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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항소심…‘삼바 회계 처리’ 놓고 격돌 예고
뉴스종합| 2024-05-27 17:1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승계를 둘러싼 항소심이 시작됐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을 먼저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1심에 비해 보다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 백강진)는 27일 오후 3시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주식회사등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위반(외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해 삼성그룹 관계자 14명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이란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쟁점 사항을 점검하고 입증계획 등에 대해 양측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어 이날에는 변호인들만 참석했다.

앞서 지난 2월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부장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이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전원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 회장 승계 의혹 핵심 쟁점은 크게 2가지다. 첫번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가치를 떨어트리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려 이 회장측에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했는지 여부(자본시장법 위반)다. 두번째 쟁점은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회계 부정이 있었는지(외감법 위반) 여부다.

1심 재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을 둘러싼 과정에 공판이 집중됐다. 검찰은 항소심에서는 이를 뒤집어 먼저 외감법 위반, 즉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다고 했다. 검찰측은 “1심에서는 다수 범죄 사실이 종합된 자본시장법 위반(심리)을 먼저 진행하고 전문적인 회계 지식이 필요한 외감법 위반은 나중에 진행했다”며 “시간상 문제로 외감법 위반과 관련해 충분한 설명과 재판부 설득이 어려웠다. (2심에서는) 외감법 위반 쟁점에 대해 먼저 진행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회계 부정 혐의는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의 바이오젠과 합작해서 세운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 처리가 적절했는지가 핵심이다. 설립 당시 지분 구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85%, 바이오젠 15%였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50%-1주를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검찰은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지분 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는데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리 공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검찰은 또 2015 회계연도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전까지 종속회사였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한 것도 회계 부정이라고 봤다.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보유한 지분 가치가 3000억원에서 4조 8000억원으로 증가했는데, 이를 편법 회계를 통한 매출 부풀리기라고 본 것이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측은 글로벌 기준인 ‘원칙 중심 회계’에 따른 것으로 회계 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회계 처리를 둘러싼 쟁점은 ‘원칙 중심 회계’에 대한 해석과 적용에 있다. 원칙 중심 회계는 쉽게 말해 큰 원칙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기업에게 회계 처리 자율권을 준다는 의미다. 회계 처리 기준을 세세하게 정해둔 규칙 중심 회계와 반대되는 말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외감법 위반에 대해 전부 무죄 판결했다.

검찰은 2심 재판 과정에서 전문가 등 11인을 증인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계 전문가, 자본시장법 전문가 등이다. 삼성그룹측은 검찰 항소 이유를 모두 부정하면서 항소심 증인이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삼성측은 “검찰의 주된 항소 이유는 원심 판단에 사실 오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신청한 증인 상당수는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들”이라며 “합병 과정이나 회계 처리에 관해 여러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검찰의 입장에 맞는 의견을 법정에서 듣겠다는 것으로 항소심에서 적절한 증인인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특히 자본시장법 전문가로 신청한 증인들은 이미 다수의 방송, 저서, 기고문을 통해 합병에 대한 본인을 밝혀왔기 때문에 기고문을 증거로 제출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또다른 삼성측 변호인은 “검찰은 1심에서 회계 쟁점과 관련해 충분한 심리 내지 증거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시) 회계 관련 검찰 증인만 31명이었고, 피고인측 증인 6명까지 신문이 이뤄졌다”며 “항소 이유서와 함께 제출된 전문가 의견서에 대한 심리가 이뤄지면 충분하다”고 했다.

양측 의견을 들은 백 부장판사는 검찰측에 추가 소명을 요청했다. 백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1심에서 조사되지 않은 내용 등 3가지 예외 사유에 대해서만 증거 조사를 하기로 돼있다”며 “증인 11명 대부분이 진술조서가 작성돼있는 등 다소 취지에 맞지 않아 추가 소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외감법, 자본시장법 위반의 경우 전문가들끼리 의견이 갈린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1명씩 대응시키다 보면 국내 전문가가 모두 나올 때까지 증인조사를 해야한다는 것인가”라며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해야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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