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수백년 뒤에도 기억되는 악기 제작자 되고 싶어요”
라이프| 2024-06-10 11:20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악기 제작자 협회의 최연소 회원인 바이올린 제작자 안아영 씨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스트라디바리 같은 명장의 고향인 크레모나 바이올린 제작 업계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했다. [본인 제공]

스트라디바리·과르네리·아마티.... 수 백년간 현악기를 만들어온 ‘명장’들의 고향이자 200여 개에 달하는 ‘악기 공방’이 모여있는 곳에 K-웨이브의 손길이 닿았다. 크레모나 악기 제작자 협회의 최연소 회원이 된 안아영(32) 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안씨를 “바이올린 제작계의 떠오르는 스타”라고 극찬했다.

스트라디바리의 고향인 이탈리아 북부 도시 크레모나에 머물고 있는 안아영 씨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나를 담아내는 악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자라 초등학교 때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한 안씨는 서울의 한 예고에 진학했지만 연주자보다는 ‘악기 제작자’라는 직업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께 악기를 만드는 유학을 가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고, 지난 2011년 크레모나의 국제 바이올린 제작 학교(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스쿨)에 입학했다.

학교에선 ‘바이올린 제작’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바이올린 하나를 만들기 위해 무려 40~50가지의 세분화된 과정을 거친다. 모든 작업은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는 “첫 작업은 쪼개진 통나무를 깎는 것부터 시작한다”며 “정성들여 나무를 깎는 과정을 마치면 칠을 하고, 그 다음 줄을 올려 소리를 담는 작업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보통 바이올린은 단풍나무와 가문비나무를 써서 제작한다.

“오래된 나무는 나이테가 생기는데 이 나무가 어떤 사계절을 보냈는지, 어떤 건조 과정을 거쳤는지에 따라 저마다 성질과 밀도가 달라요. 그래서 똑같이 제작을 해도 결과는 다 다르죠. 간단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 수십 가지의 공정이 있고, 자기만의 노하우가 쌓이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학교 졸업 후엔 현지 공방에서 3년 간 일하다 2020년 크레모나에서 자신의 예명을 따 ‘아리에티 현악(Arietti String)’이라는 공방을 열었다. 크레모나는 16세기부터 현악기 제작 명장들이 바이올린을 만든 곳으로, 2012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3대 거장인 스트라디바리·과르네리·아마티의 악기 최고가는 1500만 ~2000달러(한화 200억~270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안씨의 바이올린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안씨의 악기는 현재 2000만원~3000만원 정도다.

악기를 완성한 후 가장 마지막 단계는 악기 안쪽에 불도장으로 그의 이름(Ayoung An)을 찍는 것이다. 이를 제작자들은 ‘세례’ 과정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악기 제작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수백년의 시간이 흘러도 제가 만든 악기와 이름이 남겨지고 누군가는 기억해준다는 것에 (감정이) 벅차 오르더라고요. 악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고, 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저를 기억한다는 믿음이 있어 매일의 최선을 다하게 돼요.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해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