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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갈바람·새별오름 핑크뮬리...제주 가을, 바다와 밀당 중
라이프| 2024-09-10 11:23
새미동산의 핑크뮬리

‘갈옷’을 만들어 아이들을 입히고, ‘쉬익쉬익’거친 숨비소리(쇳소리가 든 숨소리)를 내며 물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제주 해녀도 곧 추석을 맞는다.

옥황상제의 딸, 설문대할망의 전설을 품은 신화역사공원 남쪽 송악산 입구에 이르자 물질을 마치고 앉아 쉬는 해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해녀 사이에 장난꾸러기 돌하르방이 머리에 두 손을 둥글게 얹고, 사랑의 하트를 보내는 현무암 조각상이 반긴다.

송악산 동편 해식애 꼭대기 절벽에 오르니 가파도와 마라도 쪽에서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온다. 두 섬은 ‘가파도(갚아도) 그만, 마라도(말아도) 그만’이라는 ‘아재 개그’같은 라임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국토의 최남단을 지키고 있었다. 국제 해도(海圖)에 제주도는 지명 표기가 되지 않아도 마라도는 꼭 명시된다. 마라도와 고려 삼별초 장군들이 초기 개발했다는 학설이 있는 류큐(현 일본 오키나와) 사이 이어도 역시 해도 상 중요한 지역으로 꼽힌다.

송악산 북쪽의 산이수동선착장에서는 마라도를 오가는 배가 쉼없이 여행객을 실어나른다. 인근 군산오름과 산방산은 해상 경계병처럼 믿음직하게 서 있다.

송악산 정상부는 자연 휴식 차원에서 2027년 7월까지 통제 중이다. 그러나 정상부보다 더 우람한 가메창 분화구가 있어 위안이 된다. 깊이 69m의 이 분화구는 등산객이 선 지점이 1층이라면 지하 27층을 내려다 보는 것과 같다.

제주 남서부 중산간은 길고 넓다. 그래서 마을 이름에 넓을 광(廣)자를 넣어 동광과 서광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밀집돼 있다.

광활한 남서부 중산간의 중심마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신화역사공원에 부채의 꼭지점을 두고 쫙 펴면, 서쪽부터 남쪽으로 비양도, 차귀도, 수월봉, 산방산, 용머리해안, 천지연폭포, 대포주상절리, 서귀포패류화석층 등 세계지질공원이 줄줄이 포진해 있다.

이 구역 사이사이엔 드넓은 ▷오설록 차밭 ▷협재해변과 한림공원 ▷‘인생샷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신창풍차해안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이 있는 용수포구 ▷국가등록문화재 성이시돌목장 ▷수십만년 전부터 수만년 전까지 지층이 켜켜이 쌓인 ‘자연 추상화’같은 절벽지대인 생이기정(해식애)과 박수기정(대평포구) ▷‘도구리알’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신도포구의 뿔소라공원 ▷모슬포 횟집타운과 선착장 ▷사계·황우치·화순금모래해변 ▷제주곶자왈도립공원과 국제학교 타운 ▷카멜리아힐, 포도호텔, 방주교회, 서귀포 치유의 숲 등 중산간 청정지대 드라이브 코스 ▷논짓물·강정마을·법환포구·범섬 등이 끼어있다.

신화역사공원

신화역사공원은 옥황상제의 막내딸로, 장난삼아 하늘과 땅을 분리했다가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고, 이른바 ‘썸’을 타던 ‘별의 신’ 한감과 함께 쫓겨난 설문대할망 신화부터 삼별초 항쟁 주역들의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화가 숲길 곳곳에 조형물과 스토리 보드로 소개돼 있다. 설문대할망의 거대한 손이 제주의 산과 오름을 빚어내는 조형물 앞에 발길이 멈춘다.

산책길은 터널 형태가 많다. 나무들이 현무암 돌 위에서 버티고 살다 보니 줄기와 판근(땅위로 나온 뿌리)까지 동원해 문어발식으로 얽히고설켰기 때문이다. 신화역사공원에는 ‘씨앗과 풍요의 신’영등할망의 조형물도 있다. 소라와 고동을 매달아 해산물의 씨앗을 표현하고, 바람을 소리로 느낄 수 있도록 모빌 작품처럼 연출했다.

박수기정과 대평포구

산방산 앞 용머리해안에 그려진 ‘자연 추상화’는 용암 정체현상 때문에 생겼다. 산방산에서 농도짙은 용암이 끈적하게 솟아올랐고, 느려터진 용암이 세찬 파도에 막혀 구불구불한 모양새의 명품 바위해변으로 굳어진 것이다.

바닷가로 내려온 ‘텔레토비 동산’신창풍차마을은 바람이 불어 좋은 곳이다. 몇 주 전 폭염이 무색할 정도로 세찬 바람이 반갑다.

김대건 신부가 표류하다 도착했다는 용수포구, 농부의 수호성인 이시도르의 뜻을 이은 아일랜드 출신 농어촌 계몽 성직자인 고(故)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의 터전이 된 성이시돌목장, 연못이 노아의 방주같이 보이는 방주교회는 모두 성지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가족·친구·연인 여행객의 좋은 포토존이 되고 있다.

신화가든의 황화 코스모스

10월이 되면 서광리 신화가든에 황화 코스모스가 만개하고, 송악산·새별오름·어음리의 은빛 억새물결은 군청색 가을 바다와 밀당할 것이다. 세계자연유산 구역에 있는 제주 제주시 조천읍의 새미동산과 제주시 애월읍의 새별오름의 핑크뮬리도 이 밀당에 가세한다.

나머지 세계지질공원인 한라산, 거문오름, 선흘 곶자왈, 만장굴,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용암대지, 성산일출봉 등 주로 제주 동북부에 있는데 세계자연유산과 겹친다.

이곳 일대에서는 오는 10월 11~22일 국가유산청·제주특별자치도 주최, 국가유산진흥원·세계자연유산마을보존회 주관으로 ‘2024 세계유산축전’이 열린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해녀의 날(매년 9월 21일)이 포함된 오는 20~22일 ‘제주해녀축제’가 열리는 해녀박물관은 구좌읍 상도리에 있고, 윤여정·김고은 주연의 영화 ‘계춘할망’촬영지는 구좌읍 하도리에 있다.

큰 강을 이루고 흐르던 용암이 동굴을 만들고 다시 지상으로 나와 빌레못을 조성한 뒤, 만장굴을 뚫고 나와 바다와 조우한 곳, 월정리는 요즘 프리 다이빙, 해녀 체험, 투명카누 놀이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한라산을 휘감아도는 드라이브 스루 여행을 끝으로 제주 남서·동북부 세계유산 여행을 마치면, 광활한 남서부 중산간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제주신화월드 스카이풀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푼다. 이어 르 쉬느아에서 홍콩·상하이 ‘미셰린 식당’용푸의 베이징덕, 생선 머리찜, 흑돼지 볶음, 꽃향기 탕위안 등 보양식을 즐긴다면 금상첨화겠다.

제주·서귀포=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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