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e-커머스기업 쿠팡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기업집단 총수) 지정에서 제외되면서 또다시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15일 올해 공시 대상 기업집단(대기업 집단)을 발표하면서 쿠팡의 동일인을 김 의장이 아닌 (주)쿠팡으로 지정했다. 반면 하이브 파라다이스 영원 등 7개 그룹은 모두 오너(대주주)가 총수로 지정됐다. 개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4촌 이내 친족과 3촌 이내 인척의 주식 보유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얼굴도 모르는 먼 친인척의 사업 현황과 보유 지분까지 뒤져 신고해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 상호출자 금지 등 이중, 삼중의 규제망에 편입되는 것은 물론이다.
쿠팡은 한국 법인인 ㈜쿠팡의 지분 100%를 미국 모회사(쿠팡Inc)가 갖고 있고, 쿠팡Inc의 의결권 76.7%를 김 의장이 갖고 있다. 김 의장이 사실상 지배력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도 국적이 미국이라는 이유로 김 의장이 동일인에서 제외되자 국내 기업인 역차별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곤혹스러움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돼 미국 규제기관의 감독을 받고 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 규정 위반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쓰-오일 등 외국계 회사와의 형평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쿠팡 특혜’ 논란은 37년 묵은 낡은 제도가 확 달라진 글로벌 산업지형에서 더는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깨운다. 동일인 규제는 1987년 당시 가족중심 경영을 통해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전개한 재벌 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다. 총수 일가의 과도한 지배력 확장이나 부당한 내부 거래가 만연한 때여서 규제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혁신형 기업들이 한국 경제의 주요 플레이어로 뛰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도 대부분 과거 총수 1인 체제가 아닌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의 수평적인 의사결정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교 대상 19개국 가운데 100대 기업의 자산 집중도나 매출 집중도는 한국이 15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자산 5조 기준 대기업 규제를 15년째 지속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투자 환경에서 쿠팡처럼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는 혁신기업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이미 구닥다리가 된 제도로 이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장 동일인 제도 폐지가 어렵다면 쿠팡처럼 법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것을 일반화하는 쪽으로라도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