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고구려와 재회하고 백두산에 오르다
라이프| 2024-08-20 11:13
올 여름 서파 코스로 올라간 백두산 천지 풍경

“아, 고구려 1만2000기 ‘피라미드’, 이제야 찾아보니 미안하구나.”

신의주 건너편 단둥과 백두산 북서쪽 퉁화 사이에 있는 지안의 매우 놀라운 유적들이 한국 일반 여행객을 맞기 시작했다.

‘국내성 찾아가자, 일만이천릉 피라미드’

바로 옛 국내성에 속한 환도산성 주변의 1만2000여 기의 ‘고구려 피라미드’다. 이들 장소를 최근 들어 여행사들의 백두산 탐방 패키지로도 갈 수 있게 됐다.

이곳의 장수왕릉은 이미 우리 국민에게 사진으로 많이 공개됐다. 장수왕릉은 이들 1만2000여 기 피라미드 중 하나일 뿐이다.

불과 50여 년 전 만 해도 1만2000기의 모습이 그럭저럭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이 중 절반이 겨우 흔적만 보이고, 6000여 기는 완연한 피라미드 모습이거나 4각 밑변이라도 남아있다.

고의로 훼손하기도 했고, 중국 당국의 방치 속에 건설사들이 마구잡이로 채석해갔기 때문이다. 북중 접경지와 만주·요하 일대 고구려의 족적은 이처럼 훼손되면서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최근 오랜만에 대통령이 ‘8·15 통일 독트린’을 내놓았다. 헤럴드경제는 이번 독트린이 나오기 얼마 전, 북중접경지를 탐방하면서 고구려 유적을 살피고, 남북 정상이 함께 백두산 물을 뜨던 현장도 둘러봤다. 북한 주민의 실상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 석실엔 수많은 ‘부의금’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주몽은 BC(기원전) 37년 비류수가 흐르는 졸본에 터잡았고, 2대 임금 유리왕은 부왕의 집권으로부터 35년 뒤인 AD 2년 지금의 지안인 국내성 도성(황성이라 부름)과 환도산성을 조성했다. 그 후 이곳은 425년 동간 고구려의 수도가 된다.

국내성이 있는 지안 고구려 유적지 주차장부터 ‘조선여행’이라는 초대형 광고판이 손님 모객을 위해 서있다. 북중접경지 관광객의 80~90%는 남한 사람이다. 여행자 민박집, 중국에서 보기 힘든 커피도 파는 마트, 호태왕(광개토대왕) 기념품 가게, 남한 식의 세련된 의상실도 보인다.

유네스크 세계유산이라는 뜻의 AAAAA 표시를 지나면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 환도산성 순으로 역사산책을 하게 된다.

지안시 중심부의 도성, 국내성에는 일제강점기까지만해도 10m에 육박하던 성벽이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아파트용 석재로 빼가고, 현재 2m정도만 남아있다. 중국이 자기 유물이라 여겼으면 훼손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황색 지붕의 전각 안에 보관된 높이 6.39m, 너비 1.34~3m의 광개토대왕릉비는 414년 아들 장수왕이 부친을 기리기 위해 1775자를 새긴 뒤 세운 것이다. 비문에는 고구려 건국 신화, 초기 왕계, 호태왕의 영토개척 공적, 능묘의 관리제도 등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에는 ‘광개토대왕릉비의 발굴은 중세기 이래 세인에게 잊혀졌던 고구려 문명·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확인하였고, 동북아 지역 고고학 유적지 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인증했다’고 적어놓았다. 광개토대왕릉 꼭대기 석실에는 수많은 한국인이 1600년 만에 들러 부의금을 잔뜩 놓아뒀다.

국내성(지안) 환도산성의 1만2000기 고조 선~고구려 피라미드 고분군. 능 옆에 작업 중인 트럭을 보면 능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장수왕릉은 이집트 카이로 사카라의 계단형 피라미드와 흡사하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피라미드와도 닮았다. 장수왕릉 주변엔 1만2000여 기의 피라미드가 고조선때부터 조성돼 있다. 여행자 방문이 허용되는 환도산성 초입 성벽 위에서 우산하고분군 수백기를 한 눈에 내려다 볼수 있다.

