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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속이고 보험 가입한 건설현장 근로자…대법원 “계약대로 보험금 지급”
뉴스종합| 2024-07-29 06:17
대법원 전경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실제 직업을 속이고 보험계약을 체결해도 계약 후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직업이 바뀐 경우가 아니라면 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을 해지할 수 없고, 계약 당시 맺은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망인 A씨의 유가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와 배우자는 2009년, 2011년, 2016년 3차례에 걸쳐 A씨를 사망자로 한 보험 계약을 맺었다. 상해 사망 및 후유장애, 일반 상해사망 등 관련한 보험이었다. A씨의 실제 직업은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였지만 보험 계약 체결 당시 직업란에 사무원, 건설업종 대표, 사무직 관리자 등으로 적었다.

A씨는 2021년 공사현장에서 작업 도중 사망했다. 유가족이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사는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며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유가족은 보험 계약에 따라 2억 2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계약 후 알려야 했다”며 지급 가능한 보험금은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의 보험료율을 적용한 9300여만원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사는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고지의무)이 아닌 계약 후 알릴 의무(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들었다. 계약 전 의무 위반은 상법 제651조 고지의무를 근거로 하는데, 이 경우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이 있어서다.

1심 재판부는 A씨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보험 계약 체결 전 직업을 속였다 해도, 보험 계약 후에 이를 알릴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보험계약 중 실제 직업이 변경되지 않았다면 보험사에게 고지된 직업과 다르더라도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위반할 수 없다”며 “망인과 원고가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을 전제로 한 보험사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계약 전 알릴 의무와 계약 후 알릴 의무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전자와 후자가 동시에 적용될 경우 피보험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는 취지다. 1심 재판부는 “계약 전 알릴 의무와 계약 후 알릴 의무를 경합적으로 위반한 것으로 본다면 보험 계약자는 제재도 중복으로 받게 돼 부당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했다.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만 적용될 경우 보험사의 해지권은 2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면 사라진다. ▷보장개시일 또는 1회 보험료를 받은 뒤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하지 않고 2년이 지난 경우 ▷계약체결일로부터 3년이 지난 경우 등이다. 반면 계약 후 의무도 적용되면 보험사는 기간 제한 없이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1심 재판부는 “보험계약자로서는 언제든지 보험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는 불안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중복 적용은)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에 대한 해지권을 제한하고 있는 보험약관 및 상법 651조의 입법 취지에 반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2심 재판부 또한 1심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있어도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해지할 수는 없다.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해지권 행사의 제척기관이 경과해 보험자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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