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차곡차곡 돈 모으는 시대 지났다” 은행 적금의 몰락…‘한 방’ 노리는 청년들[머니뭐니]
뉴스종합| 2024-06-23 07:37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수년간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회초년생 김모(29) 씨는 최근 첫 월급을 계기로, 여유자금 활용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애초 목돈 마련을 위해 적금 상품을 들려 했으나, 친구들은 하나같이 “누가 요즘 적금을 드냐”며 타박했다. 여타 투자에 비해 ‘큰 수익’을 얻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김 씨는 “적금으로 서울에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면서 “추천받은 투자 상품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저축의 상징과 같았던 은행 ‘적금’의 수요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실제 최근 5년간 은행 자산은 여·수신을 가리지 않고 늘어났지만, 유일하게 ‘적금’의 규모만 꾸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주식·비트코인 등 각종 투자 열풍이 불며, 적금의 주 고객층인 청년층의 수요가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고금리 ‘미끼 상품’이 판치는 은행권의 적금 영업 행태도 소비자 수요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축하려면 적금이었는데” 5년 새 적금 잔액 7조원 줄어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적금 잔액은 33조4831억원으로 약 4년 전인 지난 2020년 말(41조399억원)과 비교해 7조558억원(18.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같은 기간 은행의 여타 수신 자산은 빠르게 불어나는 동안, 적금 잔액만 감소세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실제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같은 기간 630조2249억원에서 889조7062억원으로 259조4813억원(41.2%)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5대 은행의 총수신 잔액 또한 1621조원에서 1987조원으로 366조원(22.5%) 늘어났다.

은행권에서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적금 상품의 주요 소비자층인 2030 청년층의 적금 수요가 감소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실제 유동성 장세로 국내외 증시가 급등하던 2020년부터 국내에서는 주식 투자 열풍이 불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9년 말 618만명이었던 주식 소유자는 2023년 말 기준 1415만명으로 최근 5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주식 보유 금액은 2020년 한 해만 각각 120%, 92%가량 빠르게 늘어나며, 다른 세대에 비해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서울 한 상가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연합]

시중은행 관계자는 “매월 일정한 금액을 꾸준히 납부해 목돈을 마련하는 정기적금 상품의 특성상, 본격적인 자산 형성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들의 수요가 많은 편”이라면서 “2020년 이후 비교적 높은 수익을 보였던 주식시장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수익이 고정된 적금을 이용하는 수요가 다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2년부터 본격화된 기준금리 인상 이후 고금리·고물가에 따라 가계의 저축 여유가 감소한 것도 적금 잔액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순저축률(가처분소득 중 저축에 쓰이는 금액 비중)은 2010년대부터 2020년(11.4%)까지 상승세를 보이다 ▷2021년 9.1% ▷2022년 6.3% ▷2023년 4% 등으로 꾸준히 줄었다. 2023년 기준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잉여자금 규모 158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50조8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적금 가입해도 이자는 ‘쥐꼬리’” 은행권 영업 행태 지적도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일각에서는 은행 적금 상품의 이점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에서는 최근 앞다퉈 10%대가 넘는 ‘고금리’ 적금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고금리만을 앞세운 미끼 상품인 경우가 많다. 카드 발급 등 까다로운 우대조건을 내걸어 실제 최고금리 적용이 어려운 데다, 최고금리를 적용받더라도 적은 납입액 한도 등으로 실질 수익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iM은행(구 대구은행)은 최고 연 20%의 적금 상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최대 납입 기간은 60일에 불과한 데다, 하루 최대 5만원의 납입액 한도를 설정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해도 4만원가량의 이자를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용자수를 늘리기 위한 ‘미끼 상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이 창구 업무를 기다리고 있다.[연합]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정 금액의 돈을 예치하는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를 적금금리가 하회하는 경우도 다수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은행의 정기적금 금리(잔액 기준)는 3.55%로 정기예금 금리(3.75%)와 비교해 0.2%포인트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실질적으로 적금 예금보다 적금 상품 가입자들이 더 적은 이자율을 적용받고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 또한 지난해 9월 ‘최고금리’만을 강조하는 적금 상품 등 과대 광고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설명서와 광고에 우대금리 지급조건을 명확히 기재하고, 추첨 등으로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경우 당첨확률 등을 제시해 합리적 판단을 유도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은행권 관계자는 “고금리를 내건 적금 상품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관련 상품을 내놨을 때 ‘오픈런’을 하는 등 화제성 및 고객 유입 효과도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했을 때, 은행들에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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