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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주자매’ “‘따뜻한’ 첫째, ‘우직한’ 둘째, ‘화려한’ 셋째” [인터뷰] 
라이프| 2024-05-02 14:37
자타공인 국내 최고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엔 이른바 ‘주씨 패밀리’가 있다. 입단 21년차 첫째 주연주(48), 16년차 셋째 주연경(42), 퇴사 전 10년의 세월을 함께 했던 둘째 주연선(44).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은 없지만, 잠시 휴식기에 돌입한 ‘주트리오’의 멤버들이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두 살 터울의 세 자매. 닮은 듯 보여도 영 딴판이다. ‘연주자의 성품은 음악에 묻어난다’더니, 자매의 연주는 그들의 성격을 빼닮았다. “‘따뜻한’ 첫째, ‘우직한’ 둘째, ‘화려한’ 셋째”(주트리오). 세 사람의 현은 음색도 빛깔도 달라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면서도 서로를 향해 조화롭게 스민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엔 이른바 ‘주씨 패밀리’가 있다. 입단 21년차 첫째 주연주(48), 16년차 셋째 주연경(42), 퇴사 전 10년의 세월을 함께 했던 둘째 주연선(44).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은 없지만, 잠시 휴식기에 돌입한 ‘주트리오’의 멤버들이다.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혼자 하는 악기이다 보니 여럿이 함께 하는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대요. 그래서 자식을 낳으면 오케스트라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주연주)

서울대 음대 출신으로 신수정 교수를 사사한 어머니의 바람대로 세 딸은 현악기 연주자의 길을 걸으며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다. 클래식 음악계 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함께 하는 악단의 특성상 부부 연주자는 많이 나오나, 여러 자매가 한 악단에 입단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한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개인 연주 일정까지, 한 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 세 사람이 모처럼 뭉쳤다. 최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자매는 “직장생활을 함께 하니 사회에서도 든든한 내 편이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서울시향 세 자매인 주연주, 주연선, 주연경. 이상섭 기자
서울시향의 주자매…“의지할 동료이자 날카로운 비평가”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되면 악기를 정해야 했어요. 언니들이 그 때쯤 전공을 결정했기에 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웃음)” (주연경)

4남매인 주씨네 가족은 ‘음악’을 사랑하는 환경 덕에 자연스럽게 악기를 배웠다. 악기를 처음 손에 잡은 것은 고작 4~5세. 자매에겐 주어진 선택지가 많았다. 피아노는 기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에 심지어 성악까지…. 하지만 자매가 걸어온 ‘음악의 길’이 모두에게 ‘자발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첫째 주연주는 “원래 내 꿈은 의사나 간호사처럼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는데 음악으로 채워진 환경에 있다 보니 다른 선택은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그 때 ‘10년이나 바이올린을 했는데 이 나이에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다른 직업도 욕심내지 않았고요. (웃음)” (주연주)

주연주는 두 동생의 이정표였다. “모든게 처음이었던” 큰 언니가 바이올린과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모습이 동생들에겐 교과서가 됐다. 언니를 따라 둘째 주연선은 자연스럽게 예원, 예고에 입학했고, 셋째 주연경도 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다녔다. 주연경은 “이미 초등학교 때 마음의 준비를 했고, 고학년이 되면 당연히 음악의 길로 가는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째와 셋째는 바이올린을 들었지만, 둘째 주연선은 첼로를 선택했다. 그는 “바이올린과 플루트는 너무 싫었고, 피아노보다 첼로에 재능을 보여 자연스럽게 악기가 주어졌다”고 했다. 모든 악기에 소질(?)이 없던 막내는 목회자가 됐다.

“엄마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다”며 원망을 쏟기도 했던 큰 언니와 달리 둘째와 셋째는 “자신의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주연선은 “한 번 첼로를 선택한 이후엔 진득하게 악기를 파고 들었다”고 한다.

