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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꿀 바르던 조선미녀 피부관리법,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넥스트 K-뷰티]
뉴스종합| 2024-07-07 09:16
MBC 스폐셜 '코리안 뷰티, 세계를 유혹하다(2012)'에서 이지은 자연의미용법연구회 대표가 ‘규합총서’에 나온 방법대로 달걀을 술에 재운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 [해당 방송 캡처]

[헤럴드경제=김희량·전새날 기자] “겨울에는 달걀을 네 이레(28일) 동안 술에 밀봉해 담근 뒤에 얼굴에 발라라. 그러면 윤지고 옥 같아진다. 손과 얼굴이 터 피가 나면 돼지기름과 회화나무 꽃(槐花)을 붙이면 낫는다.”

조선시대 화장품 기술서로 알려진 ‘규합총서(1809)’의 일부다. 이 책은 여성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쓴 5권의 시리즈였는데 이 중 2권에는 몸단장과 화장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미녀’들도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달걀로 보습을 챙기고 마늘에 꿀을 섞어 하룻밤 재운 뒤 천연 팩을 직접 만들었다. 꿀 찌꺼기에 향을 더한 오늘날 영양크림 격인 윤안향밀(潤顔香蜜)도 직접 제조해 발랐다.

아름다움을 향한 노력은 수백 년이 지나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쿠션과 B.B 크림 개발’로 세계 화장품 역사를 새로 쓰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는 K-뷰티에 열광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국산 화장품의 역사를 통해 K-뷰티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한국의 첫 현대식 브랜드 화장품 '박가분'. [부산 근현대역사관 제공]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화장품은 존재했다. 피부의 때를 씻는 조두(澡豆, 세정제), 미안수(화장수), 면약(크림에 해당), 분백분처럼 말이다. 어른들이 쓰는 “분(粉)을 바른다”는 표현도 여기서 유래했다. 색조화장에 해당하는 색분은 백합의 붉은 꽃수술의 분말을 채취해 만들어졌다. ‘핑크 메이크업’의 원조인 셈이다.

한국의 화장품은 과거 막걸리, 소주처럼 자가 제조하거나 문중(門中)에서 만들었다. 그러다 1900년대 개항과 함께 조선에는 서양의 화장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큰 변화는 색조화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화려한 색조화장은 기생들의 화장법으로 천시받았다. 대신 일반 조선 미녀들의 화장은 수수하고 엷은 담장(淡粧)이 기본이었다. ‘백옥 같은 피부 미인’이 당시 한국 미녀의 기준이었다. 기미, 주근깨 등이 없는 투명한 피부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량생산해 보급하는 공산품 화장품의 시대는 개화기를 만나 본격적으로 열린다. 이때 등장한 한국의 첫 현대식 브랜드 화장품이 박승직 상점(두산그룹 전신)의 ‘박가분(朴家粉,1916)’이다. 지금의 파우더 격인 당시 박가분은 기미와 잡티를 감춰준다고 입소문을 탔다. 잘 나갈 때는 하루 1만 갑까지 팔렸다고 한다.

박가분의 성공에 힘입어 1930년대에는 장가분, 서가분 등 유사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화장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퍼져자 삼호화장품, 에레나화장품 같은 화장품 회사들도 생겨났다.

1947년 탄생한 럭키화학공업사의 '럭키크림' [LG생활건강]

당시 한국에는 제대로 된 크림 화장품은 없었다고 한다. 일본 브랜드인 ‘구라부’와 ‘레도’의 크림을 쓰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생활건강)이 첫 국산 보습 영양크림인 ‘럭키크림’을 내놓는다. 럭키크림은 당시 이례적으로 미국 영화배우 디아나 더빈의 얼굴이 제품 패키지에 들어간 탓에 ‘외제’란 소문까지 퍼질 정도였다.

화장품의 발달만큼이나 화장 스타일도 진화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며 따라 온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1947년 한국에서 남녀공학제가 최초로 실시되며 이후 여성의 교육 및 경제활동 참여가 크게 늘었다. 동시에 1950년대 들어 해외 영화, 문물이 들어오며 서구 문화가 퍼졌다. 여성들의 화장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는 서양에 대한 동경으로 서구 미인형 화장이 유행했다.

당시 ‘뷰티 교과서’ 역할을 한 건 영화였다. 한국 여성들은 매릴린 먼로나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를 통해 빨간 입술과 짙은 눈썹 등 서구적인 화장을 알게 되고, 모방하기 시작했다. 평면적이고 하얀 피부 중심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던 과거 현모양처형 화장 스타일은 입체감 있고 맑은 눈매를 강조한, 서구 미인형 스타일로 바뀌게 된다.

1970년대 당시 태평양화학의 색조 색상들. [아모레퍼시픽 제공]
1958년 창간된 여성 뷰티 전문지 '여성계'. [아모레퍼시픽 제공]

동시에 1958년 지금의 뷰티 지침서 역할을 하는 ‘화장계’가 여성들의 미용 학습에 큰 역할을 한다. 화장계는 그 당시의 인스타그램이자 보그 같은 뷰티 잡지였다. 피부 상태나 얼굴형에 맞는 알맞은 화장품이나, 계절에 어울리는 화장법, 신제품 활용법은 물론 해외 유행 패션과 스타일링을 소개하는 교양 잡지이기도 했다. 뷰티 매체들을 통해 한국인들의 화장품에 대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소비자는 효능과 활용법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됐다.

