 사업을 확장한 것처럼 한국 패션기업을 품어 판을 키우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쉬인은 국내 주요 패션업체인 A사를 비롯해 복수의 한국 브랜드를 접촉해 입점을 요청 중이다. 한국 패션업체가 입점 또는 쉬인과 협업할 경우 플랫폼의 상품 경쟁력과 인지도 상승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H&M, ZARA, 유니클로 등을 넘어 이른바 ‘울트라 패스트 패션’의 세계를 연 쉬인은 지난해 200개가 넘는 국가에서 최소 300억달러(약 4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외신은 쉬인의 매출이 내년 58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자라와 H&M의 연간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다.
쉬인의 야심은 이제 한국을 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강력한 자본력이 있다. 쉬인은 2021년부터 2년 동안 20여 개국, 3000명의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프로그램 ‘쉬인X’에 5500만달러(약758억원)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젊은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2만5000개가 넘는 디자인과 2000개 컬렉션을 선보였다.
업계는 수십명의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제품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한국인 디자이너와 협업 확대 가능성에 한 현직 패션 디자이너는 “쉬인을 통해 판로를 확보하려는 디자이너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독점계약 같은 독소 조항에 발목이 묶이는 걸 우려하는 디자이너들도 많아 업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전했다.
쉬인 외에도 중국 이커머스의 K-패션 전략은 광범위하다. 알리익스프레스의 모기업 알리바바가 한국 패션 플랫폼인 에이블리에 1000억원대 투자를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패션기업에 투자할 경우 한국 고객에 대한 이해와 디자인 노하우, 그리고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다.
무신사, W컨셉 등 국내 패션 플랫폼의 위기감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직 한국 내 인지도가 낮지만, 쉬인X 등 자체 디자인으로 프리미엄 패션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빠르게 브랜드를 성장시키려는 업체들에 쉬인이 상당히 매력적인 플랫폼인 건 사실”이라며 “다만 헤리티지를 갖고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키우려는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미지나 경쟁력이 훼손될 위험도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