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대선 이후의 한미 경제통상관계 : “뉴 노멀” 속의 기회 [여한구의 글로벌 호라이즌]
뉴스종합| 2024-10-24 11:18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세법 및 제조업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AP]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대 라크로스 캠퍼스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 대통령 선거가 열흘여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6월 대선 토론 이후 전무후무한 후보 교체, 미국 최초 흑인 여성대통령 후보 등장, 후보에 대한 두차례 암살 시도 등 넷플릭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롤러코스터 몇개월을 지나왔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박빙으로 뿌연 안갯속 같지만, 결국 해리스 지지층인 젊은이, 여성, 유색인종 등이 얼마나 투표율을 높일지, 2016년 미 대선에서처럼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았던 트럼프 지지자들이 얼마나 많을지에 최종 승부가 결정될 듯 하다. 그간 미 대선 때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했지만, 이번만큼 선거 결과가 향후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를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개의 다른 길로 이끌 수 있는 미 대선은 근래에 찾기 힘들 듯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중 패권경쟁과 대외 경제, 통상, 산업, 기술정책 등에 있어서 두 후보가 지향하는 바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 접근 방식과 활용하려는 정책 도구 등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하나의 지향점, 두개로 갈라진 길

트럼프, 해리스 양 후보를 관통하는 세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공히 “미국 우선주의”,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 “미중 패권경쟁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불법이민자, 낙태 등 민주, 공화당간 입장 차이가 현격한 폭발성 이슈들과 비교해 볼때, 이러한 지향점들은 큰 흐름에서 볼때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두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경험하고, 미국은 평화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브레튼우즈체제와 자유무역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적 글로벌경제시스템의 설계자 및 수호자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993년 캐나다,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정, 2001년 중국의 자유무역협정(WTO) 가입 후 값싸고 질 좋은 수입품의 범람에 미 중서부에 집중된 제조업 기반이 서서히 무너지며, 자유무역의 정치경제가 흔들리게 된다. 실제로 미시간 주나 위스콘신 주의 몰락한 제조업 타운을 가 보면 2016년 트럼프가 등장한 배경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경쟁력을 상실해 공장이 문을 닫고 수백명의 주민을 해고하게 되면 업종을 바꿔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거나 인근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처럼 국토가 작고 인구가 밀집된 나라에서는 인천에서 직장을 잃더라도 부산 가서 새로운 직장을 찾고 주말 가족으로 생활할 수 있겠지만, 미국처럼 크고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에서는 이게 쉽지 않다. 집 부근 공장에서의 실직이 개인의 몰락, 나아가 가정과 지역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주별로 할당된 선거인단제도로 인해 미 대선때마다 민주, 공화당을 왔다 갔다 해 온 중서부 지역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다 보니, 2016년 이후의 미 통상산업정책은 미국 전체보다는 중서부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정부주도의 적극적 산업정책으로 중국의 과학기술, 산업 경쟁력이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오고,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은 향후 산업패권뿐 아니라 국가안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민주, 공화 양당간 대중 강경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해리스, 트럼프 공히 제조업 부흥을 통한 일자리 창출, 대중 패권경쟁의 승리를 위해 보호무역주의건 경제정책의 안보화이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기본 지향점에는 이해가 일치하는 것이다.

트럼프 집권시의 시나리오

그 지향점을 향해 가지만, 트럼프월드를 통하는 길은 매우 불확실하고 거칠 것으로 보인다. 방향타는 미국의 상대국에 대한 상품무역적자 여부, 주요 수단은 관세를 활용한 통상정책이다. 모든 국가에 대한 10~20퍼센트 일반관세, 중국에 대한 60퍼센트 관세, 특히 최근 디트로이트, 시카고에서는 1000퍼센트, 2000퍼센트 관세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호언했다.

흔히 한국에서는 이러한 조치들이 법적으로 가능한가? 한미FTA 위반 여지는 없는가?에 관심을 보이는데 답변은 간단하다. 현실적으로 별로 의미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전직 트럼프 통상관료들과 논의해 보면, 2016년 미 대선 캠페인 당시 관세 관련 공약은 거의 다 실행에 옮겼다며 심각하게 받아들이라 충고한다. 미 대통령이 국가안보, 긴급경제위기를 근거로 해서 관세를 부과하면 미 법제하에서도 그 권한과 재량의 범위가 애매하고, 법적 쟁송을 거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또한 트럼프1기의 행정 경험을 가진 유능한 충성파 변호사들이 달라붙어 합법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방법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슈는 미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시 실제로 과격한 관세부과조치를 할 수 있는지 여부다. 최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서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공약대로 관세 부과, 불법이민자 추방, 중앙은행 독립성 약화를 모두 시행할 경우, 2026년까지 인플레이션이 평상시 기본시나리오에 대비해 4.1-7.4퍼센트까지 추가로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현실적으로는 당시의 거시경제 상황에 따라 관세부과의 세부사항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 일반관세 부과 혹은 예외 여부 결정시에는 해당국의 무역적자 여부 등이 주요 기준이 될 것이며 “딜 메이킹(deal-making)”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세 부과를 지렛대로 삼아 뭔가 양보를 얻어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처럼 바로 탈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85년 플라자합의와 같이, 주요국들간 환율 조정을 통해서 미국 무역적자의 대폭 감축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해리스 집권시의 시나리오

