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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커플도 이성부부처럼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대법원 “인정않는건 차별”
뉴스종합| 2024-07-18 16:30
동성 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오른쪽)가 재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대법원이 동성커플의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피부양자 자격에서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을 다르게 보는 것은 헌법의 평등 원칙을 위반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존하고 소득 및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은 피부양자로 등재될 수 있다. 피부양자가 되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고도 의료비 등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성 커플의 경우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어도 사실혼이 인정되면 피부양자 자격을 받았다. 반면 동성 커플은 사실혼이 인정될 수 없어 이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18일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원고 소성욱씨와 김용민씨는 2017년께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2019년 5월에는 양가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결혼식을 올렸다. 김 씨는 2016년부터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됐고, 원고 소 씨는 이후 퇴사해 2018년 12월자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됐다. 소 씨는 김 씨의 사실혼 배우자 자격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피부양자 등재 신청을 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소 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한 것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시켰다. 또 소 씨를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로 판단해 이를 소급적용했다. 피부양자로 인정된 후 2020년 3월부터 같은해 11월까지 내지 않은 건강보험료 및 장기요양보험료 11만원 상당을 납부하라고 고지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소 씨는 건보공단의 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자격 변경에 대한 의견 청취 절차가 없었고, 소 씨와 김 씨는 피부양자 제도가 그동안 인정해온 사실혼 관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동성 커플의 사실혼이 성립하지 않는다 해도 사실혼 관계로 인정되는 이성 커플과 차이가 없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반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절차적으로도, 실체적으로도 소 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한 것이 정당하다고 봤다. 동성 커플의 사실혼 관계가 성립할 수 없고, 건보공단의 처분이 부당한 차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헌법과 대법원 판례 등을 들어 “현행 법 체계 상 혼인 의사와 혼인 생활의 ‘혼인’은 ‘남녀 애정이 바탕이 된 결합’으로 해석될 뿐이다. 동성 간의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이어 “헌법상 평등원칙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동성 간 결합과 남녀간 결합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했다. 절차적으로 건보공단의 처분은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한 것으로 의견 청취 절차가 필요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이성)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며 “건보공단은 차별대우를 정당화할 합리적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씨와 김용민씨(오른쪽)가 손을 잡고 밝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였다. 건보공단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 관계가 건보공단이 피부양자로 인정해온 이성 커플의 사실혼 관계와 사실상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는 부부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으로 건보공단이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사실혼)’과 차이가 없다”며 “동성 동반자 집단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했다.

건강보험이 사회보장제도라는 점도 강조했다. 대법원은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차별행위이며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성 동반자를 사실혼에 준하여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가족법·민법에 따른 사실혼으로 인정하는 것과, 동성 커플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문제는 별개라는 취지다.

반면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은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본 부분은 동의하나 실체적 하자는 동의할 수 없다.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해 동성 간 결합에 혼인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대의견을 남겼다. 이어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않는 법률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해도 입법이나 위헌법률심판제도로 교정해야 할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지난 40여년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시행되어 온 점 등에 비추어 부부공동생활에 준하는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며 “동성 간 결합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됐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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