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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영화로 치면 ‘기생충’ 급 수익…韓 뮤지컬계 ‘뚝심’의 승부수 (1) [K-컬처 위닝스토리]
라이프| 2024-05-20 08:20
뮤지컬 ‘시카고’와 ‘맘마미아’ 공연 영상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뚝심의 승부수’였다.

“한국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역사”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인 신시컴퍼니의 지난 37년은 이 두 단어로 설명된다.

신시컴퍼니는 1987년 극단 신시로 출발, 1세대 공연 제작사로 37년을 걸어왔다. 그 길은 때론 가시밭길이었고, 때론 꽃길이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고, 모험과 실험에 멈춤이 없었다.

공연계 전문가들은 신시컴퍼니를 ‘독특한 제작사’라고 입을 모은다. 산업화, 상업화된 시장에서 ‘비영리단체’와 같은 ‘의외의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흥행에 휘둘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최승연 뮤지컬 평론가)했고, 그러면서도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 신뢰감을 주는 회사”(박병성 뮤지컬 평론가)로 자리하고 있다.

신시컴퍼니의 차별화된 행보의 근간엔 연극에서 출발한 ‘신시의 정신’(원종원 순천향대 교수)이 바탕하고 있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신시컴퍼니는) 현재는 극단 체제가 아님에도 극단과 같은 끈끈한 정서를 유지하고 있는 제작사”라며 “공연과 무대를 대하는 태도와 의리, 사명감은 지금의 신시컴퍼니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했다.

최초, 최초, 최초…‘뮤지컬 산업화’ 이끈 선구자

“네 돈으로 네가 알아서 제작해봐라.”

신시컴퍼니가 연극과 함께 뮤지컬 제작을 병행한 것은 1994년이다. 1대 대표인 김상열 연출가는 당시 기획실장이었던 박명성 신시컴퍼니 프로듀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 프로듀서의 등장과 함께 한국 뮤지컬 계는 본격적인 ‘프로듀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가 뮤지컬 제작을 시작한 1998년 이후 신시컴퍼니는 업계에서 선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대 한국 뮤지컬 시장은 ‘무법 천지’였다. 당시 국내에선 ‘아가씨와 건달들’, ‘캣츠’ 등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인기 뮤지컬이 불법 복제, ‘해적판 뮤지컬’이 범람했다. 그러던 중 2000년엔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운영하는 RUG(리얼리유즈풀그룹)에서 정식 수입 없이 1990년대 ‘캣츠’ 공연을 올려온 극단 대중, 열 기획을 상대로 공연금지가처분신청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수익금을 몰수해갔다.

무단 공연이 ‘당연한 관례’였던 공연계는 1990년대 중반 ‘격변의 시기’를 맞게 됐다. 1996년 한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 저작물 보호에 대한 국제협정인 베른조약이 발효되면서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그즈음 과감한 결단과 도전의 ‘최초의 시도’로 업계를 놀라게 했다. 브로드웨이 작품에 정식 비용을 지불하고 판권을 사와 뮤지컬을 올린 것이다. 박영미 이영자 전수경이 출연한 ‘더 라이프’다. ‘더 라이프’(1998)는 대기업 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민간 제작사의 첫 라이선스 작품이다.

대기업 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민간 제작사의 첫 라이선스 작품 ‘더 라이프’(1998) [신시컴퍼니 제공]

IMF가 들이닥친 무렵인 만큼 당시 환율은 1800~2000원. 현재와도 큰 차이가 없는 막대한 판권료를 지불하고 들여온 이 작품은 대성공이었다. 정소애 신시컴퍼니 본부장은 “당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며 “예매 시스템이 없던 때라 현장에서 현금으로 결제한 티켓 수익금을 한다발씩 싸들고 극단으로 돌아와 돈을 세곤 했다”고 돌아봤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최승연 평론가는 “잘 어우러지는 역할로의 적절한 연예인 캐스팅 등 ‘더 라이프’는 기획 자체가 선진적이었다”고 봤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국내 공연계에서 공연권을 확보해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상식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2010년대 이후 한국 뮤지컬계에 불어닥친 유럽 뮤지컬 붐의 시작에도 신시컴퍼니가 있었다. ‘더 라이프’의 성공 이후 신시컴퍼니는 최초의 유럽 뮤지컬 ‘갬블러’에 도전한다. 당대 최고의 뮤지컬 스타였던 허준호와 남경주 이정화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1999년은 극단 신시가 ‘신시뮤지컬컴퍼니’로 전환, 본격적으로 뮤지컬 제작에 뛰어든 해였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히트곡으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인 ‘갬블러’(1999)는 에릭 울프슨이 작사, 작곡, 대본까지 맡은 최초의 유럽 뮤지컬이다. [신시컴퍼니 제공]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히트곡으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인 ‘갬블러’는 에릭 울프슨이 작사, 작곡, 대본까지 맡은 독일판 뮤지컬이다. 신시컴퍼니에 따르면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막 올린 이 작품도 당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초연 이후 성공에 도취됐던 신시컴퍼니에선 충분한 준비 없이 국립극장에서 앙코르 공연을 올렸다. 결국 ‘갬블러’는 신시컴퍼니에 엄청난 빚더미를 안겨준 ‘실패작’이 됐다.

