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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까지 뺏는 댓글창, 온라인 ‘여론조작의 장’ 전락
뉴스종합| 2024-05-23 11:32

#1. 모델 출신 배우 이철우는 가수 정준영 단톡방 연루 의혹이 재차 불거지자 20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시 회사를 통해 입장을 밝힌 것과 같이 해당 대화방에 저는 포함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부인하면서 “몇 년간 지속되는 허위 사실과 악플로 저뿐만 아니라 가족, 지인들까지 고통받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2. 2017년 경쟁업체에 대한 허위 비방 댓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해 손해를 끼친 한 유아매트업체 B사 대표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회사 대표는 경쟁사 제품의 친환경인증이 취소되자 불법적으로 구매한 수백개의 아이디를 활용해 맘카페 등에서 소비자인 척 후기 및 댓글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네티즌의 실시간 소통과 온라인 공론의 장을 자임했던 온라인 댓글창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갈수록 커지고 짙어지고 있다. 일부 악성 댓글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댓글창이 이미 미확인 정보의 홍수 속에 편중된 여론조작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 ‘무지성 악플’ 일반인과 유명인 구분 없어=타인에 대한 악의적 비방 또는 비하를 목적으로 작성하는 악성 댓글로 피해를 보는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3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 범죄는 ▷2018년 1만5926건 ▷2019년 1만6633건 ▷2020년 1만9388건 ▷2021년 2만8988건 ▷2022년 2만9258건 등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피해 대상은 일반인과 유명인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무분별하게 퍼지는 자극적 허위 정보는 군중 심리를 자극해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특정인에 대한 집단 괴롭힘을 뜻하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이른바 ‘좌표 찍기’로 이어지기 쉽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우울증을 앓거나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올해 3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김포시청 공무원 A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야간에 실시된 긴급 도로공사와 관련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차량 정체가 극심하다’며 담당 공무원 A씨의 신상과 개인정보가 올라왔다. A씨는 당일 자정 이후까지 현장을 지켰지만, 댓글창에는 ‘공사 승인하고 집에서 쉬고 계신 분이랍니다’, ‘집에서 쉬고 있을 이 사람 멱살을 잡고 싶다’ 등 허위 사실이 담긴 악성 댓글이 다수 달렸다. 지속되는 악성 댓글과 민원 등 비난에 괴로워하던 A씨는 닷새 뒤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 등 유명인을 겨냥한 악의적 허위 댓글은 더욱 심각하다. 특정 이슈가 발생하면 재빨리 콘텐츠를 만들어 조회 수로 돈을 벌어들이는 이른바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들이 이 같은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유명 아이돌 멤버에 대한 가짜 뉴스를 콘텐츠로 제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튜버 C씨의 경우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튜브 채널 ‘탈덕수용소’에 유명인을 비하하거나 ‘성매매를 했다’는 내용의 거짓 영상을 제작·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6만명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를 보유한 C씨가 이 같은 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월평균 1000만원, 총 2억5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민병철 선플재단 이사장(중앙대 석좌교수)은 “앞서 경제연구기관이 추산한 우리 사회의 갈등 비용 규모는 300조원에 이른다. 특히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사이버혐오에서 비롯된다”며 “상대를 향한 비방, 악성 댓글은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을 넘어 미래새대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악성 댓글에 흠집 난 ‘기업 이미지’, 허위 입증해도 피해 복구 어려워=미확인 정보가 담긴 악성 댓글로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경우 자칫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경쟁 유아매트 업체 제품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허위 댓글을 단 B사 대표의 경우 법원으로부터 이례적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피해 업체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피해 업체의 제품에 대해 ‘인체위해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B사 대표 등은 ‘경쟁사 매트를 없애니 아이의 아토피가 없어졌다’는 등 불안감을 조성하는 거짓 후기와 댓글을 다수 게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업계 2위였던 B사는 1위로 올라섰지만, 피해 업체는 매출이 90% 이상 급감, 이듬해 적자 전환, 공장 매각 등 존폐 위기에 몰렸다.

악성 허위 댓글로 인한 피해는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A사는 현대자동차가 자신의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1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 측은 기술 탈취 등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사법부는 1심·항소심·상고심에서 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된 기간 동안 온라인 댓글창에는 ‘협력업체는 안중에 없느냐’ 등 근거 없는 비방성 댓글이 이어졌다. 기술 탈취 의혹은 벗었지만, 악성 댓글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물론 댓글 작성자 가운데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악성 댓글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은 이미 수십조원 수준까지 치달았다. 2022년 연세대 바른ICT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 35조원 수준에 이른다.

재계 관계자는 “허위 사실임을 입증한 뒤에도 악성 댓글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 회복도 쉽지 않다”며 “저질 제품의 홍보 댓글을 돈을 받고 작성하는 전문 대행사가 등장하는 등 온라인 댓글창은 이미 편중된 여론 조작의 장”이라고 지적했다.

서재근·김성우 기자

likehyo8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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