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시론] 시민덕희는 영화로 충분하다
뉴스종합| 2024-09-05 11:09

이른 아침 핸드폰 너머로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 보이스피싱 당했어”. 연이어 경찰서라면서 “어머니께서 보이스피싱을 당하신 것 같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이게 보이스피싱이구나’였다. 변호사한테 보이스피싱을 하다니, 유튜브처럼 역으로 장난이나 쳐보려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어머니를 바꾸어 달라고 한 후 모자만이 알 수 있는 추억을 물어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어머니였다.

너무나 뻔한 수법이었다. 금융감독원인데 계좌에 위조지폐가 입금되어서 정상적인 지폐로 교환해 줄테니 현금을 인출하여 아파트 우편함에 넣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이틀에 걸쳐 거액의 현금을 우편함에 넣다가 3일째 되는 날 보이스피싱이구나 하는 생각에 경찰서로 달려가서 신고를 하신 것이다.

최근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기내에서 ‘시민덕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가 수사기관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하여 직접 외국으로 가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을 잡았다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당하지’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영화보다도 더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피싱(Phishing)은 개인정보(Private data)와 낚는다(Fishing)의 합성어로, 피해자를 기망 또는 공갈하여 개인정보 및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하거나 금전을 송금 또는 교부하게 하는 수법을 말한다. 보이스피싱은 음성통화(Voice), 즉 전화를 이용하여 피싱을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965억원으로 2022년 대비 35.4%가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경제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자살에까지 이르게 할 정도로 사회적 병폐가 극심한 중대 범죄이다. 논란이 있지만 범죄를 근절하는 방법 중에는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위하적 효과를 거두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80년대의 인신매매나 1990년대의 조폭범죄에 대한 사형을 포함한 중형 선고가 있다.

보이스피싱을 처벌하는 현행 법률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대한 특별법’이 있지만, 처벌 수위가 낮아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지난 6월 21일 국회에서 처벌을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대폭 상향하고, 벌금도 상한을 ‘이익 가액의 10배 이하’로 강화하면서 징역형과 병과할 수 있도록 하는 위 특별법의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변호사로서 특별법에 의한 엄벌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잘 알고 있지만, 콩나물 값 몇 십 원까지 아끼면서 살아오신 여든도 훌쩍 넘기신 노모의 아들로서는 정말 보이스피싱범들은 살인죄에 준하는 극형을 선고했으면 하는 분노가 순간적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 것은 고령의 피해자를 친절하게 위로하면서 수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동대문경찰서 담당경찰관들의 배려와 헌신 덕분이다. 시민덕희를 더 이상 현실이 아닌 영화로만 만들어 주기 위해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찬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 교수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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