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영상] ‘설거지 알바’하던 식당서 창업했더니…125조 부자 인생역전 [더비저너리 젠슨황]
뉴스종합| 2024-06-29 15:51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인데...아는 게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비저너리]를 챙겨 봐주세요.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신념이 있는지...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의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993년 회사를 창업했을 당시 모습. [CBS 60 minutes 화면 갈무리]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커피도 계속 다시 받을 수 있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누구도 안 쫓아냈다. 창업을 구상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1993년 AMD 출신 엔지니어 젠슨 황과 휴렛패커드(HP) 출신 크리스 말라초프스키, IBM 출신 커티스 프림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너제이에 위치한 ‘데니스(Denny’s)’ 식당에 아침마다 모였다. 이들은 구석에 앉아 커피를 10번씩 리필하며 하루종일 치열하게 토론했다.

데니스 식당은 젠슨 황이 15세 때 버스보이(busboy·식당에서 웨이터 일을 돕는 종업원)로 일했던 곳이다. 시총 3조달러 가치를 지닌 엔비디아는 차고도, 학교 기숙사도 아닌 ‘체인형’ 식당 데니스의 구석 테이블에서 탄생했다.

창업 아이템은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던 황의 아이디어로 결정했다. 그는 더 나은 그래픽을 위한 시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결국 3D 그래픽 카드 회사를 차렸고, 파일에 자주 쓰던 ‘다음 버전(next version)’의 앞 글자인 ‘NV’에서 회사 이름을 짓기로 했다. ‘NV’ 발음과 비슷한 라틴어 인비디아(Invidia·부러움)라는 단어를 찾게 됐다. 회사 이름은 엔비디아(NVIDIA)가 됐다.

2023년 황은 다시 대니스 식당을 방문했다. 캘리 발라드 데니스 최고경영자(CEO)는 “당신의 창업 이야기가 감동적이다”며 지난해 황에게 표창장까지 선사했다. 그가 앉았던 자리는 ‘1조달러(2023년 기준) 기업을 만들어낸 자리’로 헌정됐다.

황은 표창 소감으로 “식당에서 일할 때 나보다 커피 잔을 많이 들고 다니던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해라. 식당에서 일하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뭔지 안다. 겸손을 알 수 있다. 친절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캘리 발라드 데니스 CEO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엔비디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 됐고, 데니스로부터 표창장을 받게 됐다. [엔비디아 블로그]
잠재력 보고 ‘베팅’했더니 잭팟…AI 시대 금덩이 만들다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민 2세 황은 913억달러(약 125조원·2024년 5월 포브스 기준) 부자로 성공했다. 그가 만든 회사는 상장 25년 만에 뉴욕증시 시가총액 3조달러를 넘어 1위를 찍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시장의 희비가 갈린다.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부터 테슬라, 오픈AI와 같은 혁신 기업도 그의 회사 제품을 원한다.

황이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서 갑자기 떠오른 스타 CEO 같지만 그의 성공은 사실 예견된 것이었다. 다가올 미래를 향해 30년 동안 움직였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처음부터 잘 나가는 회사는 아니었다. 창업 첫 5년은 3차례나 파산 위기에 놓였다. 엔비디아의 첫 번째 칩인 NV1은 1995년 잘 팔리지 않았다. 다음 상품인 NV2는 개발 도중 좌초됐다. 매년 위기라 올해가 마지막인 것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엔비디아 멤버였던 마크 스티븐스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우리는 거의 3번이나 파산할 뻔했다”며 “젠슨 황이 우리는 폐업까지 30일 남았다고 말했다”면서 당시를 회고했다. “우리 회사는 폐업까지 30일 남았다”는 엔비디아의 비공식적인 좌우명이 됐다고 더 뉴요커는 보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엔비디아가 만든 3D 그래픽 카드는 결정적 하자도 있었었다. 1996년 당시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 제품과 호환되지 않았다. 경쟁 기업이 우후죽순 생기는 상황에서 회사는 위기에 처했다. 황은 “하루아침에 경쟁 기업이 89곳은 생겼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아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황은 딸과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었다. 3D 그래픽에 대한 정의를 다룬 책이었다. 황은 “책을 사서 동료들이랑 봤다”며 “그걸 읽고 우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원리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겠어?(How Hard Can It Be?)”

