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반
“세상에 없는 제품 준비” 금호석화, 중국 못 넘볼 ‘소재장벽’ 쌓는다[K-석화, 불황 아이콘 벗자]
뉴스종합| 2024-06-13 11:30
고영훈(왼쪽)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장(부사장)과 곽광훈 고무연구담당 상무가 지난 11일 대전 유성구 금호석화 중앙연구소 전시실에서 타이어에 쓰이는 합성고무 소재를 소개하고 있다. 김은희 기자

“전기차로 가면 자동차가 무거워지고 타이어 하중도 늘어나게 됩니다. 자동차 회사는 타이어 회사에, 타이어 회사는 소재사에 타이어의 퍼포먼스(기능성)를 올리라고 요구하죠. 준비된 자가 그 시장을 차지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내마모성이 월등한 세상에 없는 제품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먹거리를 많이 만들어 낼 겁니다.”

지난 11일 대전 유성구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에서 만난 고영훈 연구소장(부사장)은 중국발(發) 범용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과잉 역풍을 이겨낼 전략으로 고성능 고부가가치 제품을 내세웠다.

고 소장은 “정부 주도로 돈을 기하급수적으로 퍼붓는 중국과는 가격 경쟁을 할 수 없고 생산 효율화로도 차별화는 불가능하다. 결국 기술 배리어(장벽)를 높여야 하는데 그 배리어를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연구소”라고 말했다.

일본이 1990년대 범용 석유화학을 통폐합하고 스페셜티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듯 금호석화도 고부가 소재 전환을 통해 차별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 개발의 선두에 중앙연구소가 있다는 것이다.

고 소장은 “중국이 못 쫓아올 아이템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면서 “자신 있다”고 단언했다.

일례로 전기차용 타이어 소재인 ‘솔루션 스타이렌 부타디엔 고무’(S-SBR) 신제품 개발이 목전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2027년부터 시행되는 유로7 배출 규제에 타이어 마모로 발생하는 미세입자가 포함되면서 타이어의 내마모성 향상에 대한 니즈가 커졌고 금호석화 중앙연구소는 더 높은 내마모성을 구현할 방안을 연구해 왔다.

S-SBR은 금호석화의 주력 합성고무 제품으로 주로 친환경·고성능 타이어에 사용된다. 타이어는 미세 탄소분말인 카본블랙으로 만드는데 접지력이 좋지 않아 통상 규소 성분의 실리카를 혼합해 활용한다.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이들 물질을 섞이게 하는 게 바로 S-SBR 기술이다. S-SBR은 특히 점탄성이 높아 타이어로 사용 시 차량의 안전성과 연비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전기차의 등장으로 S-SBR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늘었다. 이에 금호석화는 2022년 6만t을 증설해 S-SBR의 캐파(생산능력)를 12만3000t까지 늘렸다. 현재 추가 증설도 검토 중이다.

실제 백종훈 금호석화 대표는 지난달 30일 아시아석유화학회의(APIC)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기차는 하중을 많이 받아 그에 맞는 스페셜 합성고무가 필요하다”며 “별도로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하면 추가 증설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고 소장은 “S-SBR 사업에는 우리가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퍼포먼스나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앞서면서 일본을 밀어냈다”며 “이제 중국이 뛰어들고 있지만 앞으로도 신제품을 만들고 기술적 우위를 점할 아이디어가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마모 면에서 월등한 신제품을 두 가지 정도 준비하고 있는데 현재 파일럿(시범생산) 단계까지 마무리했다. 추가 투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금호석화는 S-SBR 시장이 앞으로도 범용화되지 않고 고기능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수요 확대와 더불어 트럭·버스용 타이어 시장에서도 연비 강화 이슈로 S-SBR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레이싱 타이어 같은 초고기능성 시장 성장과 음극재로 사용하는 배터리 바인더 소재의 수요 증가 등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호석화가 경쟁사에 비해 다소 늦게 S-SBR 시장에 뛰어들고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건 합성고무 분야에서 기술력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특히 금호석화는 중합 기술에 기반한 다양한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1990년대 초 국내 석유화학 기업 연구소 최초로 슈퍼컴퓨터를 도입해 시뮬레이션 정확도를 높여왔다. 지금으로 보면 AI(인공지능)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셈이다.

금호석화 중앙연구소의 ‘연구’는 R&D(Research & Development, 연구개발)가 아닌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 사업화연계기술개발)로 통한다. 이에 이곳 연구소에서는 연구 과제마다 상업 생산까지 5개 스테이지(단계)를 부여하고 각 단계가 마무리될 때 생산, 영업 등 다양한 직군이 모여 게이트키핑(취사선택)을 통해 연구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고 소장은 “연구 단계를 거칠 때마다 비용은 10배, 100배, 1000배, 1만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초기 단계부터 꼼꼼하게 스크리닝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호석화 중앙연구소는 향후 소규모 스페셜티 폴리머 플랜트 추진이 필요하다고 보고 연구소 차원에서 이에 대한 준비를 할 계획이다.

레이싱 타이어 같은 모터스포츠 분야 스페셜티 폴리머의 경우 t당 가격이 1억원로 일반 제품(300만원) 대비 수십배에 달한다. 시장 규모는 작지만 단가가 워낙 높아 생산 효율만 갖추면 제품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때 영업이익률을 80%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고 소장은 “연구개발 분야 투자는 고성능, 고기능성 제품 관련 생산설비와 친환경 제품 생산 설비에 집중될 예정”이라며 “그중 하나로 전기차 타이어 소재에 적합하면서 바이오 소재와 고무를 융합한 바이오 실리카/S-SBR 컴포지트의 상업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전=김은희 기자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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