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칼럼] 봄에 부르는 전원별곡
뉴스종합| 2024-04-30 11:16

‘오늘도 벗는다? 그리고 걷는다’.

오래전 헤럴드경제에 쓴 칼럼제목(2012년 9월 11일자)이다. 얼핏 ‘19금’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 내용은 당시에는 생소한 건강관리법인 접지(어싱·earthing)에 관한 글이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맨땅을 걸으며 지기를 충전하는 접지의 장점, 자연치유 효과, 필자가족의 경험과 권유 등을 담았다. 지금은 ‘접지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전국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으니 새삼 글 쓴 보람을 느낀다.

올 봄에 필자는 삽 하나만 들고 일주일에 걸쳐 홍천 시골농장에 큰 접지로를 만들었다. 폭 1.2m에 총 길이는 70m나 되니 부자들의 저택이 부럽지 않다. 한쪽에 녹색 호밀밭을 끼고 있는 접지로는 곧 자연으로 통하는 길이다. 맨발로 천천히 걷다보면 어느새 세상근심과 걱정은 싹 사라진다. 오래도록 걸어도 힘들지 않다. 머리가 맑아지고 몸은 가벼워진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도 자연과의 접속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작은 텃밭에도 고랑 겸 접지로는 쉽게 만들 수 있다. 또 옥수수 알갱이와 씨감자를 심고 김매기를 할 때, 고구마·감자 등을 캘 때 맨발상태로 흙과 놀면서 작업하면 그게 바로 ‘접지농사’다.

아예 자연에 맡기는 태평농사는 상생의 ‘농사예술’이다. 이런저런 밭작물과 과수를 재배하고 있지만 농장 곳곳에는 일부러 수고하지 않아도 자연이 대신 키워주는 건강먹거리가 지천이다. 민들레·(왕)고들빼기·(개)두릅·달래·머위·쑥 등이 바로 그것. 올 봄에는 자생 오갈피순과 싱아, 더덕까지 취했다. 자연과 놀면서 농사도 짓고 자생 먹거리도 얻고 건강 또한 챙기니 일석삼조 아닌가.

홍천농장의 맨 위쪽에는 작은 소나무 숲이 있다. 일반작물은 소나무 숲에서 거의 자라지 못한다. 지난해 공생 가능한 작물을 찾다가 일부 재배사례가 있는 산마늘(명이)을 심었는데 신의 한수였다. 소나무 숲의 산성토와 반그늘이 산마늘의 생육에 적당하다. 해마다 쌓이는 솔잎은 퇴비가 되고 한겨울 보온효과도 있는 것 같다. 몇 년 후 소나무와 산마늘이 어우러진 멋진 치유농장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한창 바쁜 농번기이지만 필자는 곧잘 산으로 놀러간다. 이때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다래소나무’와 생명품은 바위는 자연의 친구이자 스승이다. 햇볕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끝임 없이 빛을 향해 나아간다. 같은 소나무끼리도 햇볕을 더 받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간혹 다래덩굴처럼 가늘고 구불구불 휘어지면서도 그 끝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기이한 소나무가 있는 까닭이다. 오로지 빛을 향해 나아가는 지난하고 굴곡진 ‘다래소나무’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그 강인한 생명력뿐 아니라 구도의 자세를 배운다.

산속 바위와 다른 생명이 어우러진 조화와 공생 또한 경이롭다. 생명 없는 바위는 소나무·이끼·석이버섯 등을 품을 때 비로소 생명 있는 바위가 된다. 그 품는 사랑은 소나무·이끼 등의 생명력 못지않은 진한 감동을 남긴다.

전원에서 자연과 함께 신나게 노는 건 참 쉽다. 자연과 접속하는 시간만 내면 된다. 그러면 그가 주는 힐링과 치유, 평안을 값없이 얻는다. 더 이상 뭘 바랄까.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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