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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부터 대체육까지…'국산의 종말', 기업도 휘청인다 [고물가의 덫, 식량자급률]
뉴스종합| 2024-05-05 10:00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라면 판매대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정석준 기자] “소비자들이 제품 가격에 예민한데 수입보다 2~3배 비싼 국산 밀을 사용해 원가만 올리는 것은 곤란합니다. 차라리 수입산의 높은 가격 변동성에 따른 부담을 감당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

식량자급률이 낮으면 식품업계는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 가격 인상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물가 안정 기조’라는 정부의 커다란 벽이 있어서다. 높아진 원가율은 결국 기업의 실적 감소로 이어진다. 식량 자급률을 높여 국내산 곡물의 가격을 낮추고, 기업이 국산 원재료를 쓰는 선순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라면 제조 업체들은 100% 수입산 밀을 사용하고 있다. 농심 신라면과 오뚜기 진라면, 삼양식품 삼양라면은 모두 미국, 호주산을 쓴다.

라면 제조사들은 제분업체를 통해 라면의 원료인 소맥분을 사 온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봉지에 표기된 밀 생산지의 의미는 제분업체가 소맥분을 만드는 데 사용한 밀을 수입한 국가”라고 설명했다.

제분업체들이 들여오는 밀 생산지인 호주와 미국은 지난해 한국의 밀 수입량 1, 2위 국가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호주산 ‘밀(메슬린 포함)’ 수입량은 2021년 117만t(톤)에서 지난해 235만t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산 밀 수입량은 181만t에서 120만t으로 줄었다. 특히 호주는 2022년 한국의 밀 수입량 1위 국가로 올라섰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롯데의 초콜릿 제품들. [연합]

곡물 가격 상승세는 식품업체의 매출원가율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매출원가율은 매출에서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이익률이 낮다는 의미다.

롯데웰푸드는 매출원가율이 2022년 71.5%에서 지난해 72.2%로 올랐다. 같은 기간 CJ제일제당은 78.2%에서 79.1%로, 매일유업은 71.2%에서 72.1%로 늘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현지에서 생산해 원가를 절감하거나 수출에서 얻는 이익으로 국내 사업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감당해 왔다”며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 제반비용까지 엎친 데 덮치면서 이제 그마저도 한계를 보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제품 가격을 올리려 해도 정부가 압박하면 물러날 수밖에 없다”면서 규제 산업의 특성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원가 부담을 더 이상 못 버티게 되면 결국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면서 “많은 식품 제조사가 연내 추가적인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곡물의 수입 부담은 푸드테크 산업 성장 동력과도 연결된다. 대표적인 품종이 콩 등 곡물을 활용한 대체육 시장이다. 실제 콩 자급률은 1960년 92.6%에서 2022년 28.6%로 떨어졌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 식물성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20년 226억원에서 2025년 293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원료 가격이 비싸면 시장 초기 단계에 투자 부담이 커진다. 익명을 요구한 대체육 생산 업체 관계자는 “곡물 가격이 인상되면 대체육 생산 비용도 늘어나고, 투자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면서 “한국의 푸드테크 기술은 세계 최정상급이지만, 연구 환경을 고려하면 척박한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mp125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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