기사회생한 것은 2002년이었다. 당시 ‘갬블러’는 일본 공연기획사 민주음악협회가 초청, 14개 도시 순회공연을 열었다. 장장 40여일의 여정으로 이어진 일본 공연의 연출은 최근 작고한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 맡았다. 현지 프로덕션 ‘최초’의 시도라는 역사를 남겼다. 이후 2005년에도 한 번 더 일본 순회 공연에 초청됐다.

2001년 12월엔 현재도 상상할 수 없는 소위 ‘미친 짓’(?)이 나왔다고 업계에선 입을 모은다. 2000년 신시컴퍼니가 빠르게 라이선스를 사온 뮤지컬 ‘렌트’를 쓴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실화를 담은 ‘틱, 틱...붐!’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서울의 대·중·소극장에서 동시 개막한 문제작이었다. 강남의 한전아트센터(당시 아츠풀센터), 종로의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신촌의 산울림 소극장에서다. 업계 최초의 시도였다.

2007년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글로벌 프로젝트 ‘댄싱 섀도우’ [신시컴퍼니 제공]

해외 제작진이 투입된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 나온 것도 신시컴퍼니의 시도였다. 2007년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글로벌 프로젝트 ‘댄싱 섀도우’였다. 당시를 떠올리며 정 본부장은 “한국에만 안주하지 말고 세계적으로 역량있는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 해외 진출의 동력을 갖춰보자는 생각에 10년 가까이 준비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당시 연출은 폴 캐링턴, 작곡은 에릭 울프슨, 대본은 아리엘 도르프만이 맡았다. 제작비 50억원을 투입한 이 작품은 제13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5관왕에 올랐으나, 도전정신과는 별개로 흥행은 참패했다. 제작비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손실이 나왔다.

최승연 평론가는 “리얼리즘이 수작으로 꼽히는 ‘산불’과 해외 창작진이 만나 글로벌 소통을 위해 지역성을 빼고, 내전과 환경보호 테마를 가져온 우화적 스토리로 풀었다”며 “다소 앞서가는 주제를 가져온 데다 해외 창작진이 들어온 초기작으로서 시행착오를 겪은 작품”이라고 봤다.

성공과 실패의 도돌이표…히트작 대거 등장한 2000년대

“돈 벌어 투자하고, 실패하면 다시 벌어 도전한다.” (최승연 평론가)

성공과 실패의 역사가 부단히 반복됐다. 신시컴퍼니는 성공을 발판 삼아 실험과 도전을 이어갔다. 안정적인 수익 창출에 기댈 수 있었지만, 굳이 안주하지 않았다. 대형 제작자로 성장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시컴퍼니는 이른바 공연계 ‘돌려막기(?)’의 대명사다. 스테디셀러 히트작들이 탄탄히 기반을 닦으면 마이너스가 나는 작품들에 도전했다. 해마다 신시의 1년 라인업을 살펴보면 인기작과 도전적 작품이 번갈아 올라온다. 대표 히트작은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렌트’. 이 네 작품은 명실상부 ‘효자 작품’으로 제작사의 매출을 떠받치고 있다. 네 작품으로 벌어들여 신작이나 제작비가 많이 드는 기존 작품에 ‘재투자’하는 것이 신시컴퍼니의 제작 형태다. 업계에서 “신시는 돈과 흥행을 바라보는 제작사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제작사로서 신시컴퍼니의 강점은 “시차 없이 가져오는 원작의 탁월한 한국화”라고 입을 모은다. 원종원 교수는 “의역을 통해 수입 뮤지컬 안에 의미와 풍자를 담은 영리한 현지화”를 보여준다고 했고, 지혜원 교수도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원작 안에 한국적 정서를 담은 것이 신시가 가진 힘”이라고 했다. 신시컴퍼니가 탄탄한 매출원이 된 작품들을 갖추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 초연, 지난 3월까지 24년간 총 아홉 번의 시즌을 이어가고 있는 신시컴퍼니의 스테디셀러인 ‘렌트’. [신시컴퍼니 제공]