1971년 한국 최초의 메이크업 캠페인 '오 마이 러브'가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모습. [아모레퍼시픽 제공]

색조화장의 힘이 본격적으로 여성들에게 전파된 건 1970년대부터다.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 한국 최초로 1971년 메이크업쇼 ‘오 마이 러브’를 진행하면서 색조화장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색조 메이크업 화장품이 늘어나던 1980년대. [아모레퍼시픽 제공]

1980년대는 ‘컬러의 향연’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화려한 메이크업이 절정에 달했다. 컬러 TV의 등장이 큰 영향을 줬다. 개성과 색감을 드러내는 파랑, 초록 색상이 들어간 과감한 눈두덩이 화장이 나타난 것이다. 각양각색의 색상 및 컬러 팔레트들과 함께 색조 화장품들이 발달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펄이 들어간 볼 터치, 갈색 섀도우 등과 함께 나그랑 같은 색체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가 등장했다. 여기에 파운데이션과 파우더를 합친 ‘트윈케이크’가 유행했다.

색조화장이 어느 정도 대중화되자 1990년대부터 화장품에 대한 기대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메이크업과 미용을 넘어, 피부 보호와 노화 방지 등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이다. 1997년 3월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레티놀 수용성 안정화에 성공한 제품이 등장하면서 기능성 화장품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세계 최초 레티놀 화장품 '아이오페 레티놀 2500' [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은 처음으로 주름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은 ‘아이오페 레티놀 2500’을 내놓았다. 당시 레티놀은 의약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제품은 출시 10년 만에 2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정도로 당시 여심을 저격했다. 이후 안티에이징에 집중한 수많은 주름 개선 화장품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2000년대에는 에뛰드, 미샤, 토니모리, 스킨푸드 등 로드숍 브랜드들이 생겼다. 수많은 10대 학생들을 매장으로 향했다. 이들 로드숍의 인기는 최근 10대들의 놀이터로 자리매김한 다이소 인기 못지않았다. 에뛰드의 송혜교, 더페이스샵의 권상우, 미샤의 보아 등 유명 연예인들은 로드숍 브랜드의 광고에 등장하며 많은 ‘뷰티 꿈나무’들을 키웠다.

세계 최초의 쿠션 화장품, '아이오페 에어쿠션' [아모레퍼시픽 제공]

이 시기에는 기존에 없던 획기적인 제품이 나왔다. 2006년 출시된 B.B 크림이 대표적이다. 한스킨라는 업체가 그해 유행한 ‘생얼 메이크업’ 트렌드에 맞춰 내놓은 제품이었다. B.B 크림은 붉은 피부를 커버하는 데 효과가 있었던 독일의 연고 블레미쉬 밤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이 제품은 피부 톤을 잡는 파운데이션 위주였던 화장품 시장에 영양 등 스킨케어적 요소를 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여기에 2008년 3월 아모레퍼시픽이 세계 화장 문화를 바꾼 제품을 내놓는다. 바로 주차 확인 스탬프에서 착안한 쿠션이다. 스펀지 재질에 메이크업 제품을 흡수시켜 팩트형 용기에 담은 이 제품은 여성들의 화장 습관과 시간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오페의 에어쿠션이 나온 후 한국인의 평균 메이크업 소요 시간을 13분에서 7분으로 줄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단일 품목으로는 2013년 9월 누적 판매량이 1000만개를 찍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이후 글로벌 뷰티 기업들도 유사 상품을 잇달아 내놨다. 2015년에는 쿠션을 개발한 아모레퍼시픽이 세계적인 명품사인 크리스찬디올과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이제는 쿠션 없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를 찾기 힘들 정도다.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에서 진행된 2024 코리아뷰티페스티벌 스킨케어 클래스 행사에 참여한 외국인들이 국내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김희량 기자
27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아마존 K-뷰티 콘퍼런스 셀러데이'에서 참관객이 관련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아마존은 한국 K-뷰티 업체들의 입점 확대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화장품 분야에 집중한 컨퍼런스를 열었다. [연합]

한국 화장품은 2010년대 중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중심으로 중국에서 급성장, 전성기를 맞이한다. 보따리상들은 한국 화장품을 쓸어 담아 갔다. 셀 수 없이 많은 화장품 업체들이 중화권에 진출했다.

그러나 중국에 집중했던 한국 뷰티업계는 사드 사태와 코로나19를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이제는 그 무게중심이 미국, 유럽 등 서구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K-팝, K-문화의 확산과 더해져 북미, 남미, 아프리카에서도 ‘글라스 스킨(glass skin, 유리 피부)’, ‘코리안 스킨케어’를 외치며 한국 화장품을 찾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의 유명 제품이 해외에 알려졌다면, 이제는 아마존에서 인기 있는 한국 제품이 역으로 국내에 소개가 된다.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는 이제 1만개가 넘고, 수출에 나선 업체는 8000개를 넘는다.

올해 1월 기준 화장품 수출액은 23억 달러로 동기간 역대 최대실적을 기록할 정도로, K-뷰티는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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