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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횡령, AI로 막을 수 있다면?” 골머리 앓는 회장님들…떠오르는 ‘레그테크’[은행에 숨은 도둑들]
뉴스종합| 2024-07-19 07:01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홍승희·강승연·김광우 기자] “지주 회장님께서 인공지능(AI)으로 횡령을 막을 법이 없겠냐고 하시더라. 지점에서 터지는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기술로 막을 수만 있다면,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다”(A은행 임원)

최근 은행권의 횡령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각 금융사 대표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무리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한다고 해도 지점에서 벌어지는 은행원의 불법행위까지 전부 걸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술을 통해 금융 규제 준수 업무를 지원하는 ‘레그테크(규제와 기술의 합성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기술 힘 빌려 규제…‘레그테크’가 다시 떠오른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은행은 주로 자금세탁방지, 이상거래 탐지, 금융사기 예방, 소비자 보호 업무를 위해 AI·빅데이터 통합분석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하면 실시간 대응이 중요하거나, 휴먼에러가 발생하기 쉬운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어서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영업점의 내부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시재관리기’다. 시재관리기는 은행 직원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ATM기다. 시재(현금) 관리에 특화한 기기를 도입해 관련 업무에 직원 개입 요소를 최소화하는가 하면 이를 통한 업무 효율성도 제고한다는 구상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21년 80대를 시작으로 스마트 시재관리기를 설치해 운용하기 시작했다. 내부 직원 간 시재 관리를 위한 인수도 거래가 많은 영업점을 중심으로 설치됐다는 설명이다. 신한은행도 은행권 처음으로 지난 2022년 실시간 정산기능을 탑재한 모출납 시재관리기를 전국 600곳 지점에 설치한 바 있다.

스마트시재관리기의 모습. [에이텍에이피 홈페이지 갈무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경우 AI 기반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을 지난 2019년부터 운영 중이다.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과 글로벌통합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도 2020년부터 도입됐다. 아울러 불완전판매 적발 시스템을 개발하고 수출입 선적서류 심사 검토업무에도 AI 기술을 적용한다. 하나은행은 최근 AML 업무에 집중해 의심거래보고를 고도화하고, 또 국외 AML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했다.

해외는 일찍이 영업장에서 더 정교하게 도입이 가능한 레그테크를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JP모건의 경우 지난 2016년부터 대출 계약서 등의 검토작업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AI가 적용된 계약서 검토 소프트웨어 ‘COiN’을 도입했다. 계약서 검토와 같이 정밀한 작업이 반복되는 업무는 그 특성상 인적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는 데에서 착안된 솔루션이다. 이에 COiN은 기계학습으로 제작된 자연어 처리와 이미지 인식 기술을 활용해 법률 문서를 해석하고 주요 내용을 추출하는 작업을 자동화 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도 방대한 AML 업무를 빠르게 수행하기 위해 머신러닝과 빅데이터 기술이 탑재된 AML 플랫폼 ‘CRUISE’를 구축했다. 거래량이 늘고 범죄 수법이 교모해짐에 따라 잦은 오류, 데이터 분산 등 기존 시스템의 한계로 AML 시스템 개선 수요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DBS는 CRUISE를 통해 우선순위 모델을 적용하고, 분석결과를 시각화 및 통합DB를 구축함으로써 AML 성능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문서 위·변조 막을 길 없어”…AI가 해결책 될 수 있을까

JP모건이 개발한 COiN 작동 모습. 대출 계약서 등을 검토하고 오류를 잡아낸다. [출처 우리금융경영연구소]

하지만 이같은 은행권의 노력에도 일각에서의 횡령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원이 평소의 업무를 가장해 지점장도 모르게 돈을 인출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수법이 바로 ‘문서 위·변조’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6년간 나온 은행원 횡령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전체 3분의 1에 해당하는 4건은 모두 사문서를 위조하고, 행사한 혐의에 해당했다. 은행에서 예금 입출금 및 여신 업무를 담당하던 피고인 B씨는 지점장에게 위조한 전표를 제출에 한 번에 1억1000만원이 넘는 돈을 인출했으며, 한 상호금융 조합에서 같은 일을 하던 피고인 C씨도 평소 가지고 있던 고객의 도장을 통해 문서를 위조한 뒤 고객 계좌의 돈을 인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사문서 위·변조를 방지할 수 있는 AI에 대한 해외사례를 모색 중이다. 특히 KB국민은행은 ‘탐지(Detective) AI’ 도입을 위한 검토를 실무진 차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정교한 위조를 포착하고 고발하는 게 핵심이다.

문서 위조 여부를 검사하는 자동화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술이기도 하다. 실제 구글 클라우드는 지난해 자사의 AI가 문서 위조 검사를 자동화해주는 ‘문서 포렌식’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문서 포렌식은 디지털 문서에 대한 추가 검토의 수락, 거부 여부를 빠르게 결정해주는 장치다. PDF이든 이미지 형식이든 관계 없이 몇 초 안에 검증, 분류, 인증되므로 원활하고 손쉬운 자료 검토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효과도 검증되고 있다. 영국의 선도적인 디지털 주택담보대출 중개업체인 ‘하비토’는 구글의 문서 포렌식 서비스를 통해 기존에 갖고 있던 위조 및 사기 솔루션에 비해 32% 더 많은 위조와 사기 시도를 감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문서 위조 조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케이스당 52분이나 단축했다고 한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금융혁신연구실장은 최근 미래금융 세미나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서 G(지배구조)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레그테크에 대한 투자가 더욱 많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내에서는 자금세탁이나 보험사기 관련해서 적발 후 벌금을 징수하는 쪽이 큰데, 전반적으로 규정준수(컴플라이언스)나 법률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더 필요할 거 같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기술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도 의심거래 등을 늘 감시하고 있지만 결국 문제는 AI 시스템이 탐지를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대한 문제”라며 “멀티모델 기술을 통해 문서 위변조를 걸러낼 수만 있다면 금융권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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