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산층 강화·친환경...해리스노믹스 양대 축
식품 가격제한·의료부채 탕감·세액공제 제시
법인세 인상·전기차 확대로 트럼프와 차별화
IRA 유지·연준 독립성 보장 증시에 호재
해리스 부상에 가상자산 적대적 규제 우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AFP] |
“중산층의 경제적 안전성을 진전시키는 데 집중하는 경제 정책, 이것이 ‘기회의 경제(Opportunity Economy)’입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유색인종 부통령이란 역사를 썼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미국 최초의 여성 유색인종 대통령이란 또 다른 새 역사를 쓰기 위한 항해를 위해 닻을 공식적으로 올린 것이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재선 도전 포기를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한달이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놀라고 있는 지점은 짧은 시간에도 해리스 부통령이 단순히 바이든 대통령을 대체하는 후보로 인정받았다는 수준을 넘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항마, 그 이상 대선 승리를 꿈꿀 수 있는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순식간에 올라서는 ‘드라마’를 써나갔다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 떠밀려 꺼낸 후보 교체, 최고의 결과로?=지금 미국 대선판에서는 8월 초를 기점으로 해리스 부통령이 역전에 성공,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있단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기준 정치 통계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538)과 또 다른 정치 통계 사이트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집계한 전국 여론조사 평균치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각각 47.1%, 48.4%로 43.7%, 46.9%에 그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이스투더화이트하우스(Race to the WH)의 당선 가능성 예측 결과에서도 해리스 부통령의 승리 확률이 54.5%로 45.2%에 그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압도했다.
전문가들이 해리스 부통령이 상승세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하는 이유가 바로 경합주에서 지지율이 오르막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의 기세가 수직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선거를 이길 것이라 단정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합주 승부에서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세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최대 격전지’로 꼽은 애리조나, 네바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7개주 내 후보별 지지율 평균치에선 여전히 트럼프(47.4%) 전 대통령이 해리스(47.3%) 부통령에게 0.1%포인트 차이로 앞서는 중이다.
대선까지 70여일 남은 상황까지도 민주·공화 양당이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인단 수는 어느 쪽도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선거 분석 사이트들도 각각 다른 예상치를 내놓고 있다.
▶모습 드러낸 ‘해리스노믹스’=해리스 부통령이 제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미국에서 펼쳐질 경제 정책, 이른바 ‘해리스노믹스(해리스와 경제의 합성어)’의 근간은 자신이 부통령으로서 지난 4년 간 몸 담았던 바이든 행정부의 ‘중산층 강화, 친환경 에너지 산업 장려’를 기본틀로 삼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취임 100일 경제 구상’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 캠프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식료품 관련 가격의 폭리 금지를 위한 연방 차원의 법안을 추진하고, 대기업의 식품 관련 과도한 이윤 추구를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련 규정을 어기는 기업들을 수사해 엄하게 처벌할 권한을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주(州) 법무장관에 부여하며, 대형 식품기업들이 가격을 크게 올리고 경쟁을 저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불공정한 인수합병도 단속할 계획이다.
해리스 측은 미 중산층의 의료비 부담 경감에도 드라이브를 걸겠단 계획이다. 우선 최대 300만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지고 있는 70억달러 규모의 의료 부채 탕감에 나선다. 이어 제약사 간의 투명한 경쟁을 요구함으로써 약품 공급 가격을 낮추고, 의약품 중간상의 불공정 행위도 강력히 단속할 계획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고령자에 한해 도입한 인슐린 가격 월 35달러 상한과 처방약 자기 부담 한도 2000달러를 모든 미국인으로 확대할 방침이기도 하다.
중산층 가정엔 자녀 1명당 3600달러의 세액공제를, 자녀를 출산하면 그해 6000달러의 신생아 세액공제를 제공할 계획이다. 자녀가 없는 저소득층 직장인 개인과 부부를 대상으로 최대 1500달러까지 세금 감면에도 나선다. 연간 소득 40만달러(약 5억4000만원) 미만 가정에는 세금을 올리지 않을 방침이다.
해리스 캠프는 미국 전역에서 심각한 주택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4년간 주택 300만호가 새로 공급되도록 할 계획이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계약금 용도로 2만5000달러(약 3400만원)를 지원하고, 지역 정부 차원의 주택 공급을 지원하기 위해 4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성한다. 대기업 임대업자들이 공모해 월세를 과도하게 올리는 것도 막을 방침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35%에서 21%로 낮췄던 법인세율을 28%까지 부분적으로 회복하겠다는 것도 해리스의 계획이다. 미 의회 내 무소속 연방책임예산위원회는 법인세율 인상으로 향후 10년간 미국의 재정 적자를 1조달러이상 줄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인공지능(AI) 산업 발달로 막대한 양의 전기를 소비하는 데이터센터가 급증할 것을 대비해 에너지 공급 확대 역시 해리스 측은 공언했다. 그 방안은 태양열 발전 등 청정에너지에 대한 장려로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 중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상의 전기차 세액 공제 역시 차기 해리스 정부의 주요 정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해리스 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신규 자동차 절반을 전기차로 만들겠다는 선언도 했다. 대중교통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정책도 추진한다.
▶미리보는 해리스 트레이드=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승리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섹터로 ▷전기화(Electrification) ▷그린 수소 등 청정에너지 ▷에너지 효율성 개선 ▷재생 에너지 개발 ▷전기차 및 충전 인프라 관련 종목들로 구성된 일명 ‘친환경 밸류체인’을 꼽았다.
