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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폐공장, 소금공장 기억 담은 예술공방이 되다
부동산| 2024-05-16 11:09
전북 부안 ‘부안 예술공방’건축물 모습

1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한 소금공장이 어느 젊은 건축사 부부의 손길을 거쳐 동네 주민들의 쉼터이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곰소염전으로도 유명한 전북 부안군의 건축물 ‘부안 예술공방’ 이야기다. 방치돼 있던 소금공장의 기억을 공간에 담고자 한 예술공방은 부안 구도심 도시재생의 촉발점이 됐다.

부안 예술공방을 설계한 김시홍·황남인 내러티브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소장을 지난 4일 서울 중구 필동의 사무실에서 만나 건축물의 탄생 배경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부안 예술공방은 부부 건축사인 이들이 2020년 사무소 설립 이후 개소 초창기인 2021년 설계한 공공 프로젝트다. 사회문화적 맥락을 반영해 건축과 사회의 건전한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는 의미가 담긴 사무소 이름처럼 부안 예술공방은 부안군 주민들의 삶과 마을의 축을 반영하고 있다.

예술공방이 만들어지기 전 대지 위에는 전통 제염법으로 재제염을 생산하던 공장이 있었다. 2009년 운영이 중단된 후 폐허로 남아있던 공장은 인근 부안상설시장을 오가는 지역민들을 위한 도시재생 시설로 재탄생했다.

건축물이 위치한 비정형 필지는 입구가 좁고 안으로 깊은 형태로, 건물 1층 외벽은 벽돌 소재, 2층 외벽은 금속 소재가 활용됐다. 1층에 적벽돌을 사용해 인근 주택가를 연장하는 느낌을 냈다. 황남인 소장은 “준공 전에는 땅이 T자 모양이라 건축물이 가려져 있었다. (건축물 주변에) 골목길이 있고, 인근에 무허가 주택이 있어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길도 내야 했었다”며 “이런 부분들과 함께 연세 드신 노인분들이 많이 사시기 때문에 잠깐 앉았다 쉬어갈 수 있는 공간, 문화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 등 동네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건축물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고 말했다.

소금공장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건축물 곳곳에 남아있다. 반사도가 높은 금속 외장재와 파사드는 소금공장을 모티브로 설계됐다. 황 소장은 “반짝반짝 빛나는 염전의 소금과 평평한 솥에 물을 끓여 소금을 얻는 소금공장의 모습을 건축물로서 기억을 표현하고 싶은 게 있었다”며 “부안의 노을이 매우 아름다운데 건물 외장재에 그 모습이 투영되면서 색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의도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내부의 철골구조와 폴리카보네이트 마감, 소금 포대를 활용해 제작한 가구도 소금공장과 연결돼 있다. 황 소장은 “내부의 철골구조는 소금공장의 유형을 가져왔고 사무실에 활용된 폴리카보네이트는 소금의 물성을 담으려 한 것”이라며 “철거 전 소금공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소금포대들이 안 쓴 상태로 버려져있었다. 이후 네모난 솥에 소금포대를 넣고 위에 폴리카보네이트를 끼워 테이블을 제작해 활용했다”고 했다.

이러한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부안 예술공방은 지역을 살리는 도시재생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장관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2023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4 iF 디자인 어워드’ 등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 수상도 잇따랐다.

김시홍(왼쪽)·황남인 내러티브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소장

내러티브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는 이 같은 공공프로젝트 경험을 발판 삼아 현재 부안 줄포 도시재생 리모델링 프로젝트와 강릉통일공원 하늘숲전망대 등 여러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시홍 소장은 “강릉 전망대의 경우 납품하기 직전 단계인데 높이 올라가서 밖을 보는 것에서 그칠 수 있는 전망대를 그 자체가 특별한 오브제가 될 수 있도록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다양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보고 겪으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지점은 무엇이었을까. 국내 공공건축이 발전하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예산 투자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원주시 공공건축가·공공건축 심의위원 및 경기주택도시공사(GH) 영아키텍트로 활동하고 있는 황 소장은 “현재는 공공건축 예산이 필요한 건축물의 용도를 충족할 수 있는 정도로 책정돼 있는 것 같다”며 “공공건축만큼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경험할 수 있는 건물이 없기 때문에 제일 돈이 많이 쓰이고 좋은 건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내러티브아키텍츠가 공공프로젝트만 참여하는 건 아니다. 단독주택, 상가주택, 건물 리모델링 등 민간 프로젝트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 또한 강원도 양양의 상가주택 ‘낙산진면옥’이다. 이 건축물은 지난해 강원 건축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소장은 냉면집 창업을 준비하는 건축주와 함께 냉면을 먹으러 다니며 건축주의 시선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김 소장은 “건축주가 상가주택 1층에 냉면집을 운영하려는 계획이 있어 냉면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게 진행했던 프로젝트”라며 “저희가 프로젝트를 맡을 당시 개소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저희를 믿고 선택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소장은 민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먼저 프로젝트를 의뢰해온 건축주, 사람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주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려고 한다”며 “그러한 부분을 저희는 건축적으로 해석해서 제안해드리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경북 안동 ‘온혜리 정영자 주택’모습 [내러티브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제공]

경북 안동의 ‘온혜리 정영자 주택’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어진 단독주택이다. 김 소장은 “어렸을 적부터 그곳에 오랫동안 살아오셨던 건축주분이 집을 철거하고 비슷한 규모로 새롭게 집을 짓는 프로젝트였다”며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건축주가 색다른 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지나가는 시간들이 가깝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당에 형태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내러티브아키텍츠는 국내 공공·민간 프로젝트를 넘어 해외로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문화센터 국제공모전에 참여해 4위를 기록했고, 튀니지의 카르타고 국립박물관 국제설계공모에 지원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1년에 2~3개 이상의 국제공모전에 도전해본다는 계획이다.

김 소장은 국제설계공모에 참가하게 된 배경에 대해 “외국 건축가분들이 한국 프로젝트를 많이 시도하는데 왜 우리는 외국 공모에 도전하지 않을까라는 의문과 현실에 대한 반발심이 들었다”며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제출을 했고 그 과정을 통해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해석하고 그에 맞게끔 건축을 제안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특히 카르타고 국립박물관 국제설계공모는 인상적이었던 게 제출안 모두를 공모 참여자들이 볼 수 있게 책자로 만들어서 배포했다”며 “국내에서는 수상작 위주로 공개가 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내외 경계를 두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두 소장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건축가’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이 작품 굉장히 재밌다’, 또는 ‘이 사무소에서 짓는 건축물이 장소를 변화시키고 있다’ 등 어떠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축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황 소장 또한 “차이를 만든다는 점에서 (김 소장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모두를 100% 만족시키는 건축이 좋은 건축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정답은 될 수 있지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느냐 생각하면 그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봤을 때 이단아 같다거나 이상하다고 얘기를 하더라도 항상 근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다른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신혜원 기자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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