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깊이 반성” 사과한 명품사…그런데도 中 퇴출당한 진짜 이유 [북적book적]
라이프| 2024-06-27 14:23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의 광고 장면. 중국인 여성이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우스꽝스럽게 먹는 모습이 담겼다. [돌체앤가바나 중국 공식 SNS 계정]
돌체앤가바나 공동 창립자들이 사과하는 모습. [돌체앤가바나 중국 공식 SNS 계정]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 2018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중국인 여성이 피자와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우스꽝스럽게 먹는 모습의 영상을 광고로 내보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공동 창립자 겸 디자이너인 스테파노 가바나가 “중국은 똥 같은 나라”라고 말한 사실이 공개됐다. 이 회사 수장들은 직접 나서 “깊이 반성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두루뭉술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패션쇼는 취소됐고, 백화점에서 쫓겨났으며,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다.

#.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영화배우 시절 여섯 명의 여성을 성추행하고 모욕한 혐의로 고발됐다. 당시 그는 “깊은 유감을 느끼고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는 사과 직전에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때때로 잘못된 행동을 했습니다. 소란스러운 영화판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실수였고, 당시에는 장난이라고 여겨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놀드는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로 당선됐다.

돌체앤가바나는 신뢰 회복에 실패했고 아놀드는 무너진 신뢰를 되돌렸다. 이 둘은 무엇이 달랐던 걸까. 간단히 말해, 아놀드는 대중이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도덕성 문제에서 역량 문제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리프레이밍’(Reframing)했다. 그 어떤 말로도 성범죄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어쨌든 그는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역량 문제는 사과가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도덕성 문제는 사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간 ‘신뢰의 과학’은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훼손되며,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조직행동학자인 저자는 역량과 도덕성, 이 두 가지를 신뢰를 결정짓는 두 개의 강력한 요소로 정의했다. 신뢰가 무너지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역량이나 도덕성 문제 중 하나라 어떤 유형으로 보여지는 지에 따라 그에 맞는 회복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면 역량 기반이 부족하다고 인지하게 되면, 사람들은 유죄 확정 여부보다 신뢰 위반자가 잘못을 후회하는지, 앞으로 비슷한 잘못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인지 에 대한 신호에 더 쏠린다. 따라서 사과가 효과가 있다. 하지만 도덕성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은 유·무죄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른 뉘우침이나 속죄의 신호는 대부분 무시한다. 따라서 사과가 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연합]

물론 예외도 있다. 도덕성 문제를 역량 문제로 리프레이밍하려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한 페이스북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1년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인스타그램이 10대 소녀들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고, 인신매매를 비롯해 마약거래와 인종 폭력 조장에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선정적인 콘텐츠를 계속 노출시키고 있다는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당시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페이스북은 안전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플랫폼이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페이스북이 사용자 참여와 성장을 저해할까봐 일부러 궤도 수정을 하지 않았다는 본질을 교묘하게 회피한 주장이다.

저자는 “돌체앤가바나의 사과가 실패한 것은 페이스북의 경우처럼 회사가 대중의 핵심 우려를 해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고 전한다. 실제로 돌체앤가바나는 가바나가 중국에 정말로 악감정을 품고 있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홀했고, 페이스북은 중대한 잘못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 무엇도 보증하지 않았다.

신뢰의 과학/피터 H. 킴 지음·강유리 옮김/심심

dsu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