이들 1만2000기 피라미드는 통구고분군이라 통칭된다. 통구는 동이족(퉁구스)의 줄임말이다. 통구고분군은 우산하고분군·산성하고분군·만보정고분군·마선고분군·칠성산고분군으로 나눠진다. 우산하고분군에는 왕릉으로 확인된 우산 2110호와 992호, 임강총이 포함돼 있다.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는 사신무덤, 무용총, 각저총, 오회분, 사회분 등도 이 일대에 있다.

백두산 정상부 흰 부분은 화산 재가 굳어진 것이다.

백두산 서파 코스, 힘들지만 경치 ‘일품’

백두산 여행은 어쩔 수 없이 해외여행으로 분류된다. 지난해에 비해 한국인 여행객 수 증가율이 가장 높은 여행지가 ‘백두산-고구려 패키지’였다. 천지를 관측하기 가장 좋은 때는 6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다. 지금도 여행하기 좋은 시기다.

북파는 옌볜(연변), 룽징(용정), 윤동주 생가 등을 거쳐 북쪽으로 가는 코스다. 차가 산꼭대기까지 가니 걸어서 전망지점까지 가는데 수월하지만, 시야가 좁다.

서파는 국내성 1만2000개 피라미드, 졸본성, 비사성, 비류수·비류호, 압록강철교 등을 거쳐 서쪽으로 진입하는데 코스다. 계단 400여 개를 걸어오르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시야가 넓어 제대로 된 천지를 볼 수 있다.

백두산에 오르기 전 추모 황제(동명왕)가 고구려를 세우고 최초로 쌓은 성인 졸본 지역의 졸본성(중국명 오녀산성)을 들른다. 우리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는 환인현(중국면 환런현)에서 동북으로 8.5㎞ 거리에 있는 성이다. 해발 800m 정도이며, 정상부의 지세는 평탄하지만 주변은 100~200m 높이의 절벽을 이루는 요새다.

비류강 비류호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오르면, 부러울 것이 없다. 몇몇 여행자는 “경치로는 여기가 천지보다 낫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어 고구려가 세운 천리장성의 박작성(중국명 호장산성)으로 향한다. 오녀산성·호장산성 모두 중국측이 임의로 갖다붙인 이름이다. 박작성은 단동 시내에서 압록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30㎞ 정도에 있으며 1990년대 중국 측이 중국성 형태의 전각을 지은뒤 만리장성의 동단이라 거짓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만리장성 동단은 베이징 주변에 엄연히 있다.

압록강철교

압록강철교에서 통일 염원을 다시 가슴에 새긴 뒤, 위화도와 박작성을 지나 여러 차례 차량을 갈아탄 끝에, 서파 코스 걷기의 시작인 백두산(중국명 장백산) 주차장에 이른다. 여기서 400여 개 계단을 걸어서 오른다. 노약자를 위한 유료 가마꾼도 있다.

오르막 오른쪽 산이 하얗다. 화산재가 쌓인 지역이다. 백두산의 뜻은 머리가 희다는 뜻인데, 화산재가 쌓여 응고된 부분의 여전히 옅은 회색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에 오르자, 저마다 ‘인생샷’찍기에 여념이 없다. 가장 뷰가 좋은 곳은 네모난 방처럼 테두리가 그어져 있어 한 명씩 찍느라 긴 줄이 서있지만, 그 바로 옆 지점도 뷰가 좋다.

반대편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사진을 찍던 동파 지점이 보인다. 북한 쪽에서는 동파와 남파 코스가 있는데, 남파는 너무 험준해 전문가만 이용한다고 한다.

하산길에 들르는 금강대협곡의 수려함도 19세기 말까지는 우리 것이었다. 화산 폭발 시 화산 용암이 지나며 좁고 깊은 협곡을 만들었다. 백두산 원시림의 호위를 받으며, 수백 m 낭떠러지 사이로 청정 옥수가 세차게 흐른다.

해발 1700m 지점엔 야생화 화원이 펼쳐져 있다. 1800여 종의 야생화가 고산의 거대 정원 속에서 자태를 뽐낸다.

날이 좋지 않아 천지를 못본다 해도, 고구려 유적 탐방으로도 충분히 감동 어린 북중접경지 여행이 될 수 있다.

지안(중국)=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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