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단독]“영상 의뢰했지? 10만원 내라” 협박… ‘딥페이크 덫’ 빠진 10대
뉴스종합| 2024-09-05 15:56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중학생 A군은 온라인 채팅방에서 ‘지인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주면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주겠다’는 홍보글을 우연히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알고 지내던 친구의 얼굴사진을 SNS에서 캡처해 개인정보와 함께 넘겼다. 채널 운영자는 갑자기 돌변했다. “너 딥페이크 만들어 달라고 한 거 폭로한다. 10분 내로 10만원 보내. 안 그러면 여자애한테 알릴거야.”

A군은 가슴이 철렁했다. 수중에 10만원이 없던 그는 돈을 마련할 방법을 궁리했다. 협박범이 자신에게 했던 수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 A군은 온라인 메신저에 ‘개인정보를 주면 딥페이크를 만들어 주겠다’고 글을 올렸고 접근해 온 사람에게 돈을 받아 10만원을 마련하는데 보탰다. 이 사실은 부모님과 피해자에게 알려졌고 현재 A군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딥페이크(Deepfake)를 활용한 불법 합성물을 비롯해, 디지털 성범죄에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된 청소년들의 사례가 나왔다.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이하 센터)가 올해 1~8월 말 사이 디지털 성폭력 가해 청소년 39명을 심층상담했다. 헤럴드경제가 확보한 상담 결과 분석자료를 보니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활용해 다양한 디지털 성폭력을 저질렀다. 특히 A군처럼 10대 청소년을 유인해 소액을 뜯어 내거나, 도박·성매매사이트에 광고물을 올리게 하는 온라인 올가미에 걸린 사례도 있었다.

센터 분석자료에 따르면, 39명의 상담 청소년 가운데 35명은 가해자이고 4명은 가해와 피해가 동시에 이뤄진 케이스다. 이들이 디지털 성범죄로 피해를 입힌 이들의 62%(24명)가 일상에서 만나는 지인이었다. 친구나 교사, 아는 동생, 애인 등이다.

10대 청소년이 가장 많은 저지르는 디지털 성범죄 유형은 ‘카메라 이용 촬영’(21명)으로 학교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여학생을 몰래 촬영하는 따위다.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폭력’(19명)도 잦았는데, 메신저를 통해 음란한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거나 요구하는 등의 유형이 속한다. 상대가 성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해당된다.

최근 사회적 문제도 떠오른 ‘허위영상물 제작·유포’(6명)는 전체 범죄 유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다만 친구의 얼굴을 딥페이크 프로그램으로 합성한 사진이나 영상은 SNS를 통해 불특정다수에게 유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피해의 범위는 확대되는 특성이 있다.

게다가 피해가 곧 가해로 이어지는 사례들도 있었다. 한 학생은 온라인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몸캠’ 피싱을 당했다. 상대가 친구들 사진과 연락처를 주지 않으면 몸캠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압박하자, 결국 친구들 정보를 넘겼고 이게 딥페이크 합성물로 제작돼 온라인에서 유포됐다.

청소년·여성·교육·인권·학부모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 청소년을 위한 정책 총력 대응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도윤 기자]

이명화 센터장은 “(악의 없이) 순진함이나 호기심에서 시작했다가 온라인 범죄 올가미에 걸려드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센터에서 심층상담을 받은 학생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게 된 배경으로 “큰일이라 생각지 못함”(22%), “단순 호기심”(22%)이라고 응답했다.

대개의 청소년들에게 ‘악의적 범의’가 없었다는 점에 위안할 순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른바 각종 모바일 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세대들이, 정작 디지털로 비롯된 성범죄·성폭력에 관해선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단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에 우려한다.

교육부는 디지털 기술로 비롯되는 딥페이크 등 범죄 관련된 교육자료를 제작해 오는 10월 전국 학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윤미영 서울여성회 교육기획팀장은 “학교 공문을 통해 (딥페이크 문제가) 그저 개인이 조심할 문제로 거론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제대로 된 메뉴얼도 없이 개별 교사의 재량에 맡기는 형식적 성교육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에 기반한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yang@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