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피쳐폰 만든 하이네켄, ‘콜포비아’ Z세대 때문?[원호연의 PIP]
뉴스종합| 2024-05-26 19:27
[스퀘어스페이스 제공]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스마트폰은 현대인에게 더이상 생활 필수품 정도가 아니다.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현상을 야기할 수준에 다다른 ‘중독 디바이스’이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에서 스마트폰을 내던져버리라는 도발적인 메세지가 나온다. 그것도 하이네켄 처럼 큰 광고주에서 나오는 얘기다. 배경은 새로운 소비층인 Z세대가 느끼는 디지털 피로감이다.

지난달 하이네켄은 키패드와 손전등, 라디오, 저해상도의 카메라 정도만 갖춘 플립폰을 내놨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셜 미디어(SNS)에 접속할 수 없는 이 전화기는 인터넷 속 또다른 삶을 유지하지 않아도 직접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절로 데려다준다. 이름은 도발적이게도 ‘보링 폰(Boring Phone·지루한 폰)’이다. 보링 폰은 추첨을 통해 5000개만 판매되는 마케팅이다.

[하이네켄 제공]

지난해 테킬라의 대표 브랜드 호세 쿠엘보도 수백대의 피쳐폰을 경품으로 나눠주며 비슷한 광고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웹 디자인 회사인 스퀘어 스페이스는 올해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 슈퍼볼 광고를 통해 인류가 스마트폰을 쳐다보다 외계인의 지구 도착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강조하는 광고는 심지어 스마트폰을 만드는 테크업계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오포(Oppo)는 아시아 전역에 저녁 식사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를 즐기라(#EnjoyThePresent)”고 독려하는 광고 캠페인을 송출했다.

이러한 광고 캠페인은 기술이 현실 세계를 충분히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망치고 있다는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 Z세대는 최근 피쳐폰이나 오래된 자동 카메라 등 최신 기술에서 뒤처진 기기들을 선호하는데 이런 경향은 끊임없이 연결돼 있는 초고도 연결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전화 통화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른바 ‘콜포비아(Call phobia)’도 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하이네켄 브랜드의 글로벌 책임자 나빌 나세르는 “젊은 세대는 외출 중이나 사교 모임에서 스마트폰과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은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현실세계와의 연결을 즐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링 폰 캠페인은 맥주를 더 많이 구매하도록 하기 위함이기보단 사교의 즐거움과 하이네켄 브랜드의 연관성을 간접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는 나아지고 있다지만 국내외에서는 분쟁과 선동적인 전쟁과 같이 골치 아픈 일로 가득하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20개국 명단에서 밀려나는 등 소비자들은 여전히 우울하다”며 “마케터들은 더이상 소비자들에게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말하기 보단 그 반대의 사실에 기대고 있다”고 짚었다.

광고 에이전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의 루시 제임슨은 “마케터들이 가장 중시하는 소비그룹 중 하나인 중산층 가정은 스마트폰과 같은 기술 사용의 증가와 이로인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신 건강 문제에 우려하고 있다”며 광고 업계가 디지털 디톡스에관심을 갖는 배경을 설명했다.

광고를 집행하는 브랜드들은 브랜드 충성도가 낮은 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디지털 디톡스에 관심을 갖는다. 스마트폰에 대한 Z세대의 불안에 공감하는 기업이 향후 Z세대를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 스마트폰과 SNS를 끊고 무엇을 할 것인지 직접 제안하는 마케팅도 나오고 있다.

데이트 앱 힌지는 지난해 말 ‘한시간 더’라는 마케팅 기치 아래 Z세대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직접 만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Z세대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주요 도시 사교클럽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재키 잰토스 힌지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Z세대가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근본원인은 직접 만나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만남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 무엇인지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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