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드 3열 대형 전기 SUV 생산 계획 백지화
GM·스텔란티스·테슬라 등 잇달아 인력 감축
배터리 업계 “투자 속도조절·시장 변화 예의주시”
포드는 지난해 5월 3열 전기 SUV로 ‘개인용 초고속 열차’를 구현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최근 이를 백지화했다. [포드 제공] |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 미국 포드는 최근 3열 대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출시 계획을 폐기했다. 해당 차량은 포드가 ‘개인용 초고속 열차’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준비한 차세대 모델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이 정체기(캐즘)에 빠져들자, 모든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산하 브랜드인 뷰익의 전기차를 미국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당초 올해 신차 공개를 하고, 내년 판매가 목표였으나 무산됐다. 쉐보레 실버라도 전기차를 만들 예정이었던 미국 오리온 조립공장은 생산 개시 시점을 올해 말에서 2026년 중반으로 연기했다.
‘전기차 전환’에 앞다퉈 뛰어들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더딘 데다가 최근 잇단 화재로 전기차 안전성 논란까지 불거지면서다. 전기차 시장 침체가 배터리 등 후방산업의 지형도를 변화시킬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포드는 최근 대형 전기 SUV 생산을 백지화하는 대신 하이브리드 모델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포드는 F-150 차세대 전기트럭의 출시 시점도 2027년으로 2년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미 집행된 시설투자비를 포함해 총 19억달러(약 2조5000억원)의 비용이 상각 처리되거나 추가로 지출될 예정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포드는 또 순수 전기차 생산과 관련한 연간 자본지출 비중을 기존 40%에서 30%로 축소하겠다고 밝히며, 전기차 속도 조절을 공식화했다.
업계에서는 포드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자동차 업계가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던 전기차 시장을 재평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갔다고 판단하고 앞다퉈 인력 감축에도 나서는 분위기다. GM은 최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직원 1000여명을 정리해고 했다. GM 측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업을 단순화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며 감원 이유를 설명했다.
GM은 당초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100만대의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전기차 판매가 부진하자 이에 대한 투자와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다국적 완성차 브랜드인 스텔란티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스텔란티스는 최근 미국에서 약 2500개의 일자리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시간주 조립 공장에서 픽업트럭 램 1500 클래식의 생산이 올해 말 중단되면서다.
스텔란티스는 기존 판매를 대체해 줄 것으로 기대한 전기차 시장이 예상보다 더디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회사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8%나 급감했다.
테슬라 세미트럭 이미지 [테슬라 제공] |
전기차 선두 주자로 꼽혔던 테슬라 역시 지난 2분기에만 10%가 넘는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의 성장과 사업 확장을 이끌어온 핵심 임원들도 줄줄이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침체에 더불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잇단 화재로 소비자들의 ‘전기차 포비아(공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던 테슬라 전기트럭 ‘세미’에서 화재가 발생해 미국 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관련된 화재 위험에 관심을 두고 조사를 결정했다”며 “잔해를 조사하고 충돌 및 후속 화재로 이어진 이번 사건의 세부 정보를 수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22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테슬라 주가가 5% 넘게 급감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전기차 안전성 논란이 뜨겁다. 지난 1일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가 시발점이 됐다. 특히 이번 화재는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 인근 차량으로 불이 옮아 붙으며 피해액이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해당 모델에 탑재된 배터리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파라시스 제품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가중됐다.
이에 정부는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추진했고,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를 비롯해 국내에 진출한 대다수 브랜드들이 모두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인 중국에서도 전기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중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고는 3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집계되지 않은 사고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잇단 악재로 전기차뿐 아니라 배터리 등 후방산업까지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공격적으로 해외 공장 건설에 나섰던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는 시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 스텔란티스, 혼다, 현대차 등과 북미에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속도 조절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만큼, 생산시설의 신설 및 증설 속도를 조절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포드, 현대차 등과 미국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건립 중인 SK온도 고객사의 판매량 및 출시 계획 등을 면밀히 살피면서 원가 절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해외 투자에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온 삼성SDI는 연내 스텔란티스와의 인디애나주 합작 1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당초 내년 1분기 가동이 목표였지만, 이를 앞당겨 위기 속에서도 시장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부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전체가 위축되며 국내 배터리 업계 역시 올해 들어 실적이 크게 하락하는 등 타격을 받고 있다”며 “다만 K-배터리의 경우 품질과 기술 경쟁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만큼, 캐즘 위기를 잘 버틴다면 성장의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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