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이자 세계 2위 자동차 업체인 독일 폭스바겐 그룹이 수익성 악화에 따른 경영난 타개를 위해 자국 내 공장 폐쇄를 추진하기로 했다. 1937년 회사 설립 이래 처음이다. 중국 전기차 공세가 가장 큰 원인이다. 내연차 중단을 서둘러 온 유럽연합(EU) 정책에 맞춰 폭스바겐도 급히 전기차 전환에 나섰지만 수요는 부진했고, 경쟁력은 중국 브랜드에 밀렸다. 시장과 업계 현실을 외면한 섣부른 규제와, 미래를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기술력이 위기를 부른 것이다. 수출·내수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크다.
3일(현지시간) 독일 언론에 따르면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노사협의회에서 “자동차 산업이 몹시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있다”며 “독일의 차량 제조 및 부품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더 이상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경영진은 최소한 완성차와 부품 공장 각각 1곳씩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은 1994년부터 유지해온 고용안정 협약도 종료하겠다며 대규모 인력 감축도 예고했다. 독일 내 폭스바겐 직원은 약 10만명인데 이 중 2만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 현지 매체들의 전망이다.
전세계적 경제 침체 가운데 당국은 무리한 규제를 도입하고 기업은 전통에서 혁신으로 유연하게 전환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경쟁자에 밀린 것이 폭스바겐 경영난의 핵심이다. 유럽 의회는 2035년부터 내연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달 통과시켰다. 폭스바겐은 이에 맞추려 2030년까지 판매량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 1~7월 유럽에서 팔린 승용차 중 전기차는 13.8%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중국차가 많이 잠식했다. 지난 6월 중국의 유럽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11%로 사상 최고였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도 15년간 지켜온 1위 자리를 중국 전기차 BYD에 내줬다. 전기차 부문에선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방대한 내수에 힘입은 중국 기업에 기술·가격 경쟁력 모두 뒤처졌다는 평가다. 게다가 하이브리드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전기차의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대응한 한국·일본 기업에도 밀렸다.
폭스바겐의 독일 공장 폐쇄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글로벌 3위인 현대차그룹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폭스바겐 아성을 허문 중국차 공세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기업은 압도적인 기술로 중국차의 가격 경쟁력을 넘어서야 하고, 정부는 유연한 규제와 적극적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