젠슨 황은 지난해 스탠퍼드 강연에서 이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떤 문제라도 분명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며 어려운 상황에 당면했을 때 이 문장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2년 스탠포드 대학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엔비디아 유튜브]
“내 연봉은 1달러”로 깎고 인재에 베팅…‘0억 달러 시장’ 발굴

회사를 설립한 지 한참이 흐른 뒤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엔비디아 시총은 한 해만 80%가 빠졌다. 2007년 잠시 GPU 기반 병렬 컴퓨팅 플랫폼 ‘쿠다(CUDA)’를 출시해 반짝 관심을 받고 있던 터라 충격은 배가 됐다. 황은 엔비디아 재건을 위해서 사활을 걸어야 했다.

그는 ‘인재’에 베팅했다. 그 해 말 황은 주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할 것이며, 그 비용으로 쿠다 시스템을 구축할 인력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자기희생 리더십은 통했다. 쿠다의 성능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일반 CPU를 사용했을 때보다 쿠다를 사용하면 개발자들은 최대 20배 빠르게 모델을 훈련할 수 있었다. 젠슨 황의 뼈를 깎는 헌신으로 개발자들은 이미지, 음성, 자연어까지 빠르게 훈련할 수 있었고, 엔비디아 제품은 신뢰를 얻게 됐다.

엔비디아의 성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투자의 귀재’ 마크 앤드리슨은 2016년부터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만약 우리가 헤지펀드였다면 우리 돈 100%를 엔비디아에 투자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엔비디아를 주목했던 이유는 AI, 데이터센터 등 아직 오지 않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실제 젠슨 황은 ‘0억 달러 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아직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없는 시장에서 위치를 잡는 걸 선호한다. 우리는 그걸 ‘0억 달러 시장’이라 부른다”며 “아직은 없지만 있을 것이라 믿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황은 2010년에 “AI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뉴럴 네트워크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그 당시 AI는 그야말로 ‘0억 달러 시장’, 미지의 세계에 가까웠다. 지금은 다르다. 유튜브 알고리즘, 테슬라 자동 운전 알고리즘 등 다양한 알고리즘을 구동할 때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하고 있다. 엔비디아 블로그는 “AI 학습을 위한 최상의 GPU는 ‘AI 시대의 황금’”이라고 소개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엔비디아의 GPU는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0억 달러 시장’을 공략한 남다른 경영 철학도 있다. 황은 핵심성과지표(KPI) 대신 ‘미래 성공의 초기 지표(EOIFS)’라는 새로운 평가 개념을 사용한다. 당장의 성과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성공 징조를 보이는 일을 하자는 뜻이다.

황은 “시장은 없었지만 중요한 문제는 있었고, 회사는 그걸 해결하고 있었다”며 “어떤 길로 가고자 한다면, 현재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지표를 가능한 한 빨리 찾아야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엔비디아 창업을 위해 엔지니어로 일하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30세 생일 전에 떠났다. [엔비디아 블로그]
‘이민 2세’ 개척 정신 가진 황…어린시절 괴롭힘도

황의 저돌적인 성격은 이민자 특유의 개척 정신에서 비롯됐다. 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황은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의 학교는 대부분 농부의 자녀들이 다니던 곳으로 이민자가 드물었다. 황은 학교를 가려면 높은 흔들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학생들은 툭하면 다리를 흔들어서 그를 떨어뜨리려 했다.

황은 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그 당시 중국인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중국(china)’에 '징크스(jinx)’를 합친 ‘칭크스’였다”며 “당시에는 괴롭힘에 대해 털어놓을 상담 교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 이곳저곳을 떠돌던 가족이 마침내 오리건 주에 정착하게 되면서 황의 삶도 안정됐다. 그는 오리건주립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스탠퍼드대에서 동일한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진학 전 오리건주립대에서 함께 공부했던 로리 밀스와 결혼했다.

공대형 인재답게 그는 ‘T형(MBTI 사고형 Thinking의 줄임말)’ 인재다. 더 뉴요커는 그의 성격을 “추측을 싫어하는 황은 공상과학(SF) 소설조차 읽지 않는다”며 “오늘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원칙을 기반으로 내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고 도박한다”고 평가했다. 황은 “망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절차도 거부한다. 황은 불필요한 의사소통과정이나 의사결정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기업 문화를 추구한다. 덕분에 엔비디아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게 됐다. 황은 “상사는 없다. 프로젝트가 상사다”고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엔비디아에는 습관처럼 매주 진행하는 회의도 없다.

