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음지로 숨어 버리는 음란사이트...합성물 ‘100% 삭제’ 안돼”
뉴스종합| 2024-08-29 11:15
2017년부터 디지털 장의사로 일해 온 안재원 클린데이터 대표. 안 대표는 “디지털 장의사에게 맡겨도 딥페이크물을 100% 삭제할 수 없다”고 했다. 오른쪽 사진은 ‘빠르면 1분 만에도 딥페이크물을 만들 수 있다’고 광고하는 텔레그램방 공지. 3000원이 안 되는 돈으로 딥페이크 사진 1장을 만들 수 있다. [안재원 대표 제공·X(옛 트위터) 캡처]

“수백 건의 영상이 퍼지기 때문에 최근에 올라온 피해자 영상을 또 다른 피해자 영상으로 덮는 실정입니다. 디지털 장의사에게 맡겨도 불법촬영물(불촬물)·딥페이크물이 100% 지워지진 않습니다. 경찰의 국제 공조수사가 활발하지 않은 이상,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2017년부터 8년째 디지털 장의사로 일해 온 안재원 클린데이터 대표는 하루에 많으면 수십 건의 성인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을 지운다. 길게는 1년까지도 의뢰자의 불촬물을 찾는다. 그렇게 지워도 지워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것이 불촬물과 딥페이크 영상이라고 한다.

영구적으로 삭제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음지로 숨어버린 성인 사이트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포르노가 합법인 국가에 서버를 차려놓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성인 사이트가 많았다. 그러나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로 성인 사이트의 한국인 운영자들이 체포되면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며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이 없는 나라에 서버를 두는 등 불법 성인사이트들이 ‘음지화’된 것이다.

안 대표는 29일 헤럴드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포르노가 합법인 국가에서 성인 사이트를 운영한 운영자들은 어쨌든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 수사를 받을까 봐 불촬물 삭제 요청을 하면 받아주는 경우가 많았다”면서도 “지금은 ‘어차피 범법자’라는 마음으로 음지로 숨어들기까지 해 삭제 요청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조회수가 곧 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촬물이 다른 사이트에 올라가는 등 확대·재생산되면서 영상의 해시값이 바뀌는 것도 영구 삭제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원본 영상을 가지고 새로 인코딩을 하거나 워터마크를 붙이거나, 제목에 쓰이는 키워드를 바꾸는 등 변형을 가하면 영상이 퍼진 사이트를 추적하기 쉽지 않다. 힘이 들더라도 사이트를 하나씩 뒤져가며 수작업으로 삭제 작업을 하는 이유다.

불촬물의 성격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최신 기술을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범죄 유형이 온라인 성범죄다. 가장 최신의 수법은 딥페이크다. 빠르면 1분 만에도 딥페이크물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고, 접근성이 높아지면서다. 문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예인 등 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물이 범람했다면, 최근에는 주로 미성년자인 동급생이나 중·고교 동창 등 가까운 지인을 표적으로 딥페이크물을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 지인을 합성한 딥페이크물의 경우 불촬물과 달리 성인 사이트에 적극적으로 배포하기보다 텔레그램방에서 소수의 인원끼리 돌려보는 경우가 대다수라 피해자가 범죄사실을 알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안 대표는 “딥페이크물 삭제 요청을 한 피해자의 대부분은 지인을 통해서 피해 사실을 인지한다. 딥페이크물 삭제로 업체에 의뢰를 하는 10명 중 9명은 미성년자”며 “딥페이크물 제작과 함께 피해자의 신상 정보까지 파악, 피해자에게 본인의 사진이 들어간 딥페이크물을 보여주며 돈을 달라는 식으로 협박하는 행위가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촬물 유포의 경우 국내 사이트나 성인 사이트에 올리면 돈을 받는 등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요즘 딥페이크물 제작의 동기는 호기심 또는 또래 사이의 과시욕, 영웅 심리, 보복심 등이 주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안 대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비공개로 사진을 올려도 뚫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사진을 다 가져온다”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디성센터(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딥페이크물을 삭제해주는 조치가 있지만, 삭제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고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에 거점을 둔 불법 성인사이트 운영자를 잡기 위한 국제공조수사가 활발해지지 않으면, 이 구조 안에서 성범죄 피해자는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박지영 기자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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