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동네병원들 집단휴진에 시큰둥…“맘카페, 동네 어르신 민심 살펴야”
뉴스종합| 2024-06-18 10:21
고려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휴진하겠다고 밝힌 18일 오전 고려대 안암병원 모습.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지영 기자

[헤럴드경제=이민경·이용경 기자] 18일 대한의사협회(의협) 주도로 대형병원과 동네병원 등 의료계가 전면 휴진에 들어갔다. 의사들은 이날 하루 휴업하고 여의도에서 총궐기 대회를 연다. 다만 동네병원들의 휴진 참여율은 정부 신고율 보다는 높되 과거 수준을 현저히 상회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기류가 의사들 사이 확산돼 있지만, ‘휴진 병원’ 낙인에 대한 우려도 감지된다.

18일 헤럴드경제가 접촉한 서울 시내 동네병원 31곳 중 이날 하루 전체 휴진 또는 오후 일부 휴진을 결정한 개원의는 8곳으로, 나머지 병원 23곳은 평소와 같이 진료를 이어간다고 밝혔다. 한 병원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로서 평일 하루 쉬면 매출에 타격이 크다”고 했고, 또다른 관계자는 “이미 예약환자가 있는데 휴진을 하면 동네 민심을 잃을 수 있다”며 휴진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서대문구의 한 이비인후과 원장은 “개원하고 4년 동안 일요일이나 법정 공휴일을 제외하고 한 번도 휴진한 적이 없다”며 “특히 어린이 환자가 많은데 갑자기 쉬면 아픈 아이들이 고생하니까 궐기대회 참석을 이유로 휴진하기는 여러모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강동구의 한 정형외과 의원에서도 “이 동네에선 맘카페 눈치가 많이 보여서, 휴진 한번 하면 낙인 찍힐 수 있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내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강동구의 한 내과 의원 원장 역시 “동네 내과의 주 환자는 단골 어르신들이다. 이분들은 예약을 하면 ‘노쇼(No show)’가 없다. 그러니 저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복지부가 공개한 동네병원 휴진 참여율이 4.02%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전날 복지부는 지난 13일 기준으로 18일 휴진을 신고한 의료기관이 1463곳으로 전체 명령 대상 중 극히 일부임을 공개했다.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내과에서는 “어차피 참여율도 저조한데 나설 이유가 없다. 지금에 와서 동네병원 몇 군데 휴진한다고 정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며 “오늘도 하던대로 환자를 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반면 여러가지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 표명을 하기로 결정한 개원의들도 있다.

서울에서 개원한 지 3년차인 정신과 의사 A(46)씨는 “궐기대회 참석 차 전체 휴진하기로 했다. 하루 쉬면 차질이 커서 평소에 주 6일을 일하고 있지만, 이번 정책이 통과되면 결국 저에게도 그 부메랑이 돌아올 것”이라며 “왜 정부는 정책을 결정할 때 현직 의견을 듣지 않고 무시하나. 이번 정권을 지지했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고 말했다.

개원 17년차인 한 이비인후과 원장도 “언론에서 18일 휴진한다고 계속 보도해서 환자들이 그거 보고 병원 방문을 미룰 수 있다. 그럼 문 열고 파리 날릴 수 있어서 저도 오전만 진료하고 닫을 것”이라며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는 것은 정부의 허영심과 공명심 밖엔 안된다”고 강조했다.

복잡한 셈법에 갈팡질팡해 당일 급하게 간호사들에게 휴진 연락을 돌린 사례도 있다.

강서구의 한 이비인후과 간호사는 “원장이 어제 진료 내내 휴진을 할 지 말 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침에 연락와서 오늘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네이버플레이스(업체정보 소개 서비스의 일종)에도 오늘 하루 휴무한다고 공지를 급하게 내걸었다”고 밝혔다.

동대문구의 한 내과 원장도 “개원가는 개인사업자다보니까 보건소에서 행정 처분을 내리면 끝이다. 그래서 다들 마음 속으로는 불만이 많아도 휴진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처럼 강하게 표현하는 데는 고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개원의들을 대상으로 18일 진료 명령과 휴진 신고 명령을 내리면서 정당한 사유 없이 휴진할 경우 영업정지 등 행정 처분과 형사 고발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개원가의 이날 휴진 참여는 2020년 의료계 총파업 당시 첫날 참여율인 32.6%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대학병원 빅5중 가장 먼저 집단 휴진에 들어간 서울대병원에서도 생각보다 ‘진료대란’으로 불릴 정도의 큰 혼란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몇몇 교수들은 예정됐던 외래 진료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뿐만 아니라 비대위를 중심으로 18일 휴진을 선언했던 고대안암병원에서도 이날 오전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은 보였지만, 교수마다 개별적으로 휴진에 참여한 탓에 진료에 큰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연대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오전까지는 정상 진료가 진행중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은 휴진했지만, 교수별로 진료를 그대로 보는 분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타 의료계 단체들 역시 집단 휴진 비판 성명을 내고 있다. 의사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은 전날 성명에서 “의대 교수들의 진료 중단은 벼랑 끝에 놓인 환자들의 등을 떠미는 행위가 될 수 있다”며 “환자 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일부 의대 교수들의 진료 중단, 그리고 그러한 언사를 투쟁 수단으로 삼아 지금도 고통 속에 있는 환자와 시민을 불안하게 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분만병의원협회, 대한아동병원협회, 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등 역시 의협의 휴진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와 대한응급의학회는 의협의 대정부 투쟁을 지지하고 총궐기대회에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진료는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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