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산업화의 기치를 내걸었던 1974년 11월 ‘100년을 내다보며 인재의 나무를 심는다(十年樹木 百年樹人)’는 비전 아래 설립된 한국고등교육재단이 50주년을 맞았다. 당시 주요 대기업들이 자체 몸집을 키우는 데 열중하고 있을 때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대한민국이 아직은 개발도상국이자 자원빈국 처지이지만, 인재를 키우면 얼마든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사재를 출연해 재단의 초석을 놓았다. 초기 목표는 박사 100명 양성이었지만 지금까지 그 열 배 가까운 951명의 박사가 나왔고, 장학 지원으로 배출한 인재는 총 5000여 명에 달한다.
최 선대회장은 해외 유학이 바늘구멍같던 시기에 재능 있는 청년들을 세계 최고 대학으로 보내 선진 문물과 학문, 기술을 체득토록 했다. “장학생 한 명이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지원받은 돈이 당시(선경그룹) 신입사원 25년 치 봉급이었다”(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고 한다. 하버드대 경제학박사로 국제기구인 ADB(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IMF(국제통화기금) 아·태 국장을 지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로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등 재단을 거친 인재들이 사회 곳곳에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최 선대회장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은 모두들 산업화의 동량인 이공계,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확보에 목을 매던 시기에 사회과학 분야 인재 양성에도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개발도상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되면 각종 사회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견했고, 이를 해결하려면 사회계열 인재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양극화, 계층간 갈등, 저출생·고령화, 지역 소멸, 노동시장 이중구조, 미·중 대립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최 선대회장의 50년 전 안목이 놀랍다. 오는 26일 재단 설립 5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열리는 학술 심포지엄에서 당대 최고의 사회·정치·경제학자들이 이같은 현안을 짚고 향후 50년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안할 계획이라는데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선친의 바통을 이어받은 최태원 SK 회장이 장학 사업 위주였던 재단의 역할을 글로벌 지식교류 플랫폼, 사회적 기업 등으로 확장하며 인재 양성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시대상을 반영한다면 앞으로는 인문학까지 인재의 숲을 넓힐 필요가 있다. 초융합사회에서 나타나는 고난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융복합적 역량의 인재를 길러야 한다. 지식과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이 다음 50년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응원한다.