신시컴퍼니가 현재의 기틀을 다진 빅히트 작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이 시기는 뮤지컬 태동기였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재미로 이후 설앤컴퍼니 제작)이 7개월의 장기 공연을 통해 197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이후, 한국 뮤지컬은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원종원 교수는 “뮤지컬은 배고픈 예술이자 연극의 지류 장르라고 생각하던 시기에 좋은 라이선스를 확보해 공연을 올리는 제작자 두 곳이 등장했다”며 “당시 설앤컴퍼니(현 에스앤코)와 신시컴퍼니로, 이들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판도를 바꾼 제작사”라고 설명했다.

신시컴퍼니의 출발이 조금 더 빨랐다. 신시컴퍼니는 2000년 뮤지컬 ‘렌트’를 한국 관객에게 처음 소개했다. 1996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불과 4년 만에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이선스 공연의 막을 올린 것이다.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는 이 작품을 “신시컴퍼니가 제작사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작품”이라고 봤다.

2000년 초연한 ‘렌트’는 지난 3월까지 24년간 총 아홉 번의 시즌을 이어가고 있는 신시컴퍼니의 스테디셀러다.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원작으로 한 ‘렌트’는 1990년대 뉴욕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뮤지컬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청춘의 이야기’로 자리하고 있다. 초연 당시 작품에 녹아든 동성애, 마약, 에이즈 등의 소재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컸으나 작품은 성공의 기쁨을 안겨줬다.

2021년 공연 당시 티켓 판매 1위를 기록한 뮤지컬 ‘시카고’. [신시컴퍼니 제공]

‘렌트’와 함께 신시컴퍼니의 대표작인 ‘시카고’ 역시 2000년 상륙했다. ‘스몰 라이선스’로 작품을 사와 인순이 최정원 전수경 등 1세대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했다. 음악과 스토리만 사용하고 연출은 완전히 뒤바꾼 버전이다. 이후 2007년 레플리카 버전으로 브로드웨이 무대를 고스란히 올린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니멀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무대에서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로 승부하는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색다른 의미를 안겨준다. ‘시카고’는 2018년 100만 관객을 돌파했으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11번째 시즌인 2021년이었다. 오리지널 ‘시카고’ 내한공연의 연기마저 바꿔버린 빌리 플린 역 최재림의 복화술 연기가 SNS를 강타하며 입소문이 났다.

박병성 평론가는 “‘시카고’는 2000년 시작했으나 2010년 이후 제작한 작품은 초창기 ‘시카고’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며 “1975년 브로드웨이 초연작이 지금도 흥행하고 있다는 것은 작품을 보는 선구안이 탁월하다는 방증이다”라고 했다. ‘시카고’는 내달 12번째 시즌(6월 7일 개막, 디큐브링크센터)으로 막을 올린다.

1970년대의 슈퍼스타 아바의 음악으로 제작한 뮤지컬 ‘맘마미아’는 신시컴퍼니 최고의 히트작이다. 1999년 웨스트엔드 초연, 2001년 브로드웨이 인기 초연작의 라이선스를 빠르게 확보한 신시컴퍼니는 2004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 무대를 갖는다. 정 본부장은 “당시는 자본의 규모가 커지며 뮤지컬이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장르로 태동하던 시기였다. 라이선스 작품, 티켓 시스템이 정립되며 그 안에서 장르가 성장하던 때였다”며 “온라인 티켓 시스템이 안정화됐고, 하루에 티켓이 3000~4000장씩 팔려나갔다”고 돌아봤다.

뮤지컬은 ‘맘마미아!’ [신시컴퍼니 제공]

‘맘마미아’는 한국 뮤지컬 중 가장 빠른 시간 내에 1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초연 6년 후인 2010년 100만, 2019년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뮤지컬에서의 100만 관객은 티켓 가격을 평균 10만원으로 환산했을 경우, 영화로는 1000만 관객에 해당한다. 성별, 연령을 초월해 사랑받은 슈퍼 대작이라는 의미다. 200만 관객을 모았다는 것은 단순 매출 환산으로도 2000억원을 달성했다는 의미다. 영화로 치면 ‘기생충’에 맞먹는 수익이다.

