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다운증후군, 뇌병변, 자폐…남들보다 5배 더 연습한 이들의 20년
라이프| 2024-05-10 14:08
장애인 사물놀이 단체 '땀띠' 서형원 연출, 조형곤, 이석현, 박준호, 고태욱, 송경근 음악감독.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03년 2월,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네 명의 소년이 모였다. “장애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바짝 마른 나무와 닮았다”는 이석현(뇌병변장애 2급),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는 고태욱(자폐성 장애 3급) “다운증후군으로 인한 비슷한 생김새 탓에 어딜 가나 본 적 있다는 관심을 받는다”는 조형곤(지적장애 2급), “직장생활과 음악의 길에서 고민”하는 박준호(자폐성 장애 2급).

10대에서 어느덧 30대가 됐다. 소년들은 어엿한 직장인이 됐고, 지난 20년 새 팀은 성장해 해외 공연까지 다니게 됐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장애인사물놀이연주단 땀띠가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5월 31일~6월 2일까지, 국립극장 하늘)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처음엔 이름도 없고 객석도 없는 복도 한 켠에서 연주를 했는데, 20년이 지나왔다니 정말 감회가 남다르다”며 웃었다.

땀띠는 장애 소년들의 음악치료를 위해 출발했다. 채만 있으면 쉽게 연주를 배울 수 있는 국악기를 만나 뇌병 변장애를 통한 신체의 불편함과 다운증후군이나 자폐성 장애인이 내면에 쌓아둔 감정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에겐 장점이었다.

땀띠의 ‘브레인’으로 서울대 국어국문과를 나와 글로벌 IT(정보기술)기업에서 근무 중인 이석현은 “땀띠는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음악치료를 위해 모였던 우리가 대회 출전을 위해 땀띠라는 이름을 가지며 치료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섰을 때가 첫 변곡점, 정통 국악에서 창작 음악으로 장을 넓혀 우리만의 음악 장르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2013년이 두 번째 변곡점이었어요.” (이석현)

땀띠의 이름이 태어난 배경이 독특하다. 연습실도 없이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장구와 꽹과리를 배웠던 경험은 네 멤버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이석현은 “이렇게 땀띠가 나도록 연습했던 기억과 각오를 가지고 간다면 앞으로 우리의 음악도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 짓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를 가진 네 멤버가 악기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석현은 “지금은 저만 악보를 못 보지만, 처음엔 네 명 모두 악보를 보지 못했다”며 “송경근 음악감독과 땀띠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 악곡을 연주해주면 해당 리듬을 모두 외워서 연주한 뒤 충분히 익힌 다음에야 자신의 스타일대로 박자와 애드리브를 넣어 음악을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그 과정은 상당히 지난하다. 악곡을 기억하고, 박자를 맞추고,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석현은 “하나의 곡을 익히기까지 평균 비장애인의 다섯 배의 시간이 걸린다”며 “학생일 때는 여름, 겨울마다 합숙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었다. 계속해서 반복하고 기억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장애인사물놀이연주단체 땀띠 [연합]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지면 선천적으로 박자를 맞추는 것이 비장애인보다 몇 배는 어렵다. 조형곤은 그러나 ‘박자 감각’이 관건인 징, 장구, 꽹과리를 비롯해 10여개의 악기를 다룬다. 때문에 조형곤의 팀내 별칭은 ‘양념’이다.

2013년부터 땀띠와 함께 한 송경근(월드뮤직 그룹 공명 소속) 음악감독은 “땀띠와 함께 한 초반, 형곤 군에게 셰이커를 알려준 적이 있는데 제일 쉬운 리듬도 잘되지 않아 내심 이건 안되는 건가 보다 생각했다”며 “형곤 군이 며칠 후에 셰이커 연주를 해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제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걸 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마음의 감동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의 팀이 같은 멤버로 20년을 이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기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네 사람은 소년 시절 만나 성인이 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음악’을 향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됐다. 땀띠와 만나 조형곤은 백석예술대 국악과에, 고태욱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연회과에 입학해 공부를 마쳤다.

이석현은 “네 사람 모두 각자의 직업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만큼 땀띠는 각자의 시간과 일을 존중하며 활동하고 있다”며 “자율성 안에서 땀띠의 활동을 녹여내는 것이 꾸준한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만약 너희는 반드시 땀띠를 해야해, 장애인 음악 단체라는 거대한 의미와 부담을 짊어졌다면 적어도 저는 땀띠를 오래 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흰 단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음악을 하고 싶을 때 모이고, 그 곳에 땀띠가 늘 있다는 믿음 덕분에 함께 앞을 보고 달려가 수 있었어요.” (이석현)

세 멤버들에게도 음악은 ‘즐거움’이다. 연주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재미이자 도전이다. 고태욱은 “사물놀이를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꼈고”, 박준호는 음악이 “삶의 활력소”가 됐다. 심장수술을 받은 조형곤은 폐활량이 이용해 불어야 하는 악기까지 다루며 매순간 도전한다.

송경근 감독은 20년을 지나온 지금은 또 한 번의 변곡점이라고 했다. 그는 “어느덧 직장인 되고 삶의 환경이 달라진 네 멤버가 이 팀을 어떻게 병행해 나갈지 고민하는 지금이 땀띠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멤버들이 30~40년 행복하게 음악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땀띠와 함께 음악을 하다 보면 때때로 속도가 빨라질 때도, 느려질 때도 있어요. 그럼 또 신기하게도 멤버들이 그 속도에 함께 맞춰가요. 속도와 박자가 조금 빨라지고 느려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땀띠를 통해 알게 됐어요. 아직 우리나라엔 국립 장애인예술단이 없어요. 땀띠가 국내 최초의 장애인예술단이 되고, 멤버들이 단원들을 가르치게 되는 날을 상상해봅니다.” (송경근 음악감독)

“각자의 생활을 잘 유지하면서 평온하면서도 폭풍우 같은 날들이 계속되고, 땀띠로 꾸준하게 음악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원대한 목표라면, 장애인 음악단체로 대중에게 땀띠가 가장 먼저 각인되는 거예요.” (이석현)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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