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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넘나들며 만난 두 조각가의 ‘기묘한 동거’ [요즘 전시]
라이프| 2024-05-08 14:05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권오상과 문신 2인전 ‘깎아 들어가고, 붙여나가는’ 전시 전경. 문신의 조각 1995년작 ‘무제3’(가장 왼쪽)와 문신 작가를 오마주한 권오상 작가의 신작 ‘권오상 조각 스튜디오를 비추는 문신’ 작품(가운데)이 전시돼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이번 전시, 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가 가리킨 것은 ‘한국 1세대 조각가’이자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 문신(1922~1955)의 ‘무제3’. 작가 특유의 대칭과 비대칭이 미묘하게 공존하는 완전한 추상조각이다. 단단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조형물인데도 전체적인 모습은 역동적인 자연의 형상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모습이다. 한 마디로 굉장히 ‘문신다운’ 조각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 옆에는 ‘사진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권오상(50)의 기묘한 작품이 서 있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딱 봐도 문신의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 형상 위에 난데없이 조각조각 오려낸 사진들이 붙어 코팅돼 있어서다. 대상의 모든 면을 사진으로 찍고, 인화된 사진을 오려붙여 입체처럼 만든 사진 조각, 사실은 권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산 한국의 두 조각가가 엇갈리며 교차하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종로구 소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권오상과 문신 2인전 ‘깎아 들어가고, 붙여나가는’이다. 이번 전시에서 권 작가는 문신의 작품을 오마주하고 재해석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헤럴드옥션 광교센터 뷰잉룸에서 문신의 작품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아라리오 개인전을 준비하던 권 작가가 갤러리에 문신과 2인전을 제안하게 된 배경이다.

권오상, 권오상 조각 스튜디오를 비추는 문신, 2024,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혼합매체.

두 사람의 교류를 느낄 수 있는 대표작은 바로 문신의 조각 옆에 놓인 권 작가의 신작 ‘권오상 조각 스튜디오를 비추는 문신’이다. 문신의 철제 작품을 만든 뒤 이 조각의 매끈한 표면에 거울처럼 비친 권 작가의 작업실 전경 사진들을 이어 붙인 조각이다.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으로 발화한 실재 이미지들이 문신의 추상 조각을 완전히 감싸 안은 형상이 독특하다. 좌우 대칭의 유선형에 흐르는 문신만의 리듬 위에서 권 작가 특유의 ‘가벼운 조각’이 여러 층위로 횡단하는 듯 보인다. 권 작가는 “사진을 촬영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 안에는 거울이 존재한다”며 “거울처럼 제 스튜디오를 비추는 문신의 조각을 통해, 제 작업실에 방문한 문신의 혼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이라는 주제로 문신이 고안한 드로잉 옆에도 권 작가의 ‘조각적인 가구’ 시리즈가 놓였다. 순수미술이 추구하는 조형미와 만난 소파와 조명이 눈길을 끈다. 권 작가는 “기본 조형에서 시작해 형태를 만들어내는 문신의 드로잉이 가구 조각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와상과 두상 형태로 처음 선보이는 권 작가의 사진 조각도 만날 수 있다. 2005년에 제작한 사진 조각을 3D(차원)로 스캔해 브론즈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특히 권 작가가 “공기의 흐름”이라고 일컫는 조각 곳곳의 다양한 구멍에 집중해 사유하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 중 하나다.

전시는 6월 22일까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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