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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거장 듀오, “새로 짓는 게 건축 아냐…강박 내려놔야” [헤럴드디자인포럼2024]
부동산| 2024-10-08 16:43
건축가 장 필리프 바살(왼쪽)과 건축가 안 라카통이 8일 오전 서울 반포 세빛섬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건축은 새롭게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기존 건축을 최대한 긍정해주는 ‘낙관주의(optimism)’가 중요합니다.”

지속가능성의 시대, 이제 건축도 새로운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무조건 새로 짓는 게 아닌, 기존 건축물과 형태를 최대한 존중하고 활용하는 것. 그 새로운 건축 혁신의 중심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세계적 건축 듀오, 안 라카통(Anne LACATON)과 장 필리프 바살(Jean Philippe VASSAL)이 있다.

이들은 8일 서울 반포 세빛섬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에서 연사로 나서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건축 철학을 소개했다.

‘기존의 어떤 것도 부수지 않는다’는 신조로 유명한 그들은 다양한 공간에 최소한의 변형 작업만으로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게 아니라, 기존 건축물과 자연을 존중하면서도 공간을 바꿔놨다.

이런 방식은 지속가능성의 가치가 중요해지며 더 주목받았고, 그들은 2021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의 주인공이 됐다. 집터의 나무 한 그루조차 쉽게 베지 않겠다는 고집이 생태 위기에 처한 지금 묵직한 울림을 준다는 평가다.

오전 세션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두 사람이 강연 주제로 제시한 ‘낙관주의(optimism)’도 기존 건축물을 긍정한다는 뜻을 담았다. 라카통과 바살은 이날 강연을 통해 기후에 순응하고, 기존 건축물의 형태를 살리는 건축 작업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며, 실내 정원과 발코니 등 요소로 공간은 넓히고 기후 조절도 쉽게 할 수 있다.

건축가 안 라카통과 장 필리프 바살이 8일 오전 서울 반포 세빛섬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우선 2017년 프랑스 보르도주에 530가구 규모의 3동짜리 낡은 공공주택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사례를 소개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이곳의 파사드를 뜯어내고, 발코니를 만들어 온실 정원처럼 꾸며놨다. 파사드 쪽만 건축해, 거주자들은 건물 안쪽에서 퇴거하지 않고 일상을 보냈다.

바살은 “건물을 외관만 볼 게 아니라 안에서 볼 필요도 있다. 20~30년간 지낸 입주민이 매일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에너지를 채우며 노력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라도 설명했다.

이어 “낡은 아파트가 내부를 존중하면서 새롭게 재탄생했다”고 강조했다. 또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표준적 건물보다 나은 건축물을 만들고, 주민을 퇴거시키지 않고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온실 기술도 주택에 적용한 사례도 소개했다. 바로, 1993년 프랑스 남부 플루아라크에 완공한 ‘라타피 하우스’다. 집 뒤편에 투명한 패널을 부착해 공간을 확장하고, 자연 환기와 차양이 가능하게 했다. 식물까지 들여오며 온실정원 기능도 갖춘 ‘생태 발코니’가 됐다.

바살은 “저렴한 비용으로 이중 (용도로) 사용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며 “라타피 하우스는 건물 내부와 외부 사이에 완충 공간과 자연 채광을 제공했고, 그늘에선 삶을 즐기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새로움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고칠 이유를 억지로 늘리지 않고, 정말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에 집중한단 의미다. 이 맥락에서 증축 혹은 리모델링을 ‘건물 변형’이라고 표현했다.

대표 사례가 1937년도에 지어진 원모습을 유지한 파리 현대 미술관 ‘팔레 드 도쿄’. 라카통은 “2010년 당시 정부가 2만5000㎡ 규모의 이곳을 모두 개방할 수 있게 하고, 아뜰리에(작업실)나 갤러리 등을 마련해 전시할 수 있도록 2단계 공사를 시작했다”며 “우리는 이 작업에서 추가적인 수리작업을 하면서도 가벽을 유지하며 관련 시스템은 유지하려 했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 2012년 이들은 낡은 건축물에 단순한 재료만 써서 지하 공간만 2만㎡가량 신축했다. 기존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 마감은 최소화해 기존 건축물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았다. 라카통은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건물이 된 이곳은 아주 최소한의 수리만 하고 일반에 공개됐다”며 “추가적인 작업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축가 안 라카통(왼쪽)과 장 필리프 바살이 8일 오전 서울 반포 세빛섬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런 원칙은 신축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바살은 강연 중 푸른 소나무 수십여그루가 자라 있는 한 사진을 발표 화면에 띄웠다. 30여년 전 라카통과 바살이 프랑스 보르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설계 의뢰를 받은 집터의 모습. 그들은 나무를 베어내는 대신, 집 안으로 관통하는 구조를 고안했다.

바살은 “사람들은 나무를 베고 모래사장을 없애고 그 위에 집을 짓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건설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숲을 건축 요소로 가져와, 아주 정밀하게 기초공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집 바닥이 나무뿌리를 피할 수 있을지, 바다에 비치는 빛이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 집안 곳곳에 나무들이 관통하는 구조로 건축했다.

라카통과 바살은 40여년간 활동해온 거장임에도 불구, 여전히 치열하게 건축을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건축과 도시는 갈수록 복잡하지만, 단순한 답을 내놔야 한다. 정밀성과 관대함, 친절함도 필요하면서도 시적(詩的)이어야 한다”며 “또 기후친화적이고, 경제성을 갖춰야 한다. 그러면서도 건축은 변화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고 전했다.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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