각기 다른 이유로 음악을 선택했지만, 자매에게 음악은 결국 ‘천직’이었다. 주연주는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지만, 사실은 (바이올린을) 좋아했던 것 같다”며 “유학 시절 통나무집에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뒤 엄마에게 전화해 ‘바이올린 시켜줘 고맙다’고 말했다. 그 날 연주의 감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 곡은 첫째 주연주의 ‘인생의 음악’이다.

같은 길을 가는 자매에게 서로는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동료이자, 날카로운 비평가다. 주연경은 “친구 사이에 주고 받으면 관계가 끝날 수 있는 말도 언니들에겐 솔직히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연주에 대한 피드백과 ‘쓴소리’가 사소한 습관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됐다. 주연주는 “‘시선 처리 똑바로 해라’, ‘왜 자꾸 눈을 감냐’고 지적해줘 나도 몰랐던 버릇을 고치게 됐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방향 알려준’ 정명훈, ‘정답 찾아주는’ 츠베덴

2004년에 입단해 장수 단원 반열에 오른 첫째 주연주, 정명훈 지휘자 취임 이후 무려 3년간 공석이던 첼로 수석 자리에 합격해 업계를 놀라게 했던 둘째 주연선, 서울대 박사와 오케스트라 입단을 고민하다 2009년 합격해 현재 제1바이올린 부수석으로 있는 셋째 주연경. 세 사람은 서울시향의 현재를 만든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부터 오스모 벤스케, 얍 판 츠베덴 감독까지 경험하며 악단의 색깔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자매들은 세 지휘자에 대해 “저마다 추구하는 음악이 다르다”고 했다. 주연주는 “정명훈 선생님이 연주자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타입으로 스스로 고민해 소리를 찾아가게 하는 지휘자라면 츠베덴 감독은 모든 경로와 테크닉을 알려줘 자신의 색깔로 만들어가는 지휘자”라고 귀띔했다. 팬데믹 시기를 함께 한 오스모 벤스케는 “단원들을 배려하는 감독”이었다고 한다.

츠베덴 감독의 별칭은 ‘오케스트라 조련사’. 그는 스스로도 “워낙 직설적인 성격이라 처음엔 단원들이 낯설어 했다”고 말했을 만큼 거침없는 ‘직진형 인간’이다. 주연주는 “츠베덴 감독은 굉장히 직설적인데 나 역시 조곤조곤 할 말을 다 하는 성격이라 그런 감독님의 캐릭터가 재밌고 잘 맞는다”며 “지금의 시향과 츠베덴 감독은 서로 맞춰가며 우리의 색을 찾고 있다”고 했다.

2015년 퇴단한 주연선은 서울시향의 단골 ‘객원 연주자’다. 현재의 ‘츠베덴 체제’에선 종종 첼로 객원 수석으로 함께 하며 중심을 잡고 있다.

큰 언니는 “단원들이 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연선이가 리드하면 첼로 파트가 응집력있게 뭉쳐진다”며 “요즘 연선이 바쁘냐. 왜 안오냐고 묻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전 진장’에서의 러브콜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이어서 그런가. 저한테 첼로는 연선이가 기준이에요. 첼로 소리는 연선이의 연주처럼 깊고 우직한 소리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주연주)

언니의 이야기에 주연선은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무척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츠베덴 감독님 취임 이후 다들 출근을 빨리 하고 긴장감도 높아진 것 같다”며 ‘객원의 시선’으로 보는 서울시향의 변화를 들려줬다.

악기를 다뤄온 시간은 어느덧 40년 안팎. 자매의 꿈은 같은 곳을 향한다. 주연선은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는 음악을 들려줄 연주자”를, 주연주와 주연경은 “오래 연주하는 삶”을 꿈꾼다.

“모든 직업이 60대 초반이면 은퇴를 하잖아요. 어릴 땐 60세면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 나이가 돼도 너무나 건강하고 열정이 넘치더라고요. 그 때까지도, 그 나이를 지나서도 계속 연주하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목표는 가늘고 길게 가는 거예요. (웃음) 오래하고 싶으니까요.” (주연주, 주연경)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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