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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은 한미약품 데자뷔? [투자360]
뉴스종합| 2024-10-01 06:00
(왼쪽부터)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 [각사 제공 및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두고 한미약품을 떠올리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기존 지배주주 사이 분쟁이 벌어지자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해결사로 나선 점도 동일하다.

분쟁 상황 속에서 단기 차익을 기대하는 매수세가 유입돼 주가가 치솟았다는 공통점도 가진다. 한미약품의 경우 분쟁이 장기화되며 주가는 하락해 금융당국 밸류업 노력에 역행하는 모양새다. 고려아연도 공개매수 가격 상향, 자사주 매입 시사 등 분쟁 당사자 사이 공수가 지속되며 주가 변동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 최근 1개월 종가는 연초 고점 대비 40%가량 낮아졌다. 현 시가는 집안 내 경영권 분쟁 직전 1개월 평균 종가도 밑돌고 있다.

한미사이언스의 경영권 분쟁은 올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속세 부담이 컸던 송영숙 회장과 그 딸인 임주현 부회장은 당초 신생 PE였던 라데팡스파트너스를 통해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처분해 현금을 마련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라데팡스가 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며 신사업 투자 의지를 가졌던 OCI를 물색, 양사가 지분 제휴를 맺을 수 있는 거래를 주선했다.

다만 송 회장의 두 아들 임종윤·종훈 형제가 OCI와 통합에 반기를 들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가치가 낮게 책정된 점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윤 사장은 글로벌 PE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경영권을 지키겠다며 정기주총에서 주주를 설득하는 데 성공,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임종윤 대표의 말과 달리 재무적투자자(FI)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소수지분 투자인 데다 분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FI 입장에서 투자 매력도가 낮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 사이 개인 기준 한미사이언스 최다출자자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송 회장 측과 의결권을 합치하면서 분쟁은 재점화됐다. 오는 11월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그리고 신 회장은 임시주총을 열고 이사회 의석을 늘릴 계획을 세운 상태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OCI와 통합은 안 되지만 FI로부터 자금 유치는 된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고려아연 분쟁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고려아연은 두 집안의 싸움이라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영풍 기업집단에 속한 비철금속 제련 기업이다. 영풍 토대를 만든 창업주는 고(故) 장병희·최기호 두 사람으로 고려아연의 경우 소유는 장 씨 가문, 경영은 최 씨 가문이 책임지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세대를 거치며 창업주 두 사람이 쌓은 신의도 차츰 옅어지고 두 집안 관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창업주 3세 최윤범 회장 체제가 시작되면서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결과 장형진 고문을 중심으로 하는 영풍 측은 MBK를 고려아연 주주로 초청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물론 최 회장 측과 사전 합의를 생략하면서 고려아연을 두고 두 집안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최 회장은 하루아침에 탄탄한 자금력과 바이아웃 노하우를 가진 MBK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동안 주주 이익에 소홀했던 일부 경영 의사결정도 드러나면서 경영권을 방어할 논리를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글로벌 PE, 국내 초대형 IB 한국투자증권 등을 백기사 후보로 언급하고 있으나 아직 소문에 머물러 있다.

한미약품 때와 유사하게 ‘MBK는 안 되지만 다른 투자자는 괜찮다’는 논리의 근거 역시 부실한 상태다. 어떤 투자자든 다양한 기관에서 위탁 받은 자금을 운용한다는 면에서 본질은 다를 게 없다. 투자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투자 수익을 기관에 배분하려는 동기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은 고려아연의 차입금을 활용해 자기주식을 매입한다는 계획도 언급하고 있다. 다만 주가가 본질가치보다 월등히 높아진 시점에 자사주 매입에 회삿돈을 쓸 명분 또한 빈약하다. '최 회장 구하기'에 고려아연의 조 단위 현금을 투입하는 것을 주주가 긍정적으로 평가할지도 미지수다.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자 거래도 종결되기 전에 금융감독원까지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양측 모두 법적 테두리 안에서 거래를 진행하고 불법 소지가 있을 경우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MBK와 영풍이 진행하는 고려아연 공개매수는 개장 일정에 따라 오는 4일 마감된다. MBK는 적어도 고려아연 지분 7%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매수가격은 75만원으로 공개매수 직전 고려아연 1개월 평균 종가 대비 40% 할증된 가격을 제시했다.

ar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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