2005년 신시컴퍼니는 마침내 디즈니와 손을 잡는다. 2005년 초연한 ‘아이다’를 통해서다. 디즈니의 뮤지컬 작품은 타제작사에서 인연을 맺고 있었으나, 신시컴퍼니가 ‘아이다’ 라이선스를 확보하며 무대 세트를 배에 실어 통째로 가져왔다. 초연 당시 장장 8개월의 대장정을 이어간 이 작품은 미장센의 극치를 보여주며 새로운 무대 미학을 제시했다. ‘아이다’는 2022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00년대 신시컴퍼니는 굵직한 대작들을 통해 업계의 성장을 도모했다. 원종원 교수는 “번안 뮤지컬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시장의 확장에 기여했고, 한국 뮤지컬계가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봤다.

대작들 사이사이 신시컴퍼니의 실험이 이어졌다.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될 법한 도전들이 나왔다. ‘렌트’의 초연으로 ‘흥행의 맛’을 보고선 ‘틱, 틱...붐!’을 3개 극장에서 올리는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맘마미아!’, ‘아이다’의 성공 후 2005년 대학로에 신시뮤지컬극장(현 대학로 TOM)을 열며 실험작들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뮤지컬 ‘유린타운’(2005), ‘까미유끌로델’(2005)이 대표적이다. 2007년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파격적 시도였다. 이듬해엔 신시뮤지컬컴퍼니로 사명을 바꾼 이후 첫 연극 ‘침향’(2008)을 제작했다.

지혜원 교수는 “제작사로서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수입원이 돼준 완성도 높은 작품들의 등장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뚝심있게 도전하는 박명성 대표의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선 160분의 러닝타임 중 어린이 주인공인 빌리가 무대 위에서 춤추고 연기하는 시간은 140분이나 된다. 완벽한 빌리를 보여주기 위해 네 명의 빌리가 준비한 시간은 무려 1만 3488시간이다. [신시컴퍼니 제공]
‘뚝심의 행보’…2010년대, 경제성 따지지 않는 도전

2010년대는 ‘뚝심의 행보’가 이어졌다. 스테디셀러를 바탕으로 타제작사에선 시도하지 않는 도전이었다. 기존 작품들의 흥행에 안주했다면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겠지만, 이들의 행보는 청개구리처럼 어디로 튈지 몰랐다.

이 시기는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많이 드는 작품’이 대거 쏟아졌다. 정 본부장은 “경제성을 따지지 않고 소개하고 싶은 좋은 작품을 내놓은 시기”라고 했다. 한 마디로 “돈, 시간, 노력은 많이 들지만 거둬들이는 성과는 기대 이하”인 작품들이다.

2013년엔 영화 ‘사랑과 영혼’을 원작으로 한 ‘고스트’가 막을 올렸다. 자동화된 무대와 마술이 더해져 공연장에 무대를 만드는 시간만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작품이다. 2014년 초연, 동명의 영화를 가져온 ‘원스’는 배우들 전원이 악기를 다뤄야 하는 작품이었다. 연습 기간만 장장 8~9개월. 기존 뮤지컬의 연습기간이 2개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이 작품은 ‘액터 뮤지션의 시초’가 된 작품이나, 의미와 노력만큼의 성취는 거두지 못했다. 10년 만인 내년 다시 막을 올린다.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가 시작된 것도 2010년대다. ‘빌리 엘리어트’의 한국 초연(2010)은 타제작사인 매지스텔라였으나, 작품은 이후 자취를 감췄다. 신시컴퍼니는 2017년부터 이 작품을 올렸다. ‘마틸다’는 2018년 초연했다. 두 작품의 제작이 쉽지 않은 것은 유명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배역이 마땅치 않아 ‘흥행’은 담보할 수 없는데, 제작기간은 2년이 넘게 걸려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두 뮤지컬 모두 어린이 배우들이 주인공. 이 때부터 신시컴퍼니는 제작사를 넘어 ‘배우 양성소’의 역할도 갖추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어린이 배우들에게 춤, 노래, 연기 등 엄격한 트레이닝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극단 시절의 역할론을 이어온 작품들이다.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로 신시컴퍼니는 제작사를 넘어 ‘배우 양성소’의 역할도 갖추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어린이 배우들에게 춤부터 노래까지 엄격한 트레이닝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신시컴퍼니 제공]

원종원 교수는 두 작품을 “미래의 한국 뮤지컬 시장을 이끌 인력을 발굴하고 가족 뮤지컬 시장을 만든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최승연 평론가는 “어린이 배우를 통해 연령대를 낮춘 실험을 한 작품”이라고 봤다.