해리스는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창출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놓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 등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정책과 보조금 정책을 계승하며, 국내 공급망 강화 및 제조업 부흥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 등 통상정책과 관련해서는 중산층 일자리와 환경 보호 부족을 근거로 중국과 미국·캐나다·멕시코무역협정(USMCA) 비준에 반대한 10명의 상원의원 중 한명이었다는 점이 도드라진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일본 제철의 US스틸(Steel) 인수에 대해서도 바이든에 이어 반대를 표명했다. 하지만 EU 등 우방국들에 대한 무역전쟁을 불사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와는 달라, 해리스는 우방국들과 공조와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에 방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해리스 집권시에는 기후변화 및 환경관련 통상조치의 강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25년말 만기가 도래하는 트럼프 세제 혜택의 연장 여부가 큰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며,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부터 실제 적용에 들어갈 예정이라, 해리스의 탄소중립에 대한 신념과 공화당의 세제 혜택 연장을 위한 신규 세목 신설, 국내 제조업 보호 등의 명분이 맞아 떨어지며 미국판 탄소국경세가 새로이 신설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 조치도 계속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에 대한 수출통제의 경우, 필자가 미국 상무관으로서 트럼프 1기 행정부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바이든 행정부와 각각 직접 협의했던 바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 거칠은 레토릭과 외교적 압박으로 밀어붙이나 집행에는 허점이 있었다. 반면, 후자의 경우 레토릭은 절제되어 있지만 세부적이고 정교한 법과 규정을 통해 선택의 여지없이 준수하도록 만드는 차이가 있었다. 미국에서 혹자는 중국에 관한 한 바이든, 해리스를 “스마일”있는 트럼프라 부르는 이유이다..

2025년 이후의 한미 경제통상에 대한 전략 제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후 내년이면 13년이 되지만, 현재까지 한미 FTA는 미국이 서명했던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경제질서를 반영한 마지막 FTA가 되어 가고 있다. 그 후 미국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TPP는 트럼프 당선 직후 탈퇴했기 때문이다. 2012년 양국에서 발효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미 대선 결과에 따라 각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큰 흐름의 총론 차원에서는 2017년 이전의 자유무역과 다자무역체제로 복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패라다임의 변화가 “뉴 노멀(New Normal)”이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초기의 한미 FTA 폐기 위기를 잘 넘기며 여러 나라들 중 최초로 “딜 메이킹”을 했고 덕분에 다른 국가들이 무역전쟁의 혼란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안정적 한미 통상환경하에서 조용히 상대적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와서 갑자기 닥친 IRA 위기도 잘 넘기며 우리 기업들은 중국이 없는 미국 시장을 질주할 수 있었다.

필자의 판단으로 우리에게 2025년은 2017년보다는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8년전 대선 캠페인 당시 트럼프는 한미 FTA를 대선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만든 “끔찍한 협정(horrible deal)”을 수시로 언급했었으나, 미국 신행정부의 우선순위는 USMCA, 그리고 2025년말에 만기가 도래하는 트럼프 세제 감면의 연장이다. 미국이 느끼는 중국에 대한 위기감은 8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USMCA 리뷰가 2026년으로 예정돼 있다. 또한 미국의 제조업 공급망 재건에 한국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누가 백악관 주인이 될 지는 모르지만 2025년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에 대비 전략적으로 생각해 봐야할 세가지를 추려 본다.

첫째, 미국 입장에서 본 미중 지정학적 패권경쟁의 큰 체스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와 역할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설득 논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트럼프 집권시 10-20퍼센트 일반관세에서 한미 FTA 파트너인 한국이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미중 경쟁 구도하에서 집중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인태전략이 의도한 바대로 그간 중국에 과다 의존했던 한국의 무역, 공급망이 디리스킹(de-risking)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는 작년 210억달러로 EU, 일본을 제치고 외국인투자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 이에 따른 연관 수출이 급증해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늘어 났지만, 트럼프 일반 관세 부과로 이러한 추세에 타격(disruption)을 주면, 한국의 대중 디리스킹의 모멘텀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서서히 미국으로 옮겨오던 한국의 무역과 공급망 축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급증을 비판하던 미 전직 관료들도 이 논리를 들이대면, 미중 경쟁하에서 한국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주목했다.

둘째, 우리처럼 제조업 비중과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하에서 “뉴 노멀”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항상 “보험”을 드는 것, 즉 다변화가 필요하다.

2019년 일본에 과다 의존하다 반도체 부문 수출통제를 겪었고, 2021년 중국에 과다 의존하다가 요소수 사태를 겪었듯이, 미국에도 과다 의존하면 미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취약해 질 수 있다. 앞으로 “뉴 노멀”시대 글로벌 경제환경은 해외 진출 모드로 수출에만 의존하기에는 점차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들은 1980년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겪으며 해외투자와 현지화를 통해 해외 변수에 따라 급변하는 수출위주의 구조를 보완하며 더욱 강해진 바 있다. 한국기업들의 해외 투자도 그간 크게 증가했으나 주로 단독지분으로 공장을 새로 짓는 그린필드형 투자가 대부분이다. AI, 디지털, 그린 시대에 새로운 기술 발전과 산업의 바운더리가 급속히 진화하는 환경하에서 우리 대표기업들의 해외 자산, 기술에 대한 전략적 M&A가 일본, 중국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셋째, 해리스, 트럼프 어느 행정부이건 기회요인은 분명히 있고, 그 기회를 최대화하는 데 전략을 맞춰야 할 것이다.

협상은 “주고 받는 것(Give and Take)”이다. 특히, 방위산업, 원자력 발전 분야는 그 협력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비해 미국내 한미 협력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타국 대비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상호방위조달협정(RDP)을 체결할 시 미국내에서 부품을 조달해야 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조항의 예외를 인정해 국내 업체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으나, 한미간 협상이 미측 우려로 지연되고 있다. 개선할 여지가 크다.

트럼프,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한미 경제통상관계는 위기에 강한 복원력(resilience)을 보여왔다.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낼 수 있는 DNA와 경험이 우리속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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