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명문초, 학원가 인기에 ‘부동산 불패’ 계속
타 지역 유명 강사로 대치동으로…섭외 경쟁
30억 아파트부터 月70만원 반지하까지 줄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가 상가 매물 등을 홍보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
[헤럴드경제=박혜원·안효정 기자] #1.“공부는 결국 분위기다.” 학부모 김모(53)씨는 이런 다짐 아래 15년 전 경기도에서 서울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 고등학생인 자녀 둘에 투자하는 비용은 학원 4곳과 단기과외 등을 합쳐 매달 400만원가량이다. 김씨는 “노후 준비할 돈은 없겠구나 싶지만, 그래도 애들이나 잘 키우고 보자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강남 중에서도 대치동 중심으로 형성된 명문고와 우수한 학원가 강사진 등을 고려하면 교육비 투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게 김씨의 이야기다.
#2. 강남구 대치2동 도곡초 앞,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골목에서 지난 5일 만난 삼수생 서모(21)씨는 8평대 반지하에 혼자 살며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월세는 매달 70만원. 서씨는 전남 순천이 고향이지만, 대치동의 교육 인프라를 포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수종합학원 ‘시대인재’에 다닌다는 서씨는 “학원에서만 받을 수 있는 특화 교재와, 강제성이 있는 분위기 때문에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치동의 한 학원이 재학생의 입시 실적을 홍보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
강남 일대 아파트가 잇따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중심에는 대치동 학군지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있다. 대치동 학군지를 노리고 최소 12년을 장기 거주하는 학부모부터, 대형 입시학원이 밀집한 학원가에 타 지역 수험생들도 몰리며 수요가 계속되는 구조다.
전국 수험생과 학부모가 모여드는 대치동 학원가는 이 일대의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래미안대치팰리스’를 중심으로 나뉜다. 래미안대치팰리스는 대치동 부촌을 대표하는 아파트로, 지난달 전용 84㎡(34평)가 36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썼다. 학군지 아파트를 전문으로 하는 이성민 공인중개사는 “요즘은 부동산 가격이 오른 탓에 매물이 극히 드물다. 38평대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매매하겠다며 대기하는 손님이 공인중개사마다 1~2명씩, 어림잡아 20명은 넘는다”고 설명했다.
대치동 부동산에선 매물 등급을 A,B,C로 나눈다. A등급인 래미안대치팰리스 남쪽으로는 이른바 ‘우선미’라 불리는 건축 40년 안팎의 개포우성, 대치선경, 한보미도맨션 아파트, 그리고 은마아파트가 있다. 대치역과 도곡역 인근에 모여 있는 이들 아파트 인기의 핵심은 ‘학군지’다. 대치초, 대도초 등 명문 초등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아파트라서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대치동 라인’은 입시 이후 인맥을 형성하는 효과도 있다.
이 때문에 대치동 부동산 사이에선 최근 ‘학군지 임장’도 인기다. 학군지 인근 아파트를 돌며 배정 정보 등을 컨설팅하는 서비스로, 회당 7만~8만원선이다.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대치동에 사는 학원 원장, 교사들과 네트워크를 꾸준히 구축해놓으면서 학부모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대치동에 집중된 사교육 인프라는 더 많은 학부모들을 대치동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학부모 김씨는 “명문고 다니는 애들이 대치에서 다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았다. 그만큼 유명한 강사들도 이 곳으로 모인다”며 “이왕이면 제일 좋은 동네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은 심정 때문에 그래도 이곳에서 버틴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치동과 유사하게 학원가가 형성된 목동에서도 ‘강남 원정’을 오는 게 현실이다.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학부모 나모(40)씨는 왕복 2시간 거리를 감수하고 매주 주말 대치동 소재 학원에 자녀를 보내고 있다. 나씨는 “목동 애들 중에서도 공부 좀 한다면 강남에서 수업을 듣는데, 우리 애라고 안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대치동 도곡초등학교 앞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골목. 박혜원 기자 |
대치동 C등급 매물은 학군지로부터 떨어진 학원가 일대 빌라다. 빌라의 경우 서울권 밖에서 학교를 다니며 주말에 대치동에서 수업을 듣는 수험생과 가족, 혹은 재수생이 주로 거주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교육 목적의 빌라 거주 수요는 극히 드물었지만, 최근 수년새 점점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5일 찾은 한티역 일대, 학원가 골목 곳곳에는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주택 사이 중소형 학원과 스터디 카페 등이 섞여 있었다. 이날 학원 수업을 마치고 스터디 카페에 들어가던 강모(20)씨는 “학원 기숙사는 너무 비싸 월세를 얻어 살면서 재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워낙 구축이라 집에 있기는 싫고 학원이 끝나면 스터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털어놨다.
빌라 매물 경쟁이 가장 심한 시기는 수능 직후, 혹은 방학 기간이다. 대부분 구축 빌라이지만 평수 등에 따라 월세는 60만~150만원 사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보통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사는데, 경쟁이 심한 시기에는 반지하 월세 매물도 금방 나간다”고 설명했다. 지난 연말, 수능 직후엔 특히 재수생 수요가 몰리며 옥탑방에 단기 거주하다 나간 모녀도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치동 학원가. 박혜원 기자 |
학원 업계 역시 아직까지는 강남 수요가 압도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의대 정원 증원이 이뤄지며 학원 수요 분산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아직까지 업계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시대인재 관계자는 “대전, 동탄 같이 수도권에서 크게 멀지 않은 지역의 학생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시대인재로 온다”며 “‘의대는 시대’라는 공식이 굳어지며 대치 선호 현상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이후 대형 학원들의 지방 진출 소식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공격적이지는 않은 추세다. 메가스터디나 종로학원 등은 정부의 증원 발표 이후 일부 지역 학원에 의대반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아직까지 현실화한 사례는 없다. 한 학원 관계자는 “지역에서 좋은 강사를 서울로 섭외하면 섭외해왔지, 아직까지는 강남의 수요가 압도적이라 지방 진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강남에 집중된 교육열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최근 한국은행은 서울대에 ‘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상위권 8개 대학과 의약학계열 진학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소득 5분위(상위20%)가구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소득 1분위(하위20%) 5.4배 높았다. 사교육이 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대가 지역별 학생 수 비율을 반영해 학생을 선발하자는 게 한은 제안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양병찬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 소극적으로 운영되는 농어촌 특별전형 등 지역균형, 지역별 비례선발제도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강남 전문직 자녀들이 서울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늘고 있는데 공적 재화를 특정 계급이 독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립대학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추진된 수시 확대 역시, 실상은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학생들이 우수한 학교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강세를 보였다”며 “지방 거점 국립대 입장에서는 지역 우수 학생을 서울대에 빼앗길 수도 있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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