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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랄게 없다”…장마철 앞두고 막막한 수해 사각지대
뉴스종합| 2024-07-01 09:00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모습 [사진=김도윤 수습기자]

[헤럴드경제=김우영·김용재 기자] 올여름 평년보다 많은 강수량이 예상되는 가운데 판자촌 등 수해 사각지대 주민들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매년 수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여러 이유로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랫성뒤마을에서 만난 60대 김모씨는 “장맛비만 온다고 하면 주민 모두 잠을 못자고 걱정한다”라며 “당장 이번주부터 폭우가 온다는데 어떡하냐”라고 말했다.

방배동 아랫성뒤마을은 1960~70년대 강남개발로 생긴 이주민들이 정착해 생긴 대표적인 판자촌이다. 아랫성뒤마을은 도로 등 마을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며 살아와 배수 시설이 없다. 이로 인해 매년 수해를 겪고 있다. 주민들이 수해시 대피한다는 ‘마을회관’은 산사태 방지 시설이 없는 상황이었고, 모래주머니도 언제든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김씨는 “지난해에는 구청 도움 없이 산사태를 막으려고 실리콘으로 바르고, 하수구 막고 도랑공사 같은 것도 직접하고 그랬다”며 “재난선포가 되지 않으면 지원을 해주질 않는다. 비가 오면 피하라고만 하지 장소도 안알려 주면 우린 어떻게 살아남느냐”라고 토로했다.

다른 주민 50대 이모씨는 “산에서 물이 흘러 내려오면서 흙에 물받이가 막히고, 도로 쪽으로 내려와 골을 파버린 상황”이라며 “이렇게 옹벽이 무너질 위험이 커서 비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비가 오면 일단 놀라서 밖에 나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리비만 몇천만원씩 드는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일단 자꾸 나가라고만 한다”라며 “집에 물이 들어와서 거실이고 안방이고 다 난리 났는데 해결은 모두 사비로 해야 한다”라고 한숨 쉬었다.

강남에 있는 다른 판자촌인 구룡마을 주민들 역시 장마철을 앞두고 우려가 컸다. 구룡마을서 만난 70대 주민 김모씨는 “폭우 대비를 해도 크게 할 수가 없고, 그냥 수해 피해가 당연한 곳”이라며 “수해 피해 있을 때마다 뒷북으로 사진만 찍고 가고 바뀌는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모습 [사진=김도윤 수습기자]

수해 피해를 입었던 최모씨는 “장마철마다 수해 피해가 생기는데, 산사태 때문에 걱정”이라며 “미리 수해 예방 좀 제대로 해주면 좋겠다. 2년 전에 집이 다 무너져서 텐트에서 지낸다”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다만 각 구청에서는 수해 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수해 대비를 위해 모래주머니 배치, 수로 작업 등 미리 대처하고 있다”라며 “재난 선포 시에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송파구 풍납동 일대 역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곳곳이 낡고 허물어진 채 방치돼 있어 장마가 두려온 곳이다.

이 지역은 지난 1997년 백제 초기 왕성으로 추정되는 유물·유적이 발굴된 뒤 발굴과 개발, 그 어느 쪽으로도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다.

송파구에 따르면 풍납동 내 건축물 2000여개 가운데 90%가 2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의 ‘풍납토성 보존·관리 종합계획’으로 인해 개발은 커녕 피해 주민과 구청의 보수도 최소한만 이뤄지고 있다.

실제 2020년 집중호우 당시 지붕이 내려앉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주택 둘레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임시 조치만 취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송파구청 관계자는 지적했다.

송파구는 풍수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24시간 가동하며 비상근무 체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문화재 규제 탓에 근본적인 비피해 예방 공사를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풍납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70대 주민은 “재작년 큰 비가 왔을 때 기울어진 담장이 올해 장마나 태풍 때 쓰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주민은 “차라리 큰 물난리가 와서 싹 다 갈아엎어버렸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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