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학계 “3번이나 무통·페버 동시사용” 의견… 복지부 ‘하나만’ 추진하다 ‘철회’
뉴스종합| 2024-06-18 18:01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대한산부인과학회 등이 분만에 사용되는 ‘페인버스터·무통주사’ 두 가지 진통제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미 보건복지부에 3차례나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최근 두 가지 진통제 중 하나만을 사용토록 고시를 개정하면서 ‘산부인과 학계가 의견을 내지 않았다(미회신)’고 밝혔으나, 학회 등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두 진통제에 대해 ‘양자택일’ 고시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최근 입장을 바꿔 ‘재검토’에 착수했다.

18일 보건복지부 및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복지부 개정고시의 근거가 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연구원·NECA)’이 지난해 발간한 ‘의료기술재평가보고서2023 개흉·개복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법’에 대해 우려한다는 입장을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1일 밝힌 ‘수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법 설명자료’에서 산부인과의학회는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병행 사용에 대해 ‘미회신’ 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학회가 보낸 의견서에 따르면, “모체태아의학 분과의 의견을 들어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출산율 저하가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모들의 출산으로 인한 통증을 조금이라도 감소시켜줄 수 있는 의료기술은 마땅히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산부인과학회측은 또 “의료기술재평가위원회에서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병합 사용 메타 분석 결과에 따르면, 병용사용이 유의한 효과가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며 “국내 임상 상황에서 복부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통증조절을 위해 페인버스터 병합 사용을 ‘권고하지 않음’으로 심의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가 지난해 10월 31일 발표한 ‘의료기술재평가보고서2023 개흉·개복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법’ 보고서에 따르면 페인버스터를 기존 통증조절법과 함께 사용하는 효과적이라는 소위원회 6명 중 4명의 의견이 있었다. [‘의료기술재평가보고서2023 개흉·개복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법 발췌]

보건의료연구원이 발간한 이 보고서는 ‘페인버스터가 충분히 안전성은 갖췄으나, 무통 주사와 병행 사용 시 통증 감소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했고 이는 복지부가 ‘페인버스터·무통주사’ 두가지 진통제를 함께 사용치 못하도록 하게 한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행정예고의 기반이 됐다고 복지부 측은 설명했다. 복지부는 올해 3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올해 5월 3일에는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 개정고시안을 내놨고, 관련 고시안은 오는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도 소위원회 위원들 6인 중 4인은 개복·복강경 수술에서 페인버스터를 다른 기존통증조절법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말하자면 보건의료연구원의 보고서 내에서도 위원 다수가 제왕절개 등에 여러 진통제의 병용 사용이 효과적이라고 의견을 표한 것이다.

올해 5월에는 대한분만병의원협회도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 고시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는 “제왕절개 수술은 다른 수술보다 상처가 크고, 통증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술에서 널리 사용되는 무통주사만으로는 통증 조절이 잘 될 수가 없다”며 “페인버스터를 병용한 결과 수술 후 통증이 잘 조절되고 있음을 현장에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산부인과 학회 등에 따르면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 통증이 극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피부·근막·자궁 등 모두 7개 안팎의 막을 절개해 태아를 꺼내는 대형 수술인데다 수술 당시엔 통증이 적을 수 있으나, 마취가 깨면 수술 부위에 극심한 통증이 동반된다. 이 때문에 무통주사(PCA·경막 외 마취제)만으로는 통증 억제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여러가지 진통제를 병용해 통증을 조절토록 권고하는 것이 추세다.

제왕절개 수술을 한 산모들에게 ‘페인버스터(CWI 시술)’ 사용이 보편화 된 것 역시 이같은 추세 덕분이다. ‘통증을 날려버린다’는 시술 명칭처럼 제왕절개 수술 이후 수술 통증 제어에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에는 신 의료기술로 선정됐고, 2016년엔 선별급여로 등재됐다. 배우 황보라가 최근 ‘제왕절개 후기’를 쓰면서 의료파업 때문에 페인버스터 없이 제왕절개 수술을 겪었다면서 “칼로 배를 찢어서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올해 3월 열린 ‘2024년 제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서면심의 결과보고’에 따르면, 본인부담률을 80%에서 90%로 조정 및 별도의 급여기준을 마련할 시 현행 대비 약 40억원에서 125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2024년 제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서면심의 결과보고 캡처]

일각에선 건강보험 재정 부담 때문에 정부가 ‘진통제 병용금지’ 고시를 내놨다는 관측도 있다. 올해 3월 제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따르면, 페인버스터의 본인부담률을 80%에서 90%로 올렸을 경우 정부가 부담하는 금액이 최대 125억원까지 절감되는 것으로 계산됐다. 현재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 관련 개정 고시안은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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