황은 자신 밑에 있는 직속 부하 직원 50명을 직접 관리한다. 매일 아침 그들의 보고로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회의 때도 문제가 발생하거나 장애물을 발견하면 황은 조직의 책임자든 중간급 엔지니어든 프로젝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 황은 지난해 NYT 행사장에서 “직접 보고가 많을수록 위계질서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4월 포춘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중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젠슨 황의 경영 철학을 어려워하는 직원도 상당하다.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직원이 “(그는) 까다롭고 완벽주의자며, 같이 일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한 것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황은 “맞다”라고 인정했다. 그는 “하지만 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 2의 잡스? 가죽 재킷·문신 등 파격 CEO
2014년 엔비디아 행사장에서 자신의 문신을 공개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엔비디아 블로그]

파격을 추구하는 경영 방식만큼 젠슨 황은 일반적인 CEO와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패션이 대표적 사례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게 터틀넥 스웨터와 리바이스 청바지가 있다면 황에게는 톰 포드 가죽 재킷이 있다. 지난해부터 그해 출시한 새 시즌 재킷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20년 동안 같은 가죽 재킷을 애용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젠슨 황은 2017년 이후 최소 6벌의 가죽 재킷를 입었다.

그가 처음부터 가죽 재킷을 입은 건 아니었다. 2013년 CES에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음해인 2014년부터 황은 공식 석상에 가죽 점퍼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2016년 레빗 AMA 행사에서 황은 자신을 소개하며 “여러분은 저를 ‘가죽 재킷을 입고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는 사람’으로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가죽 재킷은 입게 된 건 가족의 권유 때문이다. 지난해 HP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가죽자켓을 고수하는 배경에 대해 “아내와 딸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스타일리스트 세라 머피는 BBC에 “가죽 재킷은 규칙을 깨고, 다르게 행동하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의상”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로고를 새긴 왼쪽 어깨 문신도 트레이드 마크다. 일반적으로 문신을 한 CEO들은 있으나 자신의 문신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CEO는 황이 처음이다. 2014년 10월 엔비디아 게이밍 페스티벌에서 문신을 공개한 황은 주가 100달러 돌파 기념으로 임원들과 문신을 했다. 당시 임원들 사이에서 주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면 머리를 염색하겠다, 모히칸 머리를 하겠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황은 문신을 택했다고 포춘은 전했다. 하지만 황은 지난해 HP와의 인터뷰에서 “우아하게 늙고 싶다. 더 이상 문신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듯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황은 대만과 중국 관계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지난달 29일 타이베이의 한 야시장을 찾았다가 ‘대만의 중요성’과 관련한 즉석 질문을 받고 “전자산업의 중심에 있는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라고 답했다.

지난 2일에는 타이베이 국립대만대 체육관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그는 세계 지도에서 대만과 중국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화면을 띄우기도 했다.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하나의 중국’에 전면 대립하는 행보임에도 황은 별다른 변명 없이 자신의 입장을 보였다.

IT 업계의 테일러 스위프트…젠세너티(Jensanity) 언제까지?
지난 3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옷을 바꿔입고 사진을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마크 저커버그 인스타그램]

“IT쪽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인물이야.”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지난 3월 황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한 말이다. 저커버그의 말처럼 AI 열풍 속에 젠슨 황의 돌풍도 거세다. BBC는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며 그의 이름을 딴 ‘젠세너티(Jensanity·젠슨 열풍)’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수요가 폭증하면서 AI 제조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는 ‘황금’이 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엔비디아의 GPU는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젠슨 황과 엔비디아 열풍이 거품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18일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가 MS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가 이틀 후 다시 자리를 뺏기자 AP통신은 “AI가 너무 과열돼 주식시장의 거품과 투자자들의 지나친 기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젠슨 황의 AI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그가 제시한 다음 미래는 ‘AI 공장’ 시대다. 그는 대만 컴퓨텐스 기조연설에서 “컴퓨터는 더 이상 정보 저장이나 데이터 처리 도구가 아닌, 모든 산업을 위한 지능을 생성하는 공장”이라며 컴퓨터가 인간의 기술을 생성하는 존재로 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를 위해 존재하는 데이터센터가 ‘AI 공장’이 될 것이라도 전망했다. 더 먼 미래를 제시하기도 했다.

황은 AI 다음 시대는 ‘물리적 AI’인 로봇공학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대만 국립대만대 졸업식에서 그는 AI 시대에 빨리 적응할 것을 주문하며 “AI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과 기업은 도태된다”며 “AI 시대에는 걷지 말고 뛰어야 한다”며 “먹잇감을 찾아 뛰는 동시에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에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꾸는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젠슨 황

지난달 대만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대만 시민들이 반기고 있다. [대만 타이완뉴스 유튜브 갈무리]
binna@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