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선서 없이 해외서 영상 증인신문…대법 “녹음파일도 증거능력 없어”
뉴스종합| 2024-10-03 09:00
대법원 대법정 앞 로비. [대법원 제공]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증인선서 없이 해외에서 영상 진술을 청취한 경우 증언 뿐 아니라 녹음파일과 녹취서의 증거능력도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적법한 증거조사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사기 혐의를 받은 대학교수 A씨에 대한 사건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해당 녹취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원심(2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판결을 깨고, 다시 재판하도록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에 돌려보냈다.

A교수는 2015~2016년께 2회에 걸쳐 허위로 조교 인사 제청서를 대학에 제출해 장학금을 부당하게 받아낸 혐의를 받았다. 조교 등록 조건을 갖춘 이에게 명의를 빌려 장학금을 받게 한 뒤 근무는 시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신 실제 조교로 근무한 다른 이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한 범행이었다.

1심은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8단독 서정희 판사는 2019년 11월, 이같이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2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1-1형사부(부장 성지호)는 2020년 10월께 이같이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지만 2심 재판부는 베트남으로 출국해 1심 당시 법정 증언을 하지 못한 피해자의 영상증인신문을 진행해 증거로 채택했다.

구 형사소송법 등에 따르면 해외에 거주하는 증인을 상대로 법정 선서 없이 영상으로 증인신문을 진행한 경우 해당 증언의 증거능력은 없다. 다만 증언이 아닌 녹음파일·녹취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재판부마다 의견이 갈렸다. 2심 재판부는 해당 녹음파일·녹취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지금은 형사소송법이 2021년 8월께 개정돼 영상 증인신문 제도가 확대됐다. 증인이 멀리 떨어진 곳,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살고 있거나 건강상태 등 사정으로 법정에 직접 출석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때도 영상 증인 신문이 명시적으로 가능해졌다. 다만 A교수의 재판이 진행될 당시까지만 해도 구법이 적용됐다.

대법원은 녹음파일·녹취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원심(2심) 판결이 잘못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2심)은 증인이 해외 체류 중이라 법정 출석에 따른 증인신문이 어렵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증거조사 방식인 ‘신문’에 의하지 않고 증인으로서 부담해야 할 각종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채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인터넷 화상장치를 통해 증인의 진술을 청취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진술의 형식적 변형(녹음파일과 녹취서 등본)에 해당하는 증거를 제출받는 우회적인 방식을 취했다”며 “이러한 조치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증인에 대한 적법한 증거조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는 피고인과 변호인이 이러한 절차 진행에 동의했거나, 증거조사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2심) 판단엔 증거조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다시 재판하도록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에 돌려보냈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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