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실질임금 감소·비자금 스캔들에 무너진 자민당 독주
뉴스종합| 2024-10-28 11:33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총재(일본 총리)가 27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하원·465석) 총선 결과를 접한 뒤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

일본 집권 자민당이 27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여당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자민당 내 비자금 스캔들 논란을 제대로 불식시키지 못한데다 물가, 경제 부진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심판’으로 평가된다.

28일 교도통신,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191석을 차지했다. 연립 여당 공명당은 24석을 확보했다. 자민당과 공명당 의석수 합계는 215석으로 중의원 465석의 과반인 233석에 미치지 못했다. 두 정당의 선거 전 의석수는 각각 247석, 32석 등 총 279석이었다.

자민당은 옛 민주당(입헌민주당 전신) 내각에서 정권을 탈환한 2012년 이후 2014년, 2017년, 2021년 등 그동안 4차례 총선에서 매번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공명당과 함께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이어왔다. 선거 공시 전 자민당은 247석, 공명당은 32석 등 여당이 279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정치 개혁’을 외치며 자민당 비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우익 성향 야당인 일본유신회는 44석에서 38석으로 감소했고, 국민민주당은 7석에서 28석으로 확대됐다.

자민당·공명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놓친 기저에는 장기간 지속된 경제 부진과 고물가, 실질 임금 감소로 팍팍한 민생이 깔려 있다.

유권자들은 정치 문제보다도 자신의 생활과 한층 더 밀접한 경제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교도통신이 지난 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9%가 새 내각의 우선 과제(복수응답)로 ‘경기·고용·물가 대책’을 꼽았으며 이어 ‘연금·사회보장’(29.4%), ‘육아·저출산’(22.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달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경제 대책에서 특별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과거 자신이 부정적으로 비판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옛 아베파 등 당내 반발을 의식한 듯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심지어 과감한 돈 풀기가 특징인 아베노믹스에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서 퍼지며 증시가 급락하자 일본은행 총재와 만나 “추가 금리 인상을 할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도 취임 초 ‘새로운 자본주의’를 구호로 내세우며 아베노믹스로 확대된 빈부 격차를 축소하려 부유층 금융소득 과세를 논의하기도 했으나 증시가 부정적으로 반응하자 내각 출범 초 궤도 수정을 한 바 있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전 총리가 ‘잃어버린 30년’으로 상징되는 저성장 경제에서 탈출하기 위해 내세운 정책이다. 하지만 국민 소득은 늘지 않고 빈부 격차만 확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엔화 약세로 수입 상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고물가가 민생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라 실질 임금은 장기간 후진해 왔다. 일본 후생노동성 집계에 따르면 일본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2022년 4월 이후 올해 5월까지 26개월 연속 감소하다가 6월과 7월에 여름 보너스 증액 등에 힘입어 일시 증가했으나 8월에 다시 감소세로 전환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비자금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실망한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심판에 나섰다.

앞서 자민당 일부 파벌은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를 주최하면서 ‘파티권’을 할당량 이상 판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 돈을 다시 넘겨주는 방식 등으로 오랫동안 비자금을 조성해 왔다.

당은 이런 사실이 검찰 수사 등으로 공개되자 39명을 징계했고, 중징계를 받거나 비자금 의혹을 명확히 해명하지 않은 12명을 공천 대상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과거 록히드 사건, 리크루트 사건 등 대형 부패 사건으로 파벌과 금권 정치 이미지가 강한 자민당에서 이번 스캔들이 또 터지면서 유권자들에게 다시 실망감을 안겼다.

이에 내각 지지율이 국정 운영이 어려울 지경까지 추락하자 기시다 전 총리는 결국 연임 도전을 포기했고, 그 결과 이시바 내각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취임 이후 새로운 자민당의 모습을 특별히 보여주지 못했다. 총재 선거 때는 야당과의 여러 문제에 대해 논의를 충분히 해 나갈 것처럼 말했지만 취임 후 8일 만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렀다.

당초 그는 자민당 내 비주류로 아베 전 총리 등을 상대로 쓴소리를 내뱉으며 개혁적인 이미지를 쌓았지만 총리 취임 후에는 과거 발언과 다른 행보를 보여 비판을 샀다.

김현경 기자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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