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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솥밥 먹다 겹치는 타깃 두고 싸워야”…K-팝형 멀티레이블 속내는? [드러난 K-팝 치부]
라이프| 2024-04-28 17:52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뉴진스와 빌리프랩의 아일릿 [어도어, 빌리프랩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개성도 없고 독립성도 사라진 멀티 레이블 시스템.” (민희진 어도어 대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출발한 국내 1위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 산하엔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뮤직, 세븐틴이 소속된 플레디스, 르세라핌의 쏘스뮤직, 엔하이픈의 빌리프랩, 지코의 코즈(KOZ), 뉴진스의 어도어 등 국내외에서 총 11개의 레이블이 있다.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은 일종의 성공 전략이었다. 특정한 대형 아티스트 의존 구조를 벗어나고 안정적인 행보와 투자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희진 대표는 그러나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찾아보긴 힘들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는 “지금의 멀티레이블은 중앙통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모회사가 있고, 그 아래 레이블들이 포진돼있다”며 “각각의 레이블마다 PR, 인사 방법이 다 다를수 있는데, 중앙에서의 통제가 쉬운 방식으로 설계된 것을 허울 좋게 멀티레이블 체제라고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 대표는 특히 현재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에서 방 의장이 주도하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군대 축구’에 비유했다. 그는 “플레디스, 코즈, 어도어를 제외하고 빅히트 뮤직, 빌리프랩, 쏘스뮤직은 방시혁 의장이 직접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 방시혁 의장이 손을 떼야 한다”며 “의장이 주도하면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병장에게 골을 다 몰아주는 군대축구처럼 레이블들이 의장한테 잘 보이려고 이상한 짓을 한다. 최고 결정권자는 그냥 위에 붕 떠있어서 자율 경쟁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 건강한 멀티 레이블이 된다”고 일갈했다.

투어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멀티 레이블은 K-팝의 글로벌 성장에 발 맞춰 시작된 전례없던 시스템이다. K-팝의 급격한 성장과 자본력을 갖춘 엔터테인먼트 사들이 몸집 불리기 식의 문어발 확장을 한 결과가 지금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적지 않다.

롤모델이 된 것은 미국 3대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 워너뮤직을 비롯해 인디 음악신의 베가스 그룹 등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다. 현재 하이브와 어도어 사태에선 드러난 멀티 레이블의 문제점은 해외에선 단 한 번도 불거진 적이 없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해외에서의 멀티 레이블에선 각 레이블의 색깔이 뚜렷하고, 음악적 장르와 타깃이 조금씩 달라 공존할 수 있었다”며 “이들이 다채롭고 조화로운 팔레트를 이뤄 하나의 큰 음반사를 구성할 수 있었다”고 봤다.

반면 K-팝 업계에서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이루며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시장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다. K-팝조차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한 장르로 그 안에서 이미 변별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획일화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임 평론가는 “K-팝 시장은 비슷한 장르, 비슷한 기획, 비슷한 홍보 마케팅과 겹치는 타깃층을 상대하고 있다”며 “멀티 레이블이라고 하지만 밥만 한 솥에서 먹지 결국 똑같은 작업장에 나가 서로 밀치며 경쟁하는 것과 같다”고 봤다.

제니 지코 [KOZ엔터테인먼트 제공]

민 대표는 여기에 방시혁 의장 주도의 프로듀싱 시스템이 멀티 레이블의 개성을 가로막았다는 입장이다. 애초 지적한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의 신인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가 그 사례다. 그는 “이 회사(레이블)를 어떻게 운영할 건지 확실한 로드맵을 세운 뒤엔 오너(방시혁 의장)가 균형을 맞춰야 하고, 카피가 나오면 오너가 지적해야 한다”며 “그렇지 못한 이 상황은 서로 제 살 깎아먹기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결국 하나의 장르인 K-팝 안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운영하며 의도적으로 색깔과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멀티 레이블은 시스템이 음악적 다양성과 개성을 확보할 것으로 봤으나, K-팝 안에서의 이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기존의 성공 전략을 답습해 한 회사에서 비슷한 콘셉트와 음악을 반복 재생산하게 된 상황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략은 철저하게 먹혀 하이브 산하 레이블의 모든 아티스트가 국내외 차트를 장악하고 있다.

임 평론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활동에 있어 선함을 따지긴 힘들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K-팝 시장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나, 기본적으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와 작은 시장에서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고 한두 가지 장르에 굉장히 쏠려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것은 각 레이블이 가진 취향과 색깔을 잘 북돋아 사업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컨설팅과 방향 제시를 하면서 모회사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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