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그날,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우동이 필연이 된 순간[우리사회 레버넌트]
뉴스종합| 2024-06-18 10:01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기리야마본진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후루룩’ 우동 한 가닥을 빨아 당기자 쫀쫀하고 탱글한 면발이 입 안 가득 찼다. 식당이 수시로 문을 열었다 닫는 서울 강남에서 12년째 우동을 팔고 있는 ‘기리야마 본진’의 자루 우동이다. 단지 우동 한 그릇일 뿐이지만, 이 우동에는 수많은 우연이 겹쳐있었다. 24년 전, 신상목 대표가 일본 오쿠타마에서 우동집 ‘기리야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외교관으로 파키스탄 대사관에 부임해 폭탄 테러를 눈앞에서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메르스와 코로나19를 견뎌내지 못했다면. “우동이 나에게로 왔다”는 신 대표는 ‘우동’이라는 인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28년 전, 신 대표는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0회 외무고시를 합격했다. 나름 잘나가는 엘리트였던 그는 이제 가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우동과 초밥을 팔고 있다. 2000년 일본 와세다대 아시아태평양대학원 연수는 그의 미래를 바꿨다. 도쿄에서 두 시간여 떨어진 곳에 있는 100년 전통의 ‘기리야마’ 우동집을 만나면서다. “정말 맛있다”는 한 마디로 시작된 우연한 인연이 신 대표 마음에 씨앗을 심었다.

“처음 기리야마를 방문하고 6년이 지나서 다시 방문했는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똑같은 거에요. 마치 나를 기다려준 느낌, 본질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정신. 그때 제 마음 속에 씨앗이 심어졌죠. ‘이 감성을 한국 사람에게도, 서울 한복판에서 내가 전해주고 싶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제가 스스로 결정하고 제가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직장인이라면 다 공감할거에요. 1년, 3년, 5년, 10년 주기로 위기가 오잖아요.(웃음) 빌린 삶이 아니라, 과거만 추억하는 삶이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동경도 싹튼 거죠.”

막연한 동경이 필연으로 다가온 순간은 우연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2008년 파키스탄 대사관에 부임한지 한달째였던 그해 9월 20일. 수도 이슬라마바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밍기적 거리는 바람에 예약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도착했다. 호텔 도착 직전, 1톤짜리 폭탄을 메단 차가 호텔 바리케이트에 부딪혔고 식당을 포함한 1층 전체가 초토화됐다. 50여명이 죽고 250여명이 다쳤다. 생과 사의 순간을 눈 앞에서 목격한 것.

“10분만 일찍 도착했다면 저도 흔적도 없이 죽었을 거에요.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는 상황을 파악하고 교민들 안위 확인하고 정신이 없었죠. 이튿날 사망자 명단을 보는데, ‘내가 이 명단에 있을뻔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일 일도 기약할 수 없는데 뭘 그리 주저하고 망설이고 살아야 하나.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원하는 게 있으면, 죽을 때 후회 안하려면 해보고 죽는 게 맞는거 같다. ‘마지막 지푸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는 속담’이 있죠. 마지막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된 거에요. 그때 확신이 들었습니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기리야마본진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필연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신 대표는 4년 간 치열하게 준비했다. 일본 도쿄의 기리야마 주인 할아버지에게 자필 편지를 썼다. 18살 때부터 가업을 도와 우동을 만들어 온 할아버지의 인생을 존경하는 의미를 가득 담았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돈키호테 이야기도 썼다. ‘세상 사람들이 돈키호테 같다고 할지라도,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있어야지 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나도 우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해보고 싶다.’ 할아버지는 장고 끝에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답장을 줬다. 그리고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의전기획과장을 끝으로 외교부에 사표를 냈다. 지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반대했고, 아내에게 이혼 당할 뻔하고, 딸과는 말도 섞지 못했다.

“사표를 내기 전 4년 간 치열하게 준비를 했어요. 재일교포 3세이신 우리 가게 제면 부장님을 기리야마로 보내 숙식 생활을 하며 기술을 전수 받게 했어요. 저도 3일, 일주일씩 휴가를 낼 때마다 기리야마에 가서 기술을 전수 받았죠. 밀가루는 요물이어서 누가 만들면 천하의 형편없는 음식이 되고 누가 만들면 천상의 음식이 돼요. 미세한 습도, 온도 차이, 염도 조절까지 하나하나 배워왔습니다. 당시에는 도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도박이죠.(웃음) 성공하면 용기고, 실패하면 만용이 되잖아요.”

그리고 2012년, ‘기리야마 본진’은 강남에 자리를 잡게 된다. 개업을 하고 아내가 건넨 첫 마디는 “잘해.” 간절함을 담은 한 마디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창업한지 3년 만에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도 겪고 길었던 코로나19 시기도 겪었지만 ‘죠렌(단골의 일본말)’ 덕분에 12년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한 단골 손님은 코로나 시기 QR코드를 인식하는데 사용되는 휴대폰을 빌려주기도 했다. 주말에는 공동화되는 강남 상권이지만, 단골 덕분에 주말인 토요일에도 가게가 넉넉히 찬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기리야마본진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저희 집은 삼무(三無)집이에요. TV가 없고, 시계가 없고, 달력이 없어요. 강남 한복판, 지하에 가게가 있잖아요. 밖에 나가면 번잡스럽고 스트레스 받는게 있겠지만 가게에 온 순간은 밖의 소식들 다 잊어버리시고 음식과 나와 같이 있는 사람에 집중하시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음식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영원히 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게 반죽이니까. 면으로, 마치 스티브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들어 낸 것처럼 면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데 관심이 있어요. 그걸 가지고 세계로 나갈 거예요.”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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