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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종 국회, 출발조차 못했다…협치는 없고 고발장만 [국회 개원식 연기]
뉴스종합| 2024-07-05 09:46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의 건이 상정되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이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승환·박상현 기자] “이러시면 안 되죠”(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표결을 진행하겠습니다.”(우원식 국회의장)

지난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채상병 특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종결하기 위해 표결을 진행하려는 우원식 국회의장 옆에서 추 원내대표는 무기력했다. 추 원내대표는 무제한 토론의 발언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연신 항의했지만, 우 의장은 반응하지 않은 채 의장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의장석 주변은 “우원식 물러나라”를 외치는 국민의힘 의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대한민국 ‘정치 실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22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입성한 한 초선 의원은 헤럴드경제에 “기형적인 정치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며 “정상적인 정치 활동이 불가능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의 22대 국회다. 5일로 예정된 국회 개원식은 무기한 연기됐다. 전날 우 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직권 중단시킨 것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항의 표시로 국회 개원식 보이콧을 선언하자 의장실이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22대 국회 개원식은 1987년 이후 가장 늦었던 21대 국회 개원식(7월16일)보다 늦어질 수 있다.

22대 국회의 ‘정치 실종’은 예고된 파국이다. 첫 원구성 협상부터 ‘협치’는 없고 ‘대립’만 반복됐다. 지난달 10일 민주당은 여당 몫 상임위원장을 제외하고 11개 상임위원장 선임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다음날부터 11개 상임위를 가동했다.

지난달 27일 국민의힘이 나머지 7개 상임위원장을 수용하면서 원구성이 완료되기 전까지 야당은 단독으로 상임위별 입법청문회, 부처벌 업무보고, 현안질의 등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추 원내대표는 원구성 협상의 책임을 지겠다며 원내대표직 사의 표명하기도 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사라진 국회에는 고소·고발, 윤리위 제소 등의 법적 조치가 난무하고 있다.

국회의원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국회는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거부를 뜻하는 비토크라시 상태”라며 “특검 정국에 거부권 정국 그리고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면서 극한의 대결과 거부만 남고 있다”고 말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오른쪽)과 정청래 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방송3법)을 상정해 심의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정변경 등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이상섭 기자

국회 상임위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현재 상임위 차원에서 고발을 의결한 곳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1곳이다. 과방위는 지난달 25일 과방위 현안질의 증인으로 불참한 박민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에 대한 고발의 건을 상정 후 의결했다.

당시 과방위 회의에 참석했던 국민의힘 소속 최형두 과방위 여당 간사는 “최민희 위원장께서 매우 편파적인 의사진행을 하고 있다”고 반발했고,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우리 위원회의 현안 질의에 불출석한 증인 박민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 및 제15조에 따라 불출석 등의 죄로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의결했다.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들에 대한 고발을 검토 중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위원장의 의사진행을 방해해 국회선진화법상 퇴거불응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현 민주당 의원은 ‘갑질 의혹’을 언급한 최수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과 박준태 원내대변인을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 조국혁신당 이해민, 진보당 윤종오 의원 등이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안 야5당 공동발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상대당 의원을 대상으로 한 징계안도 쌓이는 중이다. 이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제출된 의원 징계안은 3건이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국회법 제146조를 위반,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는 물론 국회의 명예와 권위까지 심각하게 실추시켰다”며 징계를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법사위원장에 대한 인신 모욕성 발언’을 이유로 한기호·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2명을 윤리위에 맞제소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현실화로 정국이 짜여져서 양측이 치킨 게임을 하는 것이 (정치 실종의)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거대 양당의 대통령 진영과 대통령 반대 진영으로 나눠져서 대결하는 정치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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