이 시기 신시컴퍼니의 중요한 도전은 ‘극단 신시’의 뿌리를 이어 연극 작품을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앞서 2009년 지금의 법인명이 나왔고, 2010년대에 많게는 한 해 동안 연극 세 편, 뮤지컬 세 편이 무대에 올랐다. 평균 뮤지컬 세 편, 연극 두 편 정도를 이어갔다.

정 본부장은 “박명성 프로듀서는 대표 시절부터 모든 뮤지컬의 뿌리는 연극이며 신시컴퍼니의 뿌리 역시 연극이라고 판단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뮤지컬에 집중하며 회사와 업계의 기반을 닦은 이후, 신시컴퍼니는 뮤지컬 회사만이 아니라는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5.18을 다룬 ‘푸르른 날에’는 2011년 초연 이후 다섯 번의 시즌을 이어가며 매번 매진 사례를 기록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렛미인’은 연극 최초로 원작 프로덕션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레플리카 프로덕션’ 형태로 진행됐다. 안무가 스티븐 호겟,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주나 연습과정은 물론 무대 제작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품이다.

손숙, 박정자 등 연극계 대모들의 데뷔 OO년을 기념하는 ‘기념작’을 올리는 유일한 제작사가 신시컴퍼니이기도 하다. 2016년 초연한 연극 ‘햄릿’은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이다. 이호재(83), 전무송(83), 박정자(82), 손숙(80), 김재건(77), 정동환(75), 김성녀(74), 남명렬(65), 박지일(64) 등 무대 위에서 수십년의 세월을 보내온 원로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대작이다. 원로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대극장 연극을 올리는 추진력은 신시컴퍼니였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박병성 평론가는 “상업적인 작품으로 뮤지컬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햄릿’과 같은 의미있는 연극을 통해 공연계의 터전을 다지고 있다”고 봤다.

“주체적 행보의 제작사”…다양성으로 세대 초월 관객 확장 기여

뮤지컬은 ‘맘마미아!’부터 ‘빌리 엘리어트’까지, 연극은 오컬트 물인 ‘2시 22분’부터 고전 ‘햄릿’까지….

국내 뮤지컬 제작사들은 각사마다 작품 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신시컴퍼니는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하나의 색깔에 국한하지 않고 장르 확장에 힘을 보탰다.

정 본부장은 “외국의 이야기든 한국의 이야기든 우리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작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화려한 무대 디자인과 의상은 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출연하고, 그 안엔 10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속성, 우리의 삶과 동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와 재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 우리의 방향성”이라고 했다.

작품 라인업의 ‘다양성’은 상업화된 뮤지컬 시장에선 어려운 시도다. 뮤지컬 업계는 셀러(Seller, 판매자이자 원작자) 중심의 시장으로 제작사는 양질의 작품을 가진 원작자와 이들과의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주요 레퍼토리를 구축하고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원종원 교수는 “신시컴퍼니는 셀러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작품을 선택,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며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세계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주체적인 행보를 하는 제작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작자로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원작자, 셀러들과 돈독한 신뢰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신시컴퍼니는 인기 라이선스를 우선적으로 확보하며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작품이 내놓을 수 있었다.

지혜원 교수는 “다양한 작품의 제작을 통해 신시컴퍼니는 시장 확장의 노력을 이어왔다”며 “‘맘마미아!’를 통해 중장년 관객을 극장에 불러왔고,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로 어린이 관객, 가족 관객을 확보하며 한국 뮤지컬 업계의 관객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박병성 평론가는 “신시컴퍼니는 좋은 작품을 보는 눈과 성실하게 제작하는 노하우, 오랜 네트워크와 마케팅으로 관객을 동원하는 힘을 갖춘 제작사로 이러한 강점이 한국 뮤지컬 시장의 질서를 만들었다”고 봤다.

[영상출처=신시컴퍼니]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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