삼성증권이 미 증시 내에서 해리스 관련주로 꼽은 대표 종목은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Tesla)’, 태양광 설치 업체 ‘선런(SunRun)’, 태양광 마이크로 인버터 개발 기업 ‘인페이즈 에너지(Enphase Energy)’, 냉난방공조(HVAC) 업체 ‘존슨콘트롤즈(Johnson Controls)’, 전기화 관련 인프라 솔루션 제공 업체 ‘콴타서비스(Quanta Services)’, 미 최대 친환경 유틸리티 업체 ‘넥스트에라에너지(Nextera Energy)’, 친환경 사업 강화에 성공한 전통의 전기 인프라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이다.
국내 증시에서도 미국 증시와 유사한 섹터의 종목들이 ‘해리스 트레이드’의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최우선적으로 꼽히는 섹터는 바로 2차전지 등 전기차 관련주다. 최근 불거진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주가 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트레이드’가 부각되며 가장 위축된 섹터를 꼽을 때 배터리 관련주는 빠지지 않고 꼽히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 공제에 대해 “너무니없는 일(ridiculous)”이라며 폐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이 폐지될 경우 전기차 판매엔 직접적인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의 2차전지 업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현 바이든 행정부의 IRA 법안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해리스 부통령이 집권할 경우 미국에 진출한 국내 전기차·2차전지 업체들은 계속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와 포스코·에코프로 그룹사 등 2차전지 소재 제조사들은 IRA에 따른 혜택을 믿고 미국 현지에 2차전지 공장을 짓거나 건설 중이다. 관련 종목들의 주가에도 반등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수년간 이어졌던 고금리 시대가 9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피벗(pivot, 금리 인하) 개시로 끝날 것이란 기대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인 만큼, 친환경 정책에 진심인 해리스 행정부의 등장은 국내 주요 태양광 관련주에도 큰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킹 립 베이커애비뉴웰스매니지먼트 수석전략가는 “최근 태양광 업체 주가가 금리 인하 기대감에 오랜 침체를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된 청정 에너지 이니셔티브가 해리스 행정부로 이어지는 것은 태양광 관련주에 안도감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승리는 10%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일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상을 수포로 돌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대미 수출이 경기 전반과 기업들의 이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국으로선 유리한 측면이라 볼 수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피 지수의 흐름을 결정짓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반도체), 현대차·기아(자동차), 포스코홀딩스(철강 및 2차전지), LG에너지솔루션(2차전지) 등 코스피 대표 대형 상장사들의 실적은 대부분 대미 수출 실적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특히 대중(對中) 무역 비율이 줄면서 대미(對美) 무역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현실 속에서 더 그렇다”면서 “현지 공장 설립 등으로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곤 하지만, 트럼프표 고율 관세 부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하락에 따른 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국내 증권가에선 해리스 행정부의 각종 중산층 대상 세금 감면과 세액 공제 부채 탕감 등으로 강력해질 미 중산층의 소비력을 고려한다면 화장품·식음료품·유통주 등 소비재 관련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은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정책 결정 변동성을 최소화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연준의 결정에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는 해리스 부통령이 “기준금리 결정에 대통령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정책 결정 경로 안정성을 높일 것이란 평가가 미 월가를 중심으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만큼 미 증시는 물론 한국 등 글로벌 증시에 미칠 정책적 불안정성에 따른 리스크도 줄고, 분석을 통한 투자 방향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승리가 반드시 금융투자시장에 긍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 중엔 관세 부과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방아쇠라면,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엔 미국 내 중산층에게 돈을 풀면서 발생할 ‘가처분 소득 증가’가 문제일 것이라는 게 미 CNN 방송의 지적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예상치를 상회하는 실업률 등으로 인해 미 경제에 ‘R(침체, Recession)의 공포’가 엄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침체 우려 속에서 물가마저 상승하는 ‘스태그플래이션(Stagflation,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인세 인상 정책도 미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게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곧장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전략가들은 “법인세율 1%포인트의 변화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이익에 약 1%포인트의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법인세율을 7%포인트 올리겠다고 한 만큼, S&P500 상장사의 이익 약 7%의 악영향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 국내 증권가에선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해리스 후보의 법인세율 인상안이 현실화된다면 S&P500 순이익이 5% 감소할 수 있다”면서 “금융이나 자본시장은 해리스보다 트럼프의 정책을 반길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해리스, 가상자산 도우미 아닌 저승사자일까?=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승리 가능성에 떨고 있는 대표적인 투자처로는 가상자산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최대 가상자산 행사인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직접 참석해 “가상자산 대통령(Crypto President)”이 되겠다고 공언하는 한편, 친(親) 비트코인 인사를 인수위원장으로 내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해리스 부통령과 민주당은 가상자산에 대해 구애의 손길을 내밀곤 있지만 상대적으로 적극성이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나서 해리스 부통령이 가상자산 규제에 앞장섰던 바이든 행정부와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언급하고, 해리스 캠프 고위 인사가 가상자산 기술과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정책 지원에 나설 것이라 약속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회의적 시선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앞서 이달 초 해리스 부통령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과 회동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아직 직접적인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애초 참석이 예정됐던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의구심은 더 커졌다 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개한 민주당 정강에선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는 점도 실망감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 됐다.
최근 금융 시장을 중심으로는 민주당이 줄곧 가상자산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해리스 행정부가 출범하면 가상자산 시장을 겨냥한 규제가 계속 시행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미 금융사인 TD코웬은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가상자산 산업에 더욱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자렛 세이버그 TD코웬 애널리스트는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가상자산에 더 개방적일 수는 있지만, 이를 우선순위에 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업계는 계속해서 적대적인 규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가능성이 크고, 민주당 역시